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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 대북 쌀 차관 유보


한국 정부는 당초 이달 말 시작하기로 했던 대북 쌀 차관 제공을 북한이 ‘2·13 합의’ 이행과 관련해 진전을 보일 때까지 유보할 방침인 것으로 24일 알려졌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번 주말 이와 관련한 최종 입장을 밝힐 예정인 가운데, 남북장관급회담이 열리는 오는 29일까지 ‘2·13 합의' 이행을 위한 진전이 없으면 대북 쌀차관 제공이 어려워져 장관급회담이 파행으로 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세한 소식을 서울에 있는 VOA 김규환 기자를 연결해 알아보겠습니다.

문: 김 기자, 한국 정부가 대북 쌀 차관 제공을 유보할 방침이라면서요?

답: 네,그렇습니다. 쌀 차관 제공시기에 대해 한국 정부 당국자는 24일 “지난달 열린 제13차 남북 경협위(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밝힌 입장에 따라 ‘2·13’합의의 이행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같은 입장은 당시 경협위에서 쌀차관 제공에 합의하면서 “북한의 ‘2·13’합의 이행 여부에 따라 제공 시기와 속도를 조정할 수 있다.”는 밝힌 내용을 재확인한 것입니다.이는 바로 ‘2·13’합의의 이행에 진전이 있을 때까지 쌀차관 제공이 유보할 것임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 때문에 24일 현재 한국 정부는 쌀차관 제공에 필요한 쌀 구매와 용선 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당초 이달말로 예정됐던 1차분 선박의 출항도 지킬 수 없게 됐습니다.

문: 쌀 차관 제공을 유보한 배경은 무엇이죠?

답: 잘 알다시피 북한 BDA(방코델타아시아) 자금 송금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점을 빌미로 삼아 북한측이 ‘2·13’합의 이행을 미루고 있는 까닭입니다.한국측은 지난 남북 경협위에서 쌀차관 40만t중 5월말 1차분 제공을 시작한다고 합의하면서 “북한의 ‘2·13’합의 이행 여부에 따라 제공 시기와 속도를 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공표했습니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2·13’합의 이행 때까지 쌀 제공을 유보한 배경에는 한국민의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2·13’합의 이행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쌀 차관을 제공하면 대선용이라는 억측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자칫 대북정책이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을 우려한 것입니다.

물론 미국 입장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남북관계 진전은 ‘2·13’합의 등과 조율돼야 한다.”며 속도조절론을 제기한데 이어 23일 “북한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도 경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주한 미 대사관측이 한국 정부당국에 쌀 차관 상황에 대해 문의한 것은 쌀차관 제공을 유보해 달라는 직접 요청은 아니었지만 우회적 의사표시라는 관측입니다.

문: 하지만 일각에서는 쌀 차관 제공을 시작하자는 의견도 있죠?

답: 네, 그렇습니다. 지난 경협위 때 ‘2·13’합의 이행 여부에 따라 제공 시기와 속도를 ‘조정한다.’가 아니라 ‘조정할 수 있다.’로 돼 있는 만큼 ‘2·13’합의 이행의 진전이 있고 나서 쌀차관 제공으로 도식화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입니다.

이런 지적에는 ‘2·13’합의의 이행이 지연되는 책임이 북한에 있다기보다 BDA 자금 송금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한 미국쪽이 더 크다는 시각도 포함돼 있습니다.따라서 5월말에 첫 배를 보내 남북간 합의를 지키고 그 이후의 북송은 ‘2·13’합의 이행 때까지 보류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문: 유보 방침을 정한 한국 정부는 현재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까?

답: 유보 방침 속에서도 한국 정부는 쌀 차관 제공을 위한 가능한 절차는 밟아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쌀 구매계약처럼 실제 행동은 하지 않지만 남북협력기금 집행 의결이나 ‘남북 식량차관 제공합의서’ 공포와 발효, 한국수출입은행과 조선무역은행간의 차관계약 등 미리 이행해도 무리가 없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실행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움직임은 남북 합의에 대한 한국측의 이행의지를 보여줄 수 있고 BDA 문제가 전격 해결될때 쌀차관 제공에 필요한 절차와 시간을 줄인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문: 오는 29일부터 열리는 남북 장관급회담이 남북관계의 향방을 가늠하는 자리가 될 수 있겠네요?

답: 네,그렇습니다.BDA 문제가 당장 해결되지 않는 한 남북 장관급회담이 향후 남북관계를 예측하는 풍향계가 될 전망입니다.

일각에서는 현 상황을 놓고 지난해 7월의 제19차 장관급회담을 다시 떠올리는 견해도 나오고 있습니다.당시 북한측은 쌀 차관과 경공업 원자재를 요구했지만 한국측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책임을 따지고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며 맞서면서 회담이 결렬됐고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는 7개월 가량 경색된 전례가 있습니다.

남북은 24일 현재까지 장관급회담에 대한 일정을 협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하지만 25일 이에 대한 판문점 연락관 사이의 입장 교환이 있을 예정이어서 북한측의 반응이 주목됩니다.

물론 북한측의 회담 참가 여부를 우려하는 관측도 있지만 현재의 남북관계 상황에 비춰 회담에는 나올 것이라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대체적인 전망입니다.남북관계에 쌀 차관 뿐 아니라 열차 시험운행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경공업과 지하자원 협력사업 등 남북경협 현안이 많다는 점을 감안할 것이라는 게 이같은 전망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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