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지난 5일 발표한 2006 연례 국제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해외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를 처음으로 거론하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현대판 노예인가? 아니면 극도로 열악한 북한의 노동 환경을 봤을때 그래도 선택 받은 사람들인가? 관측통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북한 정부의 해외 노동력 수출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김영권 기자와 함께 북한 노동자 3백명 이상이 일하고 있는 체코를 중심으로 해외 북한 노동자들의 실태와 체코 당국의 조처, 그리고 인권 단체의 견해 등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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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전체 북한 노동자수는 얼마나 됩니까?
답: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으나 관련 업무에 종사했던 탈북자들에 따르면 적어도 만 5천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은 가깝게는 러시아와 중국에서부터 멀리 체코와 폴란드 불가리아 등 동유럽과 러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다양한 곳에서 일하고 있고 대개 봉제 공장과 조선소, 벌목장, 냉동 창고 등지에서 계약직으로 3년에서 5년정도 일한뒤 북한으로 돌아갑니다.
북한 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자를 해외에 보냈으나, 벌목공 등으로 수와 직종이 한정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2천년대 들어 북한 정부가 외화벌이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되면서 그 수가 크게 증가했고 특히 2002년 경제 관리 개선 조치 이후 더 많은 노동 인력을 해외에 파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문: 해외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가 언제부터 제기됐는까?
답: 과거 러시아 벌목공들의 힘든 생활을 일부 언론이 제기한 바 있지만 해외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시기는 2년전부터 입니다. 체코를 중심으로 중부와 동부 유럽에서 가장 활발하게 인권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중 하나인 ‘이주 온라인’(Migration Online)의 마렉 카넥(Marek Canek) 프로젝트 코디네이터의 말을 잠시 들어보시죠?
카넥씨는 체코 주간지 레스펙(Respekt)이 2004년 체코 국내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봉제 공장 북한 노동자들의 실태를 고발하는 르포기사를 처음으로 내보내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이후 체코 당국도 조사에 나서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공영 체코 텔레비젼 (CT) 방송이 공장의 북한 노동자들을 취재하다가 카메라맨이 북한 관계자로부터 폭행을 당하자 체코 노동 사회부와 경찰이 별도로 진상 조사를 벌였고 2달전에도 체코 당국과 비정부 기구들이 북한 노동자의 인권 문제를 놓고 비공개회의를 갖는등 체코 인권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고 카넥씨는 말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서부 일간지인 LA 타임스가 지난 1월 이 문제를 심층 취재해 보도하면서 주목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문: 체코 당국의 조사 결과와 입장을 듣기 전에 해외 북한 노동자들의 배경과 근로 환경에 관해 자세히 들어 봐야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해외에서 일하고 있습니까?
답: 해외 북한 노동자들은 근무 지역과 업종에 따라 성과 연령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체코를 들여다보면 대부분 18세에서 24세의 젊은 여성 320 여명이 봉제 공장에서 재봉사로 일하고 있는데요. 북한 체코 신발 합작 회사 사장 출신으로 체코에서 근무하다가 남한으로 망명한 김태산씨는 이들 처녀 재봉사들이 대부분 북한의 중간 간부 자녀나 출신 성분이 비교적 우수한 집안의 자녀들로 북한 당국의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쳐 파견된 여성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문: 이들의 근로 환경이 어느정도나 심각한 상황입니까?
답: 체코의 인권 단체들은 가장 기본적인 이동의 자유가 없을뿐 아니라 과다한 노동시간, 그리고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이 대부분 본인들의 주머니가 아닌 북한 정부로 들어가는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체코내 저명한 인권 운동가이자 비정부 기구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재단- People in Need Foundation> 에서 ‘하나의 세계 축제-One World Festiva’를 담당하고 있는 이고르 블라제빅(Igor Blazevic)씨는 이들이 감시와 통제속에 매우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다며 시대가 달라졌을뿐 이들은 현대판 노예와 다를바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5일 미국 국무부의 연례 인신매매 보고서를 발표했던 존 밀러 인신 매매 담당 대사를 브리핑 뒤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요. 밀러 대사는 해외 북한 노동자들은 궁극적으로 인신 매매 희생자들이라고 그듭 강조했습니다.
밀러 대사는 공장의 노동자들을 자유롭게 접촉할 수 없고 노동자들 역시 이동의 자유 없이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으며 또 그들이 얼마의 임금을 받는지 조차 모른다면 이는 심각한 상황이며 인신 매매에 해당되는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문: 앞서 체코 당국이 이들 북한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에 대해 조사를 실시했다고 하셨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습니까?
답: 체코 당국은 이들 북한 노동자들과 이들을 체용한 체코 회사 모두 법규를 위반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주 온라인>의 카넥씨는 체코 외교부를 비롯해 노동 사회부, 경찰이 별도로 조사를 실시했으나 놀랍게도 노동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쯔데넥 스크로막 (Zdenek Skormach) 노동 사회부 장관은 작년 체코 언론과의 회견에서 체코 당국은 북한 여성들이 인권을 유린당했다는 증거를 찾는데 실패했다고 말하고 이 사안은 검찰이 수사하는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체코 외교부의 빗 코라르(Vit Kolar) 대변인은 체코 일간 MfD 와의 회견에서 북한 여성 재봉사들이 전혀 불평을 하지 않고 있다며 뚜렷한 증거가 없는 만큼 외교부가 다룰 사안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문: 북한 노동자들이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배경에는 아무래도 북한 사회 체제와 가족들의 안전 문제 때문이겠죠?
