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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국가보위부에 끌려가 공개처형 위기에 있는 형의 구명 호소에 나선 탈북자 손정훈씨 [탈북자 통신: 김기혁]


2002년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손정훈(43세)씨는 ‘올해 1월 평양 국가보위부에 끌려간 형 손정남(48세)이 공개처형 위기에 있다’며 구명을 호소했습니다. 손씨는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숭의동지회 등 탈북자단체와 함께 12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형이 동생에게 평양 소식을 전해줬다고 해서 남조선의 스파이, 민족반역자로 몰려 공개처형 위기에 놓여 있다”면서 “10일 전에 중국에 나온 친척을 통해서 이 소식을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손정훈] “제가 우리 형 문제에 가깝게 가장 가깝게 정보를 줄 수 있는 사람이 국가 보위부 고위직 간부한테 일단을 뇌물을 좀 먹이고 알아본 데 의하면 총살은 확실시 되게 자기네 내부 문서에 일단 사인이 되어 있다. 거기까지 제가 일단 알고 있습니다.” 동생이 밝힌 손정남씨의 사연은 기구했습니다.

손씨의 매부는 수도방위사령부 사단장, 고모부는 공병1여단 보위부장으로 있는 등 친인척들이 고위층에 있었고 손정남 씨는 북한 로켓(미사일) 연구소에 있는 등 이른바 잘나가는 집안에 속했습니다. 그런 손정남씨가 공개처형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북한에서 손씨의 부인이 겪은 사건이 발단이 됐습니다. 90년대 후반 반체제인 발언을 했다는 주변 사람의 신고 때문에 손정남씨의 부인은 북한 사법당국에 연행되었습니다.

당시 손씨의 부인은 임신 6개월이었습니다. 손씨의 부인은 2달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구타를 당해 임신 8개월 되던 때 유산을 하고 맙니다. 이 때문에 가석방으로 나올 수 있었지만 손정남씨는 부인의 일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손정훈] “중앙당 조직부 신소에다 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그래요. 어떻게 사법 기관에서 임신부 조사 과정에 그렇게 발로 차고 때려서 강제유산을 시킬 수 있냐. 그런데 꼭대기 중앙당에서는 아무런 해결책도 내놓지 않고 오히려 형이 근무하고 있는 당위원회 당 비서한테 그런 걸 들고 말라는 식으로 압력을 가했다고 그래요.”

이 사건으로 북한 체제에 회의를 느낀 손정남씨는 탈북을 결심하게 됐고 의도적으로 함경북도 청진으로 자원 진출해 아내와 딸과 함께 98년 탈북을 감행했습니다. 탈북에는 성공했지만 중국 체류 3개월만에 손씨의 아내는 유산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손정남씨는 탈북 후 3년간 중국에서 체류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 남한 선교사를 만나 신앙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국 심양에서 1년간 신학공부를 하는 등 ‘북한에 복음을 전달해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헌신하겠다’는 신념으로 활동하던 손정남씨는 동료의 밀고로 2001년 중국 공안에 체포, 그해 1월21일 강제북송 되었습니다. 이후 3년간 함경북도 도 보위부 구류장에 수감되어 온갖 고문을 받았고 고위층 친척들의 보증으로 극적으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손정훈] “그래서 증국 공안에 붙잡혀서 2001년에 북한으로 송환, 함경부도 도 보위부에서 수감 생활을 하다가. 친인척들이 고위층에 있으니까 이 사람들이 “다시 우리 조카가 재 탈북 하지 않는다”는 3대 보증 수표를 해서 일단 3년 만에 보위부 수감소에서 들 것에 실려 나왔어요. 걷지도 못하고.“ 평양의 동생집에서 요양을 하던 손정남씨는 하나뿐인 남동생과 딸의 소식이 궁금해 2004년 5월 잠시 중국에 다녀올 결심을 하게 됩니다.

중국에 있는 친척을 통해 형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손정훈씨는 중국 모처에서 형을 만났습니다. 그때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손정남씨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손정훈] “너무 매 맞고 전기고문 받고 물고문도 받고 (물에) 몸을 목까지 잠기게 해놓고 이렇게 하고, 나오니까 관절을 보니까 새카맣게 썩었드라고.”

당시 손정훈 씨가 형과 함께 한달 동안 중국에 체류하면서 나눈 이야기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손정훈] “형제지간에 그 무엇인가를 교류하고 북한의 정보라고 해봤자 형한테 들은 이야기가 국제적십자사나 남한 정부에서 들어간 구호물자 자체가 민간에 전달이 안되고 암시장에서 다 팔리고 있다.

역시 평양이나 여러 국내에서 사는 것 그 자체가 전쟁이라는 그런 이야기 밖에. 또 그리고 형제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고 북한 주민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김정일 정권에 대한 국민 의식이라고 할까 대체로 그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형님하고. 그런데 이게 어떻게 돼서 무슨 민족반역죄고 남한의 간첩이고 이러한 딱지를 씌워서 총살할 수 있냐.”

손정남 씨는 북한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이후 재탈북 사실이 발각돼 “탈북해서 동생에게 평양 소식을 전해줬다”는 죄로 올해 1월 평양의 동생집에서 국가보위부 요원들에게 납치되다시피 끌려갔다고 합니다. 평양에 있는 손씨의 지인들이 구출을 위해 다방면으로 손을 썼지만 이미 처형이 결정돼 마지막 수단으로 형의 소식을 언론에 공개하게 됐다는 손정훈 씨.

[손정훈] “국내외의 양심적인 언론 앞에서 우리 형님의 처형만큼은 정말 막아야 되겠다. 북한에 식량이나 경제적 원조가 아니라 북한에 진정한 인권과 자유를 보장해주는 그러한 국제사회나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에서 오늘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손정훈 씨는 김정일에게 “나의 형 손정남을 죽이지 말라”고 촉구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보내드린 탈북자 통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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