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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1970년대 후반 루마니아 여성도 납치


북한이 1970년대 후반에 루마니아 여성도 납치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북한에 피랍됐다 풀려난 일본인들 사이에서 ‘동유럽 여성’이라고 불렸던 강제 납북 여성이 1978년 28살의 나이로 이탈리아 로마에서 실종됐던 루마니아 태생의 조각가 도이나 붐베아 씨인 것으로 밝혀 한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자세한 소식 서울의 김세원 기자를 불러 알아보겠습니다.

워싱턴: 루마니아 여성이 북한으로 납치됐다는 사실이 어떻게 거의 30년 만에 외부에 알려지게 되었는지 그 경위부터 알려주시죠.

서울: 루마니아 여성의 납북 가능성은 월북했다가 아내와 함께 일본에 정착한 미군 탈영병 출신의 로버트 젠킨스 씨가 2004년 펴낸 회고록을 통해 처음 알려졌습니다.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다가 월북했던 젠킨스 씨는 평양에서 일본인 강제 납북자인 소가 히토미 씨와 결혼했는데요, 그는 회고록에서 “내 아내가 평양에 거주할 때 외국 여성 3명과 같이 지낸 적이 있었다. 그 중에 루마니아 출신의 여성이 한 명 있었는데 이름이 ‘도이나’ 였다”고 밝혔습니다. 회고록에 따르면 ‘도이나’는 북한 공작원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쳤으며 북한당국의 지시로 다른 월북 미군 탈영병인 제임스 드레스녹 씨와 결혼했지만 1997년 47살의 나이로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워싱턴: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2005년 루마니아 외교부는 젠킨스 씨가 말한 루마니아 여성의 신원과 납북경위를 알려 달라고 북한당국에 요구했지만 답변을 얻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번에 어떻게 신원이 확인될 수 있었나요?

서울: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루마니아에 있는 도이나 붐베아 씨 가족들은 지난해 영국의 다큐멘터리 ‘푸른 눈의 평양시민(원제: 사선을 넘어)’을 인터넷을 통해 보고 필름에 등장하는 가브리엘 드레스녹이란 청년이 도이나와 너무나 닮았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고 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북한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찍어 온 영국의 대니얼 고든 감독이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다가 지난 1962년 8월 월북해 44년 동안 북한에 살고 있는 제임스 드레스녹 씨의 평양 생활을 담은 영화입니다. 드레스녹은 영화에서 동구권 출신의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가브리엘을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가브리엘의 모습이 도이나와 너무 닮은 데다가 이름마저 도이나의 남동생인 가브리엘과 같았습니다. 게다가 도이나의 막내동생인 가브리엘 붐베아(40)씨가 보관 중이던 옛날 누나 사진을 찾아내 가브리엘의 사진과 비교해 보니 눈 코 입술이 너무 닮아 자신의 조카임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이 사실은 납북된 루마니아 여성의 신원을 1년 반 동안추적하던 루마니아 현지 신문 `에베니멘툴 질레이'에 알려져 기사화됐습니다.

워싱턴: 그러니까 도이나 붐베아 씨는 1950년생으로 28살 한창 나이였던 1978년에 북한으로 납치되었는데요. 어떻게 젊은 여성이 고향 루마니아에서 멀리 떨어진 북한까지 가게 되었을까요?

서울: 23일 한국의 한 언론 (조선일보)은 자사 특파원이 22일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서쪽으로 2백30 킬로미터 떨어진 크라이오바 시에 가서 도이나 씨의 남동생인 가브리엘씨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실었습니다.

젊었을 때 도이나씨는 조각과 그림에 뛰어났었고 1970년 이탈리아인 여행가와 결혼해 이탈리아로 건너간 뒤에는 조각가로 활동하면서 루마니아의 어머니와 두 남동생을 챙겨주는 가장 역할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에 납치되기 직전인 1978년 10월 도이나 씨가 고향으로 전화해 “한 이탈리아 남자가 일본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면서 “일본에서 전시회를 열고 나면 우리 가족이 생계를 위해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게 마지막 연락이었습니다. 정황을 종합해보면 도이나 씨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일본에서 전시회를 열어주겠다는 북한 공작원의 말을 믿고, 그를 따라 나섰다가 납치된 것 같습니다..

워싱턴: 도이나 붐베아 씨의 가족들이 평양의 조카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하던데 가족상봉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습니까?

서울: 도이나 씨 가족들의 소망은 평양에 살고 있는 조카를 한 번만이라도 보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한 달 전부터 몇 번이나 루마니아 정부에 조카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아직까지 반응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평양주재 루마니아대사관 영사과에 직접 A4 용지 두 장 분량의 편지를 써서 이메일로 전달했다고 합니다. 평양 방문은 불가능할 것 같아서 북한측에는 아예 조카와의 상봉을 요구하지 않았고, 다만 제3국 같은 중립지대에서 만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워싱턴: 그런데 도이나 붐베아 씨의 사례말고도 북한의 외국인 납치 사례는 매우 많다지요. 납북 일본인 송환 문제가 북-일 간 대화의 최대 걸림돌이기도 합니다만 북한이 외국인을 납치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서울: 일본납북자구조연합은 지난해 미국 의회에서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전세계 12개국에서 납치한 사람 가운데 최소한 5백23명을 억류하고 있다. 국적별로는 한국인이 4백85명, 일본인 16명, 레바논인 4명, 말레이시아인 4명, 프랑스인 3명, 이탈리아인 3명, 중국인 2명, 네덜란드인 2명, 그리고 태국인, 루마니아인, 싱가포르인, 요르단인이 각 1명”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의 정보통들에 따르면 북한의 외국인 납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1970년대 초반 노동당 작전부 내 전담조직이 만들어져 이뤄졌다고 합니다. 북한이 외국인을 납치하는 이유는 북한 요원의 불법활동을 목격한 증인을 없애거나, 북한 해외공작 요원들에게 외국어와 현지 관습을 가르치는 강사로 활용하고, 체제선전에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파악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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