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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북정책 180도 전환시킨 힐 차관보


북한의 핵 신고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최근 워싱턴에서는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 신문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접근방식을 강경책에서 포용정책으로 180도 선회한 것은 힐 차관보의 공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집권 1기 시절의 강경했던 자세를 바꿔 북한과의 협상 쪽으로 정책을 선회한 데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역할이 컸다고 `워싱턴포스트' 신문이 26일 보도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신문은 또 지난 3년 간에 걸친 힐 차관보의 노력으로 북한 핵 폐기는 부시 대통령의 최대 외교적 성과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힐 차관보 이전과, 힐 차관보 이후’시대로 구분해도 좋을 정도로 180도 달라진 것이 사실입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2001년1월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이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폭군’ ‘독재자’’국민을 굶기는 자’등으로 비난해 왔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과 이란 등이 대량살상무기를 추구하는 악의 축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또 북한과의 직접 협상에 부정적이었습니다. 그 결과 부시 1기 행정부 시절 미국의 대북정책은 국무부가 아니라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을 중심으로 한 보수강경파들이 좌지우지했습니다.

지난 2005년 미국의 외교정책 사령탑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전략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북한이 영변 핵 시설에서 플루토늄을 재처리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워싱턴포스트 신문에 따르면 이 회의에는 힐 차관보를 포함해 4명이 참석했습니다. 라이스 장관이 북한 핵 문제 해결 방안을 묻자 회의실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 감돌았습니다. 그러자 힐 차관보가 입을 열었습니다. 힐 차관보는 “나를 평양에 보내주면, 북한과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습니다.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는 힐 차관보에게는 오히려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평소 북한과의 협상을 주장하던 힐 차관보는 이 일을 계기로 운신의 폭이 훨씬 커졌기 때문입니다.

힐 차관보의 협상력이 가장 빛났던 것은 지난 해 `2.13 합의' 였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힐 차관보는 지난 해 1월 외교관례를 깨고 베를린에서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단둘이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핵 문제 해법을 만들어냈고, 이는 한 달 뒤 베이징에서 타결된 6자회담 2.13합의의 모체가 됐습니다. 미-북 양자회동을 통해 핵 문제에 돌파구를 마련하는 동시에 ‘6자회담을 통한 핵 문제 해결’이라는 부시 대통령의 원칙을 살리는 힐 차관보 특유의 노련한 외교력이 돋보이는 대목이었습니다.

또 힐 차관보는 북한이 핵 신고를 하지 않고 교착상태가 계속되자 올해 초 한 강연을 통해 핵 신고를 할 경우 북한과 외교관계 정상화는 물론 한반도 평화협정을 맺을 것이라고 평양에 신호를 보냈습니다.

“힐 차관보는 북한이 핵 신고를 할 경우 북한과 외교관계는 물론 평화협정을 맺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힐 차관보는 북한이 핵 신고를 하지 않고 교착상태가 계속되자 지난 4월에도 싱가포르에서 김계관 부상과 단둘이 만나 ‘미-북 잠정합의’를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북한 핵 문제 뿐만 아니라 지난 2월 열렸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평양 공연에도 힐 차관보가 적극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북한이 지난 해 가을 뉴욕 필을 평양으로 초청하자 뉴욕 필은 이 초청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힐 차관보는 뉴욕으로 가서 음악가들과 피자를 먹으면서 평양 공연을 설득했습니다. 힐 차관보는 또 뉴욕 필의 평양 공연을 공식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당시 뉴욕주재 북한대표부의 박길연 대사와 함께 참석하려 했지만 상관인 라이스 장관의 만류로 불참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습니다.

3년에 걸친 힐 차관보의 노력은 이제 하나둘씩 결실을 보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달에 1만9천 쪽에 달하는 핵 관련 문서를 미국에 제공했고, 또 영변 원자로 냉각탑도 파괴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북한은 곧 핵 신고서도 제출할 예정입니다.

힐 차관보는 이같은 공적을 인정받아 영국의 국제 문제 연구기관인 채텀 하우스가 주는 국제관계 상 후보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과 함께 올라 있습니다.

힐 차관보에 대해서는 비판도 없지 않습니다. 지난 해 4월까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보좌관으로 북한 핵 문제를 다뤘던 조지타운대학의 빅터 차 교수는 “힐 차관보는 유능한 협상가지만, 너무 언론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 신문은 힐 차관보가 부시 대통령의 남다른 신임을 받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신문은 힐 차관보는 차관보급 인사로는 이례적으로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라이스 장관, 그리고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 보좌관 등과 함께 백악관 조찬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의 소리 최원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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