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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라이트'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출간 논란


한국의 보수성향 지식인들이 최근 우파적 시각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출간해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이 책은 동학혁명과 일제 강점기,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등 굵직한 사건과 주요 인물들에 대해 기존 교과서와는 사뭇 다른 해석과 평가를 내놓아 좌파 진보세력은 물론 주류 역사학계와의 논쟁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서울 VOA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새로운 우파를 표방하는 한국의 이른바 `뉴 라이트' 계열 지식인들의 모임인 ‘교과서 포럼’은 1876년 개항 이후의 역사를 기술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23일 출간했습니다.

3년여 간의 준비 끝에 출간된 이 책은 개항과 동학혁명,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등에 대한 평가에서 기존 교과서와는 다른 역사관을 담고 있어 이념논쟁의 불씨가 될 전망입니다.

이 교과서가 빚고 있는 논쟁은 크게 보면 남북한 문제를 보는 시각과 일제 강점기, 그리고 반공 독재체제에 대한 평가 등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교과서는 한국전쟁이 스탈린 지령에 따라 김일성이 저지른 남침임을 명시한 반면, 반공독재 논쟁이 여전한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해선 ‘건국의 수호자’와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적극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서울대 국민윤리교육학과 박효종 교수는 “기존 교과서에선 6.25전쟁을 민족 내부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만 기술해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는지가 불분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현행 교과서가 남침이라는 것을 특별히 부정하고 있진 않은데 어쨌든 이것이 모순이 있어서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제 전쟁의 원인 등이 다 빠져 있어요, 사실은,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우리가 싸웠다 라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상세하게 보완을 한 것이거든요”

박 교수는 이 교과서가 시종 북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는 데 대해, 기존 교과서가 민족의 가치를 지나치게 앞세운 탓에 북한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기존 역사 교과서는 민족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민족 과잉이고 닫힌 민족주의처럼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 관한 접근에 있어서도 가능하면 우호적으로 서술하고 이런 부분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우리가 민족주의를 떠나는 게 아니고 닫힌 민족주의와 열린 민족주의 간의 차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은 “일제의 한국 지배는 한국인의 정치적 권리를부정한 폭력적 억압체제였다”고 규정하면서도, 이 시기에 완전한 의미의 근대적 신분해방과 사유재산제도가 이뤄지고, 근대적 인간상이 탄생했다는 긍정적 측면도 강조해 제국주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입니다.

“제국주의 억압과 수탈, 이런 부분보다는 그것을 전제하면서도 그 부분보다는 문명개화나 근대화의 시대로, 한국인의 발전의 역량을 축적한 시기로 파악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미 조선총독부 이래로 계속 제기돼 왔던 식민지 시혜론이나 제국주의 입장들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봐야 되겠죠.”

이 책은 이와 함께 동학혁명을 왕권 옹호 차원의 농민봉기로, 5.16 쿠데타를 유능한 엘리트 장교집단에 의한 지배세력 교체로, 한.일 국교정상화를 한국경제 고도성장의 초석을 놓은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민족문제 연구소 박 실장은 “이 책이 한국사회의 큰 흐름이 된 경제지상주의에 편승해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미화라든지 또는 해방 이후 남북의 냉전적 대결, 반공주의, 경제지상주의, 민주주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회의적 태도, 이런 것들을 탈민족의 대안으로 내세운다면 이는 오히려 더 옛날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

서울대 박 교수는 일제시대 평가와 관련해 “책의 전체 흐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일제 강점기를 정당화하려는 게 결코 아니”라며 “다만 제국주의 치하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치열하게 살았던 조상들의 삶을 충실하게 기술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번 책 집필에 역사학 전공자가 한 명도 참여하지 않은 점도 역사학계의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서울대 박 교수는 “주류 역사학자가 포함되진 않았지만 경제사, 사상사, 정치사 등에 경륜있는 학자들이 참여해 철저한 실증주의 관점에서 기술했다”며 “현행 학과체제의 칸막이를 반드시 존중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이 교과서는 박 교수를 비롯해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김일영 교수,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김영호 교수 등 12명이 공동 집필했습니다.

대안 교과서로 출간된 이 책이 당장 정식 교과서로 채택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정식 교과서가 되려면 교육과학기술부의 검정을 받아야 하며, 검정을 받은 뒤에도 일선 학교에서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미국의 소리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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