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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적 북한 묘사로 호평받는 소설  '고려의 주검' - 제임스 처치의 작품세계


엠씨) 최근 북한을 배경으로 하는 한 서방 작가의 추리 소설이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고려의 주검 (A Corpse in the Koryo)’ 이란 제목의 이 소설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나라 가운데 하나인 북한에 대한 놀랍도록 사실적인 묘사와 재미있는 구성으로 문학적으로도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신문 등 언론들은 이 소설이 문학을 통해 북한에 대한 서방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미정 기자가 이 책의 저자 제임스 처치(James Church) 씨와 이메일을 통해 대담을 주고받았습니다.

엠씨) 제임스 처치라는 이름은 가명이라던데, 저자가 왜 본명을 숨기고 가명을 쓰는지 궁금합니다.

기자) 네, 그렇습니다. 제임스 처치 씨는 전직 서방 정보 장교로 수 십년 간 아시아 지역 전문가로 활동했습니다. 처치 씨는 또 여러 해에 걸쳐 북한 내부를 두루 둘러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직업적 특성 때문에 처치 씨는 자신의 목소리가 밝혀지는 것을 꺼려했고, 그래서 이메일을 통해 저작 동기와 책의 내용 등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게 된 것입니다.

엠씨) 이 책이 `워싱턴포스트’ 등 언론으로 부터 주목을 받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기자) 네, ‘고려의 주검’은 구성면에서 경찰 수사관들의 눈을 통해 1980년대 초 소련 연방의 삶을 묘사했던 마틴 스미스의 소설 ‘고르키 공원(Gorky Park)’과 비슷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고르키 공원’은 모스크바의 경찰 수사관이 고르키 공원에서 벌어진 강력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중 이 사건이 최고 권력층과 연계됐다는 사실을 알아낸다는 내용인데요, ‘고려의 주검’도 주인공인 오 수사관이 북한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정치권의 커다란 음모를 발견한다는 내용으로 돼 있습니다. 구성면에서만 보면 평범한 추리소설의 전통적인 형태와 별로 다를 바가 없는데요,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지금까지 서방세계에 팽배한 통념적 인식을 뛰어 넘는 북한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력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 전문가인 미국 노틸러스연구소의 피터 헤이즈 소장은 이 소설에 대해 `북한 내부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리고 10년 전 공산권이 몰락했음에도 북한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해주는 최고의 비공식 설명서’라고 극찬했습니다. 그는 또 `고려의 주검’은 부시 대통령과 그의 국가안보팀이 취침 전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엠씨) 네, 그러면 저자 처치 씨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기자) 처치 씨는 처음에는 단지 좋은 추리소설을 한 권 쓰겠다는 단순한 목적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날 북한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기다리던 중 불현듯 지금까지 북한을 전체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처치 씨는 북한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쓸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럴수록 이야기가 더욱 더 흥미있게 발전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아무런 정치적 의도도 없다면서 단지 추리소설로 즐겨달라고 처치 씨는 당부했습니다. 다만 처치 씨는 자신이 정보장교로 근무하던 때 종종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억압받는 나라의 하나로 보던 서구사회의 도덕적 잣대를 통해 모든 정보의 틀을 맞춰야 했었다고 술회했습니다. 그는 이런 한계 때문에 좌절도 했고, 그래서 북한에 대한 자신의 긴밀한 지식을 소설 형식을 빌어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엠씨) 그렇군요. 그러면 책의 내용이 궁금해지네요. 어떤 내용입니까?

기자) 네, 이야기는 아일랜드의 수사관인 리치가 주인공인 북한의 오 수사관을 체코 프라하에서 조사하면서 오 수사관이 연루됐던 일련의 살인사건에 대해 설명을 듣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사건은 오 수사관이 한밤중에 한적한 도로를 지나가는 한 차량의 번호판 사진을 찍으라는 상사 백 수사관의 지시로 잠복근무를 하면서 시작됩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지시사항만을 전달받아 수행하는 수사관들의 관습에 따라 오 수사관은 셔터를 누르지만 사진기의 배터리가 떨어져 사진찍기는 허사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차에는 번호판이 없었고, 또 이 벤츠 차량의 운전자는 아무도 몰래 잠복근무를 하고 있던 오 수사관에게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서 경적을 울립니다. 이후 한 외국인이 평양시내 고려호텔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연이어 오 수사관의 상사인 백 수사관과 국가수사본부의 강 부국장 등 오 수사관 주변인물들이 차례로 살해되면서 사건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듭니다.

