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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북송과 긴장된 중국생활로 인해 건강악화에 시달리는 탈북자 김은숙 [탈북자 통신 김춘애]


현재 중국 모처에 숨어살고 있는 탈북여성 김은숙(가명, 46세)씨는 눈이 빠져 나올 것 같은 두통과 다리 떨림, 심장이상, 빈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김씨는 북한에 있을 때 육상선수로 활동해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2002년과 2003년 2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강제북송과 긴장된 중국생활로 인해 심신이 몹시 상해 있었습니다.

남편 사망후 혼자서 남매를 떠안아야 했던 김은숙 씨는 생활이 힘들어 2002년 중국으로 탈북 했습니다. 탈북 후 식당에서 일하던 중 누군가의 신고로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첫 번째 강제북송을 당합니다. 북한을 탈출한지 2달만이었습니다. 보위부 구류장을 처음 경험했던 김은숙 씨는 다른 것보다도 꼼짝없이 앉아 있는 게 제일 힘들었었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1] “거기 가서는 딱 요렇게 앉힌다 말입니다. 요렇게 앉히고 여기다 손 올리고는 골(머리를)을 딱 요래 숙이고 요래 앉으니 우선 거기서 병이 났단 말입니다 무릎이랑. 이 대퇴를 그저... 사람이 계속 온 오전 오후 이래 골을 숙이고서 이렇게 있으면 얼마나 아픈가. 거기다가 무릎하고 복사뼈하고 싹 부서져 나갈 듯 해 옷을, 내복 딱 뜯어서 여기다 받쳤습니다. 진해 아파서.” 보위부 구류장에서는 수인들을 이른바 양반다리로 앉게 한 후 취침 시간까지 꼼짝도 못하게 통제합니다.

만약 옆 사람과 말을 하거나 조금이라도 움직이다 적발되면 철창으로 손을 내밀게 한 후 막대로 때리거나 각종 기합을 가합니다. 8일 동안 보위부 구류장에서 예심을 받은 김은숙 씨는 안전부 구류장을 거쳐 집결소로 이송이 되어 강제노동을 받은 후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2002년 12월에 재탈북한 김은숙 씨는 이번엔 한국행을 시도하던 중 2003년 1월 중국 산둥성 엔타이에서 체포됐습니다. 이 사건은 80명의 탈북자들이 배를 빌려 한국행을 시도하려 했던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사안이 한국행이었던 것만큼 보위부 구류장에서의 예심은 혹독했습니다.

김은숙 씨는 “개 취급을 받았다”고 그때 상황을 전합니다. 감방 안에는 카메라가 설치돼 수인들의 움직임을 감시했고 옆 사람과 이야기 했다고 해 시퍼렇게 부울 정도로 벽에 이마를 박게 했습니다. 밀걸레 대로 손가락을 맞기도 했고, 대소변도 보위원들의 허락 없이는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식사는 통강냉이 죽이나 강냉이국수 죽이 배급됐습니다.

그렇게 보위부와 안전부의 예심과정을 거치자 김은숙 씨는 “살이라는 것이 없고 가죽만 남아 흔들흔들 했다”고 합니다. 김씨는 그 몸으로 강제노동단련대로 이관됐습니다. 강제노역을 다 마쳤지만 김은숙 씨는 한국행 시도자라는 딱지가 붙어 집중적인 감시를 받았습니다.

[인터뷰2] “나는 무슨 인간이 아니고 짐승인가. 집에 무슨 사람들 와도 보고를 해 가지고 나를 불러낸다 말입니다. 오늘 누가 왔댔는가. 우리 오빠가 왔다 가도 ”누군가.“ "오빠다.” “그게 오빠 맞는가.” 이렇게 통제한단 말입니다 사람을. 그렇게 못살게 구니까 사람이 어떻게 삽니까. 제 땅에서도“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장사라도 해야 했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던 김은숙 씨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2004년 3번째 탈북을 결행합니다.

막상 중국에 나왔지만 불안한 신분과 더욱이 병까지 겹친 탈북여성이 살아갈 길은 막막했습니다. 김은숙 씨는 간혹 교회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식당과 농사일 등을 하면서 근근이 연명을 했습니다. 비록 힘들게 삶을 꾸려가고 있지만 그래도 중국 공안이 북한으로 잡아내가지만 않는다면 그나마 괜찮다고 이야기 하는 김은숙 씨.

[인터뷰3] “잡아 내 아니가면 우리도 여기서 살기는 일없단 말입니다. 여기서 살자면. 그런데 여기서(중국에서 북한으로) 잡아 내 나가니까 부득불 한국 가자 한단 말입니다. 한국에 우리 가기 좋아 하겠습니까. 여기도 살 수 있는 데 잡아내가기 때문에 (한국에) 가자 한단 말입니다 결국.” 김은숙 씨의 가장 큰 소원은 우선 북한으로 잡혀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인터뷰4] “우리 소원은 그저 잡혀 아니 나가는 게 소원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김은숙 씨는 “가는 도중에 죽는 일이 있더라도 무조건 한국에 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면서도 “한편으로 잡혀가는 것보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든다”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렇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도 없다며 고개를 돌리고야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보내드린 탈북자 통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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