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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이모저모


“소원이라는 것은 나 죽기 전에 한번 더 만나보는 것 그거나 소원이지요. 이제 만나봤으니까 소원을 없어요. 어떻게 뭐 해먹고 사냐 하느냐 하니까 배급받아 먹고 산다는데.., 보고 죽으니까 이제 소원을 다 풀었지뭐”

제13차 이산가족 상봉단이 지난 25일 금강산에서 작별상봉을 마치고 각기 한국과 북한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번 상봉에서는 한국 공동취재단이 '납북'과 '나포'라는 표현을 방송보도에 사용했다는 이유로 북한측의 취재저지가 있었고 급기야 남측취재단이 상봉장에서 철수하는 등의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13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이모저모를 전해드립니다.

VOA: 이번 상봉단 가운데 1진의 경우 귀환지연 등의 문제도 있었는데, 전체적인 일정을 순조럽게 진행된 것 같습니다. 지난 토요일 오후 예정대로 상봉단이 귀가 했네요

서울: 그렇습니다. 북한의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했던 남측 상봉단 2진 430명이 이 오후 1시 금강산 상봉을 마치고 오후 4시에 강원도 속초에 도착한 뒤 개별적으로 귀가를 해 이번 13차 이산가족 상봉의 5박6일 일정이 무사히 마무리 되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이번 행사는 북측의 취재저지와 남측취재단의 대치 상봉단 귀환 지연 등의 우여곡절 끝에 일정을 마무리했는데요. 남북이 처한 상황과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속보 형식으로 국내에 전해지는 상봉장 소식으로는 상봉단의 안전에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많았는데요. 귀국한 이산가족들의 이야기로는 상봉행사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먼저 여동생과 사촌동생을 만나고 돌아온 함경북도 신고산이 고향인 78살 이운생 할머니의 목소리입니다.

“ 여동생하고 사촌 남동생하고 반갑기만 하지요. 내~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그래도 동상들을 만났으니까 반갑지.. 아들이요. 57년 만에 마음이 이제 좀 많이 가라앉으신 것 같아요. 갔다오시고 나서요. 마음이 놓이신데요.”

VOA: 가족을 만난 이산가족 당사자도 그렇고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도 마찬가지고. 그동안의 그리움과 마음 졸임을 풀어 놓을 수 있는 시간이었겠지요.

서울: 그렇습니다. 2박3일간의 짧은 일정동안 56년 세월을 풀어놓기에 분명 충분하지 않지만 그래도 잘있다는 얼굴이나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살다보니 이런 기쁨도 있구나 하는 마음이랍니다. 뒤에 들으신 목소리를 이번에 두고 온 아들을 동생을 만나고 돌아온 85살 윤정노 할아버님의 며느리인데요. 한국으로 내려올 때 헤어진 부모님과 부인, 두 아들과 동생 가운데 단 2사람이 혈육만 만날 수 있었지만 그간의 시름을 내려놓은 듯 흡족해 하셨다고 합니다.

“ 말도 만나니까 말이 안 되더라구요. 그것도 좀 오래 앉아서 말을 해야 생각을 해서 말을 하는데 조금 앉았다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하니까 그것도 생각도 잘 안 나고,, 또 부모님도 다 돌아가시고 동상들도 다 죽고 했으니까 할말도 없고 그냥 서로 잘있냐~ 잘없냐~ 그러고 말았지요.”

VOA: 반갑기도 하지만 서먹하기도 하고 참~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서울: 그런 사연이 한 두가족이 아니고 이번 13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만도 수백명입니다. 1진에 참가한 북측가족을 찾는 남쪽의 99가족과 2진으로 금강산을 찾은 남쪽의 가족 430여명 모두 다 이런 사연의 주인공인데요.

전국에 흩어져 살던 이산가족이 강원도 속초에서 모여 금강산에서 가족을 만나고 다시 돌아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수고를 하더라도 꿈에서라도 보고 싶던 가족을 직접 만난다는 마음에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먼 길을 나서는 것입니다.

VOA: 자, 이번 13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남측취재단과 북측과의 미묘한 충돌 ! 빼 놓을 수 가 없는 부분이지요. 상봉행사가 끝나기도 전에 취재단이 철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지 않습니까?

서울: 그렇습니다. 분단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하기 위한 지극히 인도주의적인 이산가족 상봉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남북한의 체제적 대립이 불거진 사건이었습니다. 분단 상황이 낳은 `납북'이라는 표현 때문에 남과 북의 대치'가 재현됐다는 점에서 이번 행사는 남북관계에서 넘어야할 산이 남아있음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공동취재단의 안홍욱 기자입니다.

“ 그(북)쪽이 이야기 하는 ‘납북자’, ‘나포’라는 표현은 저희로서는 그냥 편하게 자유롭게 쓰는 말인데, 그래야 사람들에게 뜻이 정확하게 전달이 되고 그런데 북쪽에서는 그 말을 체제에 대한 도전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시각 차이가 컸던 것이지요, 저희로서는 그 표현을 안 쓸수 는 없고...그래서 충돌이 생긴것이지요.”

VOA: 그러니까 한국공동취재단의 보도 내용 가운데 납북자라는 표현이 문제가 된것이지요?