결국 오 수사관은 이들 사건의 배후에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는 북한 내 두 정부조직이 개입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움직임이 감시당하고 보고되는 북한체제의 면모가 잘 드러나고, 오 수사관도 누가 적이고 친구인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자신의 주변을 살펴나가면서 독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됩니다.

엠씨)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여러 장소들은 작가가 실제로 북한을 탐방한 경험을 토대로 썼기 때문에 아주 생생하다는 평가가 있는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처치 씨는 소설 속의 특정인물과 장소는 세 가지에 근거해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북한에 직접 가본 경험과 수사관들과 같은 특정인물들 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의 다양한 북한 사람들을 만나본 경험, 그리고 한반도에 대한 자신의 깊고 지속적인 애착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에는 평양 뿐 아니라 국경도시 만포, 신만포 등 실제 지역과 고려호텔이나 주체탑 등 북한 내 많은 장소들이 가보지 않은 사람은 쓸 수 없을 정도로 자세하고 생생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그리고 파괴되고 헐벗은 곳이라는 북한에 대한 통상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오염되지 않은 해변과 산악지역 등 북한의 아름다운 자연이 소설 곳곳에 그려져 있습니다.

엠씨) 북한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낙후되고 피폐한 환경을 지적하는데 이 소설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예외인 것 같습니다.

기자) 네, 처치 씨는 이에 관해 서방세계 사람들은 종종 자신들도 눈앞에 이런 모습들을 목격하지만 별다른 관심없이 지나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북한에 가서 도시의 남루한 면모를 보면 그런 것을 다른 데서는 전혀 못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처치 씨는 런던이나 뉴욕에도 이처럼 피폐한 모습은 있다면서, 이는 단순히 북한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또 하나의 장애로 작용할 뿐이지 어떤 도덕적인 잣대로 평가할 일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엠씨) 하지만 일부에서는 작가가 현실을 외면한 채 북한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요. 소설의 마지막에 보면 생사의 고비를 넘긴 오 수사관이 북한으로 되돌아갔다고 강하게 암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현실은 하루에도 4명 꼴로 탈북자가 발생하는데 말이죠.

기자) 처치 씨는 북한 사람 모두가 오 수사관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오 수사관은 누구를 상징하거나 대변하는 인물은 아니며, 단지 할아버지의 조국 북한을 떠난다는 것은 그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자아에 배치되는 행위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오 수사관이 한 국경도시에서 만난 핀란드계 혼혈여성과의 대화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오 수사관이 이 여인에게 햇빛이 비치는 날이면 평양의 강물이 반짝인다고 하자, 그 여인은 그에게 진짜 외부세계를 가본 적이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오 수사관은 자신은 해외에 가봤지만 어느 곳에나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존재한다며 북한도 마찬가지라고 응수합니다. 그러면서 오 수사관은 세상에는 완벽한 것은 없으며 당신들이 ‘신이 저버린 곳’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자신은 살고 있으며 그곳이 자신의 삶의 터전이라고 강조합니다.

엠씨) 이 소설에 대해, 오 수사관이 아일랜드 수사관 리치에게 사건경위를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됐다고 하셨는데요. 특별히 이런 형식을 취한 이유가 있나요?

기자) 네, 이 소설에는 두 사람이 대화 중 충돌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요, 처치 씨는 이 두 사람의 대치는 소설의 본구성 만큼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두 사람은 북한과 북한에 대해 틀에 박힌 지식을 지닌 외부세계가 만날 때 나타나는 긴장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리치가 오 수사관에게 당신 민족은 왜 그렇게 화를 잘 내느냐고 묻습니다. 오 수사관은 한 할머니에게 아무런 이유없이 감정을 철저히 파괴당한 한 어린소녀의 얘기를 비유적으로 들려줍니다. 이는 외부세계는 상상할 수 없는 끊임없는 정치적 사회적 압력 속에서 살고 있는 북한 사람들의 숨겨진 감정상태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피터 헤이즈 노틸러스연구소 소장은 리치와 오 수사관의 대화와 충돌은 때때로 북한과 미국 간에 성과 없이 계속되는 핵 협상의 공명처럼 들린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엠씨) 네, 마지막으로 제임스 처치 씨가 속편을 준비 중이란 말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기자) 네, 처치 씨는 올해 후반에 출간할 예정으로 현재 속편을 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처치 씨는 속편은 외국 경찰 수사관이 등장하고, 오 수사관이 상상도 못할 장소에 가게 되는 등 흥미진진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엠씨) 네 ‘고려의 주검’ 속편, 많이 기대되는데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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