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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위기 시작부터 2.13 공동성명 까지의 행로


제5차 6자회담의 3단계 회의에서 마침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진전이 이뤄졌습니다.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당사국들의 노력이 이번 ‘2.13 공동성명’으로 구체화하기까지는 그동안 적지않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2002년 10월의 제 2차 북 핵 위기에서 이번 합의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이번 합의는 가깝게는 2005년 9.19공동성명이 나온 지 17개월 만에, 멀게는 2002년 10월 불거진 2차 북 핵 위기 이후 4년 4개월 만에 이뤄진 성과입니다.

제 2차 북 핵 위기는 지난 2002년 10월 3일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포함한 미국 대표단 8명이 북한을 방문할 당시 북한측이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하면서 촉발됐습니다. 미국은 이를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위반행위로 간주하고 합의에 의거해 매년 50만 t씩 북측에 제공하던 중유 공급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 핵 활동을 동결하는 대가로 경수로 원자로와 중유를 제공받기로 동의했었습니다.

북한은 이같은 미국측의 조처에 크게 반발하면서 미국의 행위가 제네바 합의의 파기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2002년 12월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 할 채비를 갖추고 핵 계획의 동결 여부를 감시하던 북한 상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추방했습니다. 이어2003년 1월 북한은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를 공식 선언하면서 북한 핵 위기는 악화일로를 달리게 됩니다.

그러던 2003년 4월 북한의 전통적인 우방인 중국이 미국과 북한의 중재자로 나서면서 베이징에서 3자회담이 개최되고, 여기에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이 참가하면서 북 핵 문제의 해법이 6자회담이라는 다자적인 구도를 갖추게 됐습니다.

이렇게 탄생된 6자회담은 2003년 8월 1차회담을 시작으로 2004년 2차와 3차 회담이 차례로 열렸지만 미국과 북한은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그로 인한 위기는 계속됐습니다. 미국은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 (CVID)’ 를 요구했고, 이에 북한은 미국이 제안하는 리비아식 선 핵포기 논의는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미국이 먼저 적대적인 대북정책을 철회해야 한다는 논리로 맞섰습니다.

6자회담이 이처럼 난항을 거듭하던 와중에 북한은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를 선언합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200만Kw 대북 전기 제공이라는 제안으로 북한은 다시 6자회담의 협상장으로 복귀해 급기야 같은 해 9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4차 2단계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에 합의하게 됩니다.

9.19 베이징 공동성명의 극적인 타결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전진의 기반이 마련되고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미국의 대북한 금융제재라는 또 다른 암초에 부딪쳐 와해되고 맙니다.

미국 재무부는 북한당국의 달러화 위조 행위와 돈세탁 혐의로 마카오에 소재한 방코델타아시아 (BDA)은행의 북한자금을 동결하도록 조치합니다. 미국 정부는 더 나아가 북한의 불법활동을 지원하는 다른 나라들의 금융기관들에도 미국 금융기관들과의 거래를 전면 차단하도록 하는 등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를 강화합니다.

미국은 이러한 금융제재는 북한의 불법행위에 관한 것으로 6자회담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북한은 이에 대한 반발로 2005년 11월 제5차 회담을 끝으로 6자회담 참여를 거부합니다. 이로 인해 6자회담은 일년 이상 장기간‘휴회’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이후 북한은 계속해서 미국에 BDA 의 동결된 자금을 풀어줄 것을 주장했지만 미국측이 이를 거부하자 급기야 지난해 7월 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이어서 10월에는 핵실험을 강행합니다. 이에 국제사회는 북한의 도발행위를 엄중히 규탄하는 대북제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하고 그에 따른 강력한 대북제재가 실행되면서 한반도의 위기는 최고조에 달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 중국 등 이해당사국들은 위기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외교중재 노력을 펼쳤고 미국도 6자회담의 틀 안에서만 북한과 회담하겠다던 기존의 입장에서 좀 더 유연한 자세를 보이며 북한의 양자접촉 제의에 응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올해 초 열린 북미 베를린 양자회담에서 북한이 진정한 핵 폐기를 위해 취해야 할 초기 조치와 이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를 둘러싼 모종의 합의가 도출됐습니다.

회동에서 합의한 내용은 제5차 6자회담의 3단계 회의가 열리기 전까지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지만 베를린에서 이뤄진 합의를 기반으로 이번 6자회담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결국 북한에 대한 2차 북 핵 위기가 발발한 지 4년 4개월 만에 `2.13 이행계획 합의’라는 소중한 외교 성과가 도출되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북핵 사태는 실천을 이행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으며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도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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