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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보람] 김정혜 씨-연주자의 꿈 접고 어린이 종합음악학원 운영 '이젠 강사들도 여길 찾아와요'


미국내 각급 학교가 방학에 들어간 7월, 텅 빈 학교 건물들과는 반대로 오히려 활기를 띠는 곳이 있습니다. 버지니아주 옥튼에 위치한 하모니아 스쿨… 여름 캠프에 참가하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로 가득합니다.

캠프 첫 날인 오늘, 유아반 학생들은 연극 시간에 서로의 이름을 익히기 위한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2층에 늘어선 연습실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지고, 그 옆의 미술실에서는 학생들이 이런 저런 그림을 잘라 붙이는 꼴라쥬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옆 모습을 그린 뒤 잡지에서 오린 그림으로 채우는 중이라고 한 학생은 설명합니다. 동물과 신발을 좋아한다는 이 학생은 잡지에서 그런 그림을 찾아 오려 붙이고 있습니다.

한인 1.5세 김정혜 씨가 운영하는 하모니아 스쿨은 5년반전에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김정혜 씨//

“한국에는 이런 게 많지만 미국에는 어린 아이들을 위한 이런 시설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리고 클래시칼 뮤직 (classical music, 고전음악) 같은 걸 시리어스 (seriously, 심각하게) 택하지 않아서 이런 학교가 없어서 제가 열게 됐습니다.”

하모니아 스쿨은 종합예술 학원입니다. 음악은 물론, 미술, 연극, 무용 등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김정혜 씨//

“저희가 악기는 다 가르치구요. 드럼 외에는 다 가르쳐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그리고 관악기… 플루트, 클라리넷, 색스폰, 성악도 가르치고, 그리고 기타도 가르치고…”

김정혜 씨는 미국에 하모니아 스쿨같은 종합 예술학원이 워낙 드물다 보니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 만큼 열심히 하지않는 것 같아 아쉽다고 김정혜 씨는 말했습니다.

//김정혜 씨//

“한국에서는 부모들이 애들 악기를 시키거나 그러면 굉장히 연습도 열심히 시키고 굉장히 시리어스하게 하는데 미국은 아이들이 하는게 너무 너무 많잖아요. 한국 아이들도 요새 하는 게 많죠. 미국 아이들이 하는 게 많고 그냥 이걸 재미 삼아, 하비 (hobby, 취미) 삼아 하기 때문에 좀 더 시리어스하게 할려고 하는게 그게 좀 아쉬워요.”

하모니아 스쿨은 일반 학교와 같이 가을 학기와 봄 학기로 진행되고, 여름방학 동안에는 따로 캠프를 열고 있습니다.

//김정혜 씨 4//

“캠프는 지금 우리가 퍼포밍 아츠 앤 크리에이티브 아츠 캠프 (Performing arts and creative arts camp, 공연예술, 창작예술 캠프)’라고 그래 갖고, 아이들한테 우리가 보통 학교 다니는 해에 하는 뮤지컬 씨어터, 연극반, 그리고 음악, 미술을 다 합쳐서 2주마다 네번을 하는데, 짧은 2주 동안 그걸 다 소개를 시켜주는 거죠. 어린 아이들이 짧은 시간동안 경험을 해보고, 또 계속 여기서 내가 어떤 것을 하고 싶다, 그런 것도 느끼고, 아이들한테 많은 것을,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그런 캠프에요.”

캠프에서 처음 악기를 접해보고 흥미를 갖게된 아이들이 캠프가 끝난 뒤에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김정혜 씨는 설명했습니다.

김정혜 씨는 1973년 한국에서 중학교 2학년을 마친 뒤 가족과 함께 미국에 왔습니다.

//김정혜 씨//

“미국은 저희 식구가 다 같이 이민을 왔어요. 저희 형제가 다섯인데 그 때 언니, 제일 큰 언니는 벌써 결혼을 해서 같이 못 오고, 저희 네명하고, 엄마하고 아버지, 그렇게 같이 왔어요.”

부자 나라에 간다고 들떴던 것과는 달리 막상 와서 본 미국은 기대이하였습니다.

//김정혜 씨 //

"처음에 와서는 실망을 많이 했어요, 정말.. 한국보다 별로 안 좋은 동네에 막 살고… 한국에서는 훨씬 좋은데서 살았는데.. 무엇보다도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컸습니다. "

//김정혜 씨//

“제가 한국에서부터 음악을 하고 그랬기 때문에 학교도 좋은 학교를 다녀서 책도 많이 보고, 음악도, 클래시컬 (classical, 고전)음악도 여기 아이들 보다 훨씬 많이 알고 그랬는데 여기 와서 이제 말도 안 통하고, 또 머리 속엔 알지만 말 때문에 그게 안 되니까 굉장히 답답한 일도 많고, 그 때만 해도 동양 애들이 많지않으니까 더 힘들었죠.”

김정혜 씨는 그나마 학교에 몇 명 있던 한인 학생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며, 남들은 가장 추억에 남는다는 고등학교 4년을 쓸쓸하게 보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힘든 미국 생활에서 위로가 되준 것은 음악이었습니다.

//김정혜 씨//

“음악을 안 했으면 정말로 더 힘들었을 거에요. 그런데 음악은 딴 아이들 보다 훨씬 앞섰고, 제일 첫번째 체어 (chair, 연주석)에도 앉고 그래서 그런 거는 있었죠. 그리고 수학은 아무래도 한국 애들이 여기 오면 잘하니까… 그거, 그거 없었으면 굉장히 힘들었을 거에요.”

