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워싱턴 초대석] 소리꾼 장사익 ‘노래는 내 인생의 기록’


한국의 소리꾼 장사익씨가 뉴욕, 시카고, 워싱턴 DC와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4개 도시 순회공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40대에 들어서서 다소 늦은 나이에 노래를 시작한 장사익씨는 신명나는 목소리로 한국의 정서를 잘 나타내는 최고의 소리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장사익씨는 진정한 노래란 세상의 어둡고 굴곡진 얘기들을 풀어나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워싱턴 초대석’, 장사익씨와의 대담에 손지흔 기자입니다.

문: 이번 공연을 본 미주 한인들의 반응이 대단하던데. 지금까지의 미국 순회공연 어땠나?

답: 기대 이상으로 양보다는 질적으로 많은 성원을 받았고, 공연할 때 마다 행복하고 매우 기쁘다.

문: 한국인과 미국인들의 반응은 어떻게 다른가?

답: 아무래도 우리 동포들에게는 노래 가사라든가 정서적인 면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쉽게 와 닿는다. 사람들은 내 노래 속에 우리의 된장 맛과 인간미가 난다고 하는데 이번에 그런 것들을 찾은 시간이 되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외국인들도 내가 슬픈 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를 슬프게 받아들이고, 재미있는 노래를 하면 또 재미있게 듣는다. 음악은 그래서 언어나 이해가 필요없고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이런 공유하는 느낌을 받는다.

문: 이번 공연의 제목이 ‘사람이 그리워서’인데.

답: 현재 하루가 다르게 문명이 발달되다 보니 세상이 정말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가 맞출 수 없다. 그 가운데는 가장 그리운 인간적인 냄새, 우리가 잊어버렸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주인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 ‘미국의 소리’ 방송의 북한 청취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답: 노래는 내 인생의 기록이다라는 말을 자주한다. 지금 50대 후반 나이에 세상과 자연을 바라보는 얘기를 하고 있다. 북한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든 동포들도 우리와 같은 하늘아래 같은 시간대에 살고 있다. 물론 금을 그어 놓아서 따로 살고는 있지만 우리는 같은 세상에서 호흡하며 살고 있다.

같이 좋은 음악을 같이 듣고 서로가 거기서 느끼는 좋은 감정으로 세상 살아가는데 하루하루가 즐겁고 아름다운 생활이 됐으면 하는 의미에서 노래를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같이 공유하고 싶다.

문: 지난 2002년 남북통일축구 개막식에서 공연한 소감은?

답: 당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남북한 축구를 처음으로 하는데 남과 북이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민족의 노래가 ‘아리랑’을 부를 사람으로 본인이 선택됐다. 그 노래 한곡을 부르는데 정말 뭉클했는데 그 느낌이 아직도 살아있다. 정말 황홀했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그 노래를 다시 휴전선에서 몇 천명의 합창단과 함께 부르는 것이 꿈이다.

문: 지금까지 북한은 몇번 방문했나?

답: 북한은 지금까지 3번 방문했다. 8.15 때 방문해서 노래를 두 곡 불렀는데 목이 다 쉬었다. 뭔가 남 달랐다. 금강산도 관광이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난해 8 주년 기념행사 때 공연했다.

문: 노래를 조금 늦게 시작했는데.

답: 1992년에 사회생활을 접고 국악계에 입문했고 2년 뒤 94년 말에 노래하게 되었다. 팔자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봄에 일찍 피는 개나리와 진달래 꽃이 있고 여름에 피는 꽃이 있는데 그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도 아주 늦게 핀 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은 열심히 살다보면 꽃을 필 수 있다. 따라서 내가 노래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말을 듣곤한다.

문: ‘조금 더 일찍 시작할걸’ 이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나?

답: 젊은 사람들은 이 세상의 즐거움을 노래하지만 노래란 세상의 어둡고 굴곡진 얘기들을 풀어나가는 것이 진정한 노래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노래를 늦게 시작한 것이 정말 다행스럽고 행복하다.

문: 앞으로의 계획은?

답: ‘예술은 가늘고 길게’라고 말하고 싶다.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지금처럼 세상을 생각하고 인생과 자연을 그대로 노래하는, 80-90대의 인생을 노래하는 것이 나의 삶이 되는게 꿈이다.

관련 뉴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