답: 그렇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은 보통 베트남이나 다른 동유럽 빈국 출신 노동자들과 공장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데 다른 국가 노동자들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들이 탈출을 시도하려고 마음먹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휴일에는 가끔 두 세명이 한 조가 되서 근처 수퍼마켓에서 장을 보기도 하기 때문에 탈출 기회는 많다는것이죠. 하지만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먼 타지까지 온 이 어린 북한 처녀들이 가족의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탈출을 시도하거나 체코 당국에 불만을 토로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것이 인권 단체 관계자들의 말입니다.
그러나 체코 언론인 마리 제링코바 (Marie Jelinkova) 씨가 LA 타임스 기자와 함께 북한 감시원의 틈을 벗어나 한 북한 처녀 재봉사와 나눈 대화에 따르면 이 처녀는 “체코 공장의 일을 좋아 하지 않으며 집으로 돌아 가고 싶다”고 말해 이들 북한 노동자들의 솔직한 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문: 그렇다면 조사가 모두 끝난 상황인가요?
답: 아닙니다. 체코 인권 단체와 언론들이 당국의 발표뒤에도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미국 정부도 우려를 전하자 체코 정부 산하 인권 위원회(Government of the CR Council for Human Rights) 가 자체적으로 조사를 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 사안이 체코와 북한간의 민간한 외교적 사안으로 확산될 수 있기때문에 체코 당국 역시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체코 노동 사회국의 한 직원은 체코내 은행 계좌에 입금된 돈이 북한으로 어떻게 들어가는지 감시하면 북한 정부가 노동자의 임금을 어떻게 강탈하는지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체코 당국이 압박을 가할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엠씨: 체코 정계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기자: 대부분의 체코 정치인들도 외교문제 때문에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동구 유럽 인권의 상징적 인물 가운데 한 명인 바츨라프 하벨 전 대통령이 “북한 노동자들의 현대적 노예화에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바 있습니다. 일부 정치인들은 법에 저촉되는 사실을 찾기 힘든 만큼 그저 북한 노동자들이 체코에서 민주주의 제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으로 배우고 북한으로 돌아가 북한 사회에 적용하게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엠씨: 그렇다면 현재 체코 인권 단체들은 최선의 방법으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까?
기자: 궁극적으로 노동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체코 회사들의 북한 노동자 채용을 허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주 온라인의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마렉 카넥씨는 체코가 이러한 현대판 노예 상황을 허가한다는 것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동시에 체코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라며 체코의 많은 인권 단체들은 근로 조건과 임금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을 막아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체코 인권 단체 관계자들은 이들 북한 노동자들이 만드는 제품을 소비하는 서부 유럽 국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현재 국제 인권 기구인 <휴먼 롸이츠 워치> 가 체코와 폴란드, 불가리아내 북한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려속에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던 체코 신발 회사 SAM사가 작년에 북한과의 관계를 중단하고 더이상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일부 비정부 기구 관계자들은 이 문제가 오는 19일 첫 출범하는 유엔 인권 이사회에서 북한 인권 관련 의제에 포함되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해외 북한 노동자에 대한 인권 문제 제기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문: 중국의 봉제 공장에도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고 하는데 상황은 어떻습니까?
답: 네, 체코뿐 아니라 중국 등 개발 도상국에서는 북한 노동자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일을 잘하고 불평도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조선족 언론인 리봉수씨는 중국내 북한 노동자들에 대해 미국의 소리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 북한 노동자들은 일을 잘하거든요. 학력도 높고..조직 균열이 좋습니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월급 높여달라고 해서 안해주면 때려치고 나갑니다. 그만둬요. 그런데 그분들(북한 노동자들)은 그런것 없잖아요. 예를 들면 어떤때 수출 계획이 15일이다 하면 그 기간안에 마쳐야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중국 사람들은 그런것 생각 안한단 말입니다. 하지만 북한 노동자들은 그런 불평 없고 목표 기간안에 일을 잘 마칩니다. 인기가 좋죠”
이씨는 북한 노동자들이 학력도 높고 일도 잘하기 때문에 고용자들이 좋아하고, 북한 노동자들 역시 북한 내부보다 임금을 많이 받아서 서로에게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중국내 북한 근로자들은 한 달 봉급 미화 50-60 달러, 체코 노동자들은 250 달러 정도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노동자들이 받는 실질적인 봉급은 개성 공단 근로자들이 북한돈으로 환산해 받는 북한돈 5-6 천원 안팎! 나머지 임금은 모두 북한 정부로 들어가는 것으로 인권 단체등 관측통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보통 2-3천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 북한 일반 노동자들보다 임금이 높기 때문에 그만큼 북한에서는 해외 노동직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 없이 감시와 통제속에서 과로한 노동에 시달리는 북한 노동자들을 과연 어떤 기준을 놓고 바라봐야 할지….개성 공단 근로자 문제와 더불어 앞으로 논란이 더욱 가열될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