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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축구를 싫어하는 나라?


이딸~리아! 이딸~리아! 이따알~~~리아!

전세계 지구촌 축제의 마지막 날, 24년 만에 월드컵 우승컵을 거머쥔 아주리 군단의 승리는 이곳 워싱턴의 이탈리아인들을 유럽의 붉은악마로 만들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승리가 확정되던 즈음에 조지타운(워싱턴의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번화가)의 한 레스토랑에서 친구와 이른 저녁을 먹고 막 거리로 나서던 저는 아주 볼만한 구경거리를 만나게 되었죠.

끝도 보이지 않는 이탈리아 국기를 내건 차량들이 레스토랑과 젊은이들로 가득한 조지타운의 도로를 거의 마비상태로 만들었고, 규칙적인 자동차 경적소리와 함께 이딸~리아! 를 외치며 워싱턴의 이탈리아인들은 그들만의 승리를 마음껏 자축했습니다.

뜨거운 여름을 한 층 더 달아오르게 했던 2006년 독일 월드컵. 이곳 미국에서 역시 옐로카드 16장에 퇴장 당한 선수만 4명이었던 네덜란드-포르투갈 전은 유럽과 남미 사람들을 들끓게 했고, 카메라에도 잘 잡히지 않을 만큼 갑작스러웠던 지단의 박치기 퇴장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의 동정표를 얻기도 했습니다.

여느 때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30여 일간의 월드컵 여정. 그러나 한가지 놀라웠던 사실은 미국의 월드컵 문화는 미국 사람들이 아닌 바로 남미와 유럽 사람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축구에 열광하지 않는 미국 사람들. 오늘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맞았던 2006년 월드컵을 통해 ‘축구를 싫어하는 나라, 미국’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월드컵이 시작하기도 전, 붉은 악마들의 응원물결로 나라가 온통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던 한국과는 달리 월드컵이 시작한 이후에도 이곳 워싱턴의 분위기는 좀처럼 들뜨지 않았습니다.

독일과 코스타리카의 개막전 경기가 있은 다음날에도 워싱턴 포스트나 뉴욕 타임즈의 스포츠 섹션은 MLB (미국 프로야구 리그)에 관한 기사들이 주를 이루었고, 독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축구 경기에 관한 보도는 큰 지면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축구의 경기 규칙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저이지만 ‘월드컵’이기 때문에 다른 팀들의 경기까지 꼭 챙겨보곤 했던 2002년의 기억들은 심지어 미국 팀의 경기에도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이곳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월드컵에 열광하지 않는 미국인들. 그들은 왜 축구에 관심이 없는 걸까요?

붉은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열심히 외치던 한국소녀는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미국인 친구 세 명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너희는 왜 축구를 싫어하는거야?”


1. 미국인들의 축구에 관한 인식: 축구는 재미가 없다?

JEFF (American, from Boston, male) “축구는 재미가 없어. 풋볼은 선수들끼리 태클도 걸고, 점프도 하고, 과격한 몸싸움을 하는 운동이잖아. 선수들은 힘들지 모르지만 보는 사람들은 정말 재미있지. 그에 비해 축구는 너무 단조롭지 않니? 두시간 내내 그냥 볼만 쫓아다니는 것 밖에 더해? 축구는 무조건 한 골에 1점, 한 경기 당 많아 봐야 서너골이 전부이지만, 그에 비해 풋볼은 점수의 폭도 크고 승부의 변수도 꽤 많은 편이라 무척이나 스릴있고 박진감이 넘치지.


2. 미국인들의 축구에 관한 인식: 축구는 비인기 종목이다?

GOLDEN (American, from Chicago, male) “미국 남자애들도 여렸을 때는 축구를 즐겨 해.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시점이 지나면 모두가 풋볼을 훨씬 선호하게 되더라구. 초등학교 때 축구선수를 하던 아이들도 더 상급학교로 진학하면서는 종목을 풋볼로 바꾸는 게 일반적이야. 풋볼에 비해 축구를 선호하는 선수들이 많이 없다는 거지. 그래서 결국은 유럽처럼 프로 축구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지 않는 거지.”


3. 미국인들의 축구에 관한 인식: 축구는 여자들의 놀이다?

MEI (Chinese-American, from San Francisco, female) “미국에서 축구는 일반적으로 힘이 없고 약한 어린애들이나 여자들의 게임이라는 인식이 강해. 너도 어렸을 때 축구경기 해봐서 알잖아? (한국에서는 축구가 여자들에게 일반적인 놀이가 아니라고 대답하자 짐짓 놀라던 MEI) 축구는 아주 단순한 게임이지. 지난번에 수퍼볼 봤지? 축구랑은 정말 비교도 않되게 역동적이지 않니? 미국인들은 좀 더 다이나믹하고 모험적인 걸 원하는 것 같아.


한마디로 ‘재미가 없다’는 것이 이들 미국 젊은이들의 축구에 대한 공통적인 의견이었습니다. ‘재미’의 관점이 상대적으로 다를 수 있기는 하겠지만 오히려 쉴새 없이 이어지는 득점보다는 가뭄에 단비 내리듯 터지는 기막힌 한 두 골이 축구를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던 저와는 상당히 많이 다른 의견이었습니다.

오늘(7월11일) EXPRESS 라는 미국의 한 일간지에서는 재미있는 설문조사 발표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2010년 월드컵이 되면 미국에서 축구의 인기가 지금보다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이에 응답자의 46%가 “그렇다”라고 대답한 반면 절반이 넘는 54%가 “아니다”라는 답변을 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이 여론조사 결과는 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월드컵은 미국 사람들에게 그다지 큰 인기를 얻지 못할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축구를 즐기지 않는 미국 내의 분위기를 그나마 ‘월드컵스럽게’ 이끄는 사람들은 브라질, 멕시코 등 남미 계통의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미국인 친구의 말에 따르면 심지어 2002년에는 미국의 스패니쉬 방송 채널을 통해서만 월드컵의 경기를 볼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스포츠 전문 채널인 ESPN과 미국의 4대 방송국 중 하나인 ABC가 모든 경기를 생방송으로 중계했던 이번 독일 월드컵은 축구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미국인들의 관점에서 아주 이례적인 경우였습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앞으로 미국내의 축구가 사람들의 관심을 보다 끌어 모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설문조사의 결과처럼 시간이 지난다 해도 미국인들에게 그저 축구는 ‘재미없는 경기’로만 남게 될까요? 제 주위 친구들 역시 하나같이 'No'라고 대답했지만 글쎄요, 그건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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