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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수해 목격자 ‘대동강 강둑 물에 모두 잠겨’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날마다 북한 전역의 큰물 피해 상황에 대해 자세히 보도하고 있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실제로 비가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보다 현장감 있게 전하기 위해 북한에 무더기비 (집중호우)가 내렸던 바로 그 시기에 평양을 방문했던 한국의 민간인을 인터뷰 했습니다. 아울러 이번 비로 큰 피해를 입은 함경도 출신 탈북자로부터 매년 거듭된 함경도 지역의 상황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서지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평양을 가로지르는 대동강이 범람 위기에 처해 군 동원령이 내려졌다고 보도했습니다. 특히 지난 10일 오전 6시부터 11일 오후 3시까지 평양에는 250 mm의 폭우가 쏟아졌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북한 평양을 방문했던 '겨레말 큰 사전 남북 공동편찬사업회'의 한국 측 전산 담당자인 박진양 씨는 평양 체류 기간 동안 날마다 대동강 물이 계속 불어났다며,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전했습니다. 박 씨는 자신이 묵었던 '양각도 호텔'은 대동강변에 자리하고 있어 창 너머로 대동강을 매일 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에 굉장히 비가 많이 왔었구요. 대동강 수계가 자고 나면 엄청나게 불어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 정도로 굉장히 팍팍 올라왔었구요. 대동강에 크레인이 있는데 크레인이 물에 다 잠겼었어요. 다리는 교각이 완전히 잠기진 않았었고, 교각이 안보일 정도였구요. 대동강 둑에 골프 연습 시설이 몇 군데 있는데 강둑 전체가 다 잠겨서 그 부분이 안 보였구요. 전 날은 보였는데 그 다음 날 없었어요, 물에 잠겨가지고.

박 씨는 특히 평양을 떠나던 날인 11일에도 비가 너무 많이 와 귀국을 걱정했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박진양: "저희 나올 때도 굉장히 (비가) 많이 왔는데, 비행기가 못 뜰 정도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공항 나오는 길에 대형버스를 타고 나왔는데 짐 싣는 칸에 저희 트렁크를 실어놨었는데 그게 잠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이 찬 지역이 있었어요."

박 씨는 대동강 범람 위기에 대해서도 매우 신빙성이 높다고 추정했습니다.

박진양: "대동강 물이 계속 차오르고 있었는데 대동강 물이 찬 만큼만 비 온 게 아니고, 시가지에서 빠져나온 물이 계속 더 있는 것이잖아요. 저희가 나올 때까지는 아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그 이후에 비가 계속 왔다면 아마 심각했을 것 같아요."

피해가 더욱 극심한 것으로 알려진 함경도 상황에 대해 함경북도 길주 명천리 출신의 한 탈북자는, 함경북도는 산이 많은 지역이어서 매년 비 피해를 크게 입었다며 올해도 꽤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탈북자: "저희들 집은 아파트가 아니고 단층 집이거든요. 그런데 비가 오면 산이 가까우니까 산에 모였던 물들이 내려오면 집집마다 그 물이 다 들어가요. 그러니까 흙도 같이 (들어가서) 문을 열지 못 할 정도로 흙이 많이 쌓여서 비가 오면 나가서 흙도 치우고... 좀 많이 힘들었죠. 사람들이 모여 나와 삽을 갖고 다니는 길의 흙도 치우고, 도로도 깔고, 옆 집 기와가 날아가면 같이 세워 주고, 그렇게 (복구)했었죠."

이같은 피해는 매년 거듭돼 여름이면 진흙 땅과 사투를 벌였다고 합니다.

탈북자: "1991년도에 좀 많이 비가 오고 해마다 태풍으로 피해를 입고 그랬어요. 한국에는 (길이) 아스팔트인데 거기는 다 진흙땅이니까요. 모두 얘기를 하는 게 '마누라를 팔아 장화를 사야 한다'고 얘기해요. 장화도 없어서 그 진흙땅을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먹을 거리를 구하려고 산을 개간해 밭으로 전용한 것이 이같은 극심한 비 피해의 원인이 되고, 큰 비가 온 뒤면 밭으로 일궜던 산에서 떠내려온 곡식을 주워먹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배급이 끊어지는 까닭입니다.

탈북자: "식량도 부족하고, 땔 것이 없으니까 산에서 밭을 일구고 나무를 많이 베어버리니까 (피해가 나요.) 밭에 곡식 심은 게 비가 와서 물 피해가 있으면 그 곡식들이 흙과 같이 떠내려와요. 길 가다가도 사람들이 비 오는 때면 그걸 나가서 주으러 나가는 사람들도 있고... 비가 올 때는 곡식이 많이 떠내려가고 다 묻히고 하니까 배급 주고 하는 게 곤란해지죠. 제 때 주지 못하고, 저희 의관(회관)에서도 한 달에 이틀 분 식량만 주고, 그 나머지는 모두 언제 받았는지 기억도 안나요. 95년부터 배급이란 것은 받아보질 못했으니까요."

한국 정부나 국제사회에서 식량을 지원해 준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합니다.

탈북자: "모르고 있다가 한국에 와서 (북한에) 비가 오면 한국이랑 다른 나라에서 지원해준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아마 위 정부에서 다 관리를 하니까 아랫 지방 사람들은 한국에서 보내준다는 곡식조차 모르고 있어요, 지금도."

이 탈북자는 한국에서 전해들은 북한 수해 소식에 고향 걱정이 많이 된다며,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의 지원이 꼭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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