뉴욕의 맨하탄 음대에서 플룻을 전공한 김 씨는 대학 시절에 사귄 터키계 유날 듀락 씨와 결혼하면서 음악가의 꿈을 접게 됩니다. 남편의 일 관계로 자주 이사를 다니느라 음악공부를 계속하기가 여의치 않았던 것입니다. 1980년대말 워싱톤에 정착한 김정혜 씨는 동생과 함께 시내 조지타운에서 식당 ‘벤토’를 4년동안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김정혜 씨//

“우리가 음식하는 걸 굉장히 좋아해서 아이디어는 또 많아서, 저희가 동양음식, 그러니까 한국 음식, 일본 음식, 중국 음식, 그걸 다 할 수 있는데가 없어서 우리가 그걸 열었어요. 그런데 조그맣게 열어가지고 대부분 저희가 케이터링 (catering, 출장연회 서비스)을 많이 했어요. 우리가 사람들한테 인정을 받았던 거는 동양음식은 너무 맛있고 먹을 게 많은데 파티에 음식을 내놓을 때는 보기가 좋게 내놓는데가 없었어요, 사실은…우리가 그런 걸 하는 걸 좋아해서 그렇게 해서 많이 했어요.”

일본어로 도시락을 의미하는 식당 이름 답게 김정혜 씨 자매는 모든 음식을 도시락에 예쁘게 담아서 내놓았습니다. 고객의 눈까지 즐겁게 해주는 벤토는 고급 취향의 조지타운 대학교 학생들과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대중적인 면에서는 시대를 앞서 갔던 것 같다고 김정혜 씨는 말합니다.

//김정혜 씨//

“지금은 그런게 굉장히 파퓰러 (popular, 인기) 하잖아요. 그 때만 해도 굉장히 대중적으로는 아직도 조금, 너무나 우리가 앞서 갔었어요. 워싱토니안 매거진하고 워싱톤 포스트 그런데서도 많이 우리가 나왔었거든요. 그런데 음식은 너무너무 하는 게 힘들어서 둘째 낳을 때 제가 관뒀어요.”

플룻 연주자의 꿈은 버렸지만 계속해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던 김 씨는 1990년대말 버지니아주 타이슨스 코너에 본격적으로 예술 학원을 냈습니다. 하지만 김 씨의 첫 학원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김정혜 씨//

“그 때 제가 동업을 했는데, 왜냐하면 아이들도 어리고 그러니까 내가 사회생활을 많이 안 해봐서, 사회생활 한 사람하고 동생 친구고 그래서 했는데, 동업이라는 게, 어떤 비지니스든지 동업이라는 게 좋은 것 같지가 않아요. 마음이 안 맞으니까 그래서 제가 관두기로 했었어요. 그러구서 아이들 좀 더 키우고 나서 이걸 다시 시작한 거에요”

김정혜 씨는 하모니아 스쿨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우수한 강사를 구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습니다.

//김정혜 씨//

“제가 이 학원을 시작했을 때는 정말로 좋은 학원을 하고 싶고, 그냥 아무 때나 애들이 왔다, 갔다 하는 그런 거 말고…제가 음악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굉장히 선생님들 고르는 거나 그런 거에 대해서 제가 까다롭게 해요. 선생님들 좋은 사람 구하는 게 제일 힘들고, 사람 상대하는 게 제일 힘들죠.”

하지만 5년이 지나면서 이제는 하모니아 스쿨 이름을 듣고 우수한 선생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김 씨는 말했습니다.

하모니아 스쿨은 한 학기가 끝날 때 마다 그동안 학생들이 갈고 닦은 실력을 내보일 수 있는 작품 전시회와 연주회를 열고 있습니다.

연극반의 뮤지컬 공연은 출연 학생의 가족이나 친지가 아닌 사람들까지 관람을 올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김정혜 씨는 이런 발표회를 통해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기쁘다고 말합니다.

//김정혜 씨//

“그런 거 봤을 때 아이들이 얼만큼 늘고 아이들이 하는 거 보면 너무너무 기분이 좋고, 정말로 보람을 느껴요.”

처음 개원 당시에는 건물 한 층만 빌려서 사용했던 하모니아 스쿨, 이제는 학생 수가 5~6백명에 달하면서 2개 층을 모두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또 2년반전에는 한인 타운 애난데일에 미술과 무용교육을 제공하는 분원을 열기도 했습니다.

//김정혜 씨//

“처음에는 어려운 게 내가 생각하는 거하고 그런 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게 힘들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주장대로 아니스트 (honest, 정직) 하게 좋은 교육을 하면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식구들도 데려오고, 친구들도 데려오고 그래서, 그게 제일 최고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하지만 김정혜 씨의 꿈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김정혜 씨//

“여유가 되면 정말로 소극장 같은 것도 하나 갖고 싶고, 그래서 아이들이 항상 무대에서 연습할 수 있고, 지금 클라스 (class, 수업)는 여기서 다 할 수 있는 장소가 되지만 막상 무대위에서 할 수 있는 그런 기회는 많이 없거든요. 공연할 때 몇 번 하는 것 밖에.. 그래서 그거가 굉장히 하고싶고… 음악도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면서 실내악단 그런 것도 하고 아이들 오케스트라나 아이들 합창단, 그런 것도 만들어서 하고싶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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