서울: 그렇습니다. 파행은 상봉 첫 날인 지난 20일 북측이 한국내 방송을 위해 위성으로 보낼 리포트를 제작하는 방송기자의 보도내용에 들어간 ‘납북'이라는 표현 때문이었습니다. 북한측은 이 표현을 문제삼아 송출을 막으면서 시작됐는데요.

이날 밤 남측 공동취재단이 북측에 취재 방해를 항의했고 북측은 다음날인 21일 남측상봉단장과 기자들에게 서면사죄를 요구한 것입니다. 북측의 그런 요구는 송출 방해 행위에 대한 일부 사실관계가 남측언론을 통해 보도됨으로써 북측이 자극을 받았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 지난해 11월 열렸던 12차 상봉행사에서도 ‘납북자’라는 표현이 한번 문제가 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갈 때부터 그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는 있었는데 처음에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특히나 위성으로 송출하는 화면은 문제 삼아서 한 것은 예상된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국군포로나 납북자들이 간간히 포함되어 있기도 했는데요. 지난 상봉 때에도 미묘한 갈등이 있었지만 이번만큼 사태가 악화되지는 않았었습니다. 이번 상봉에서 납북자라는 표현은 지난 69년 납북된 어부 천문석 씨가 37년만에 남측 아내 서선애 씨를 만나는 장면을 보도하는 부분이었는데요.

보도제작을 보고 여기에 반반한 북측요원들의 취재저지가 언론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남측기자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북측은 다음날인 21일 급기야 오전에 예상되어 있던 이산가족 개별상봉을 거부하면서 남측의 사과를 개별상봉의 전제조건처럼 만들어 버렸고 정부는 기자단의 상황과 이산가족의 상봉을 고려해 ‘유감’이라는 모호한 표현의 문건을 북측에 전하고 상봉행사가 재개 되었습니다.

VOA: 한국정부측의 ‘유감표명’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서울: 그렇습니다. 한국정부의 유감표명을 두고 일각에서는 사과를 받아야 하는 마당에 오히려 사과를 한 꼴이 되었다는 평가를 하고 있고, 또 일각에서는 기자단과 상봉단의 원만한 진행을 위한 한국정부의 고육지책이었다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습니다만 북측이 상봉행사를 재개한 것으로 한국정부의 유감표명을 사과로 받아들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공동취재단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받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반세기 넘어 어렵게 만나는 상봉행사의 주인공인 이산가족들을 심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다른 상황과는 다른 분단 상황의 모습을 보도하는 공동 취재단의 심정이었다고 전했습니다.

“ 주인공인 이산가족들을 옆에서 지켜보고 그것을 남쪽에 있는 이산가족들이나 국민들에게 그분들 사연들에게 전해드린 것인데 그런 이산가족 행사 취지에 어떻게 보면 약간의 흠이 나게 된 것도 사실이고, 또 북측이 행사 과정에서 저희쪽(한국) 언론을 문제 삼아서 행사를 지연시키고 어른들을 10시간 동안 남쪽으로 출발시키지 않고 그런 상황을 보면서 저희가 많이 부담이 되었지요.”

서울 : 남측의 1진 상봉단고 함께한 공동취재단은 모두 17명이었는데요. 이후 북측이 한때출국요청을 철회하기는 했지만 남측기자단이 1진상봉단의 작별상봉을 취재강행하자 상봉단 귀환을 일정을 볼모로 잡았고 "30분 만에 기자단이 금강산을 떠나지 않으면 공화국법대로 처리하겠다"는 엄포를 듣기도 했다고 합니다.

VOA: 언론의 보도 표현 문제를 놓고 야기된 마찰이 남북한 이산가족과 국민들에게 어려모로 상처를 입힌 것은 자명한 것 같군요.

서울: 공동취재단은 앞으로 계속될 상봉행사를 위해서라도 정부차원의 원만하 협의와 이해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는데요. 언론의 자유는 기본적인 배경이 되어야겠지만 상봉행사을 위한 취재인 만큼 취재단이 주인공이 아니라 이산가족의 만남과 그들의 한이 풀어지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서라고 밝혔습니다.

“ 어떤지 모르겠더라구요. 만난다는 것 만 생가나고... 좋은지 어떤지도 모르고 그렇더라요. 보고 싶지요, 서로 헤어질 적에 남북통일이나 되면 만나자 그러고 헤어졌어요.”

VOA: 그저 만나기만해도 좋은 가족인데 이렇게 반평생 헤어져 살아야만 하는 이산가족의 아픔 올해는 조금 더 많은 가족들이 만날 수 있다면서요?

서울: 그렇습니다. 지난 7차 적십자회담에서 남북이 합의 한 결과인데요. 615 공동선언 6주년을 기념해 오는 6월15일과 8월15일 두차례 화상상봉을 실시하고, 615일에는 현재의 두배수가 되는 남북 각기 200명씩의 특별 대면 상봉이 이루어질 계획입니다.

한편 6.15 공동선언에 따라 2000년 8월15일부터 시작된 이산가족 상봉행사에는 지금까지 13차례에 걸쳐 1만4천200여명이 참여했고. 그동안 3만2천200여명이 가족의 생사와 주소를 확인했으며 670여명이 서신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서울 도성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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