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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 가족모임’ 서영석 대표 인터뷰 [탈북자 통신:최윤희]


8월 24일 금강산에서 열린 6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논의하기로 했던 납북자.국군포로 문제가 북한의 거부로 논의되지 못한 채 끝났습니다. 그리고 8월27일 장선생 씨 등 4명의 국군포로가 극비리에 귀환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두 사건을 연달아 겪은 ‘6.25국군포로 가족모임’ 서영석 대표를 만나 최근 심경과 국군포로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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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표는 1994년 조창호 소위를 필두로 해마다 국군포로들이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귀환하고 있는데 북한 당국은 여전히 ‘국군포로’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입을 열었습니다.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인터뷰1) “북한은 지금까지 국군포로 자체는 없다. 이런 얘기만 반복을 하고 이런 입장을 고수해 왔습니다. 또한 우리 정부 역시도 그동안 북한이 국군포로 존재를 부인하고 있는 이상 현실적 해결책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남북 당국자회담에서 이 문제는 한 번도 정식 의제로 채택이 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6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국군포로 문제를 다루기로 했지만 서 대표는 “결국 합의는 실패하고 말았다”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국군포로였고 또 한국에서 ‘국군포로 가족모임’을 이끌면서 국군포로들의 실상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는 서영석 대표는 1953년에 체결된 포로송환협정 때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1953년 6월8일 판문점 휴전회담에서 국제연합(UN)군 측과 공산군 측 간에 포로송환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협정은 송환을 바라는 포로는 휴전 후 60일 이내에 송환하기로 했지만 북한 당국은 포로들 중 일부만을 송환하고 송환을 바라는 상당수의 포로들을 강제로 억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의 국군포로들이 집단 공개처형을 당하기도 했다고 서 대표는 말했습니다.

인터뷰2) “포로송환협정이 있은 후에는 고향으로 보내주지 않는다고 항의하는 국군포로 수백명을 국군포로들이 보는 앞에서 집단 공개처형하는 일들도 무수히 일어났다는 것을 저희 아버님을 비롯한 현재 대한민국으로 귀환하신 국군포로분들도 증언하고 계십니다.”

국군포로들은 정전停戰) 이후에도 인민군 예하부대에 편성되어 전후 복구사업의 명목 하에 계속 강제노역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리고 1956년 6월 내각명령에 의해 북한 공민으로 편입됩니다. 하지만 적대계층 내지 복잡군중으로 분류되어 일반 공민들과 같은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온갖 차별과 수모를 받았습니다. 이들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국군포로들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의 재정비 과정에서 거의 모두 광산, 교화소나 수용소, 혹은 통제구역으로 추방되었습니다. 탄광과 광산에 배치된 국군포로들은 그 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으며 특별한 보호장비도 제공받지 못하고 지하막장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인터뷰3) “탄광과 광산에서 특별한 보호장비없이 일하다 보니까 탄광의 지하막장에서, 흙먼지가 날리는 광산에서, 이름도 없이 죽어간 국군포로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힘겨운 생활 속에서 동료들과 고향이야기를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는 일도 빈번히 일어났다고 합니다. 서영석 대표의 아버지가 다른 국군포로들과 함께 함경남도 단처에 있는 검덕광산에 배치 받았을 때 겪은 일입니다.

인터뷰4) “우리 고향은 어떻고, 우리 왜 고향에 못가나, 이런 사소한 고향에 대한 이야기, 또 부모가 그립다든지 이런 이야기를 해도 거기에 보위부 스파이가 있으면은 그걸 바로 보위부에다 일러바치면 바로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는 그런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고...”

한편 수십 년간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야 했던 국군포로들은 ‘죽기 전에 고향땅을 한번 밟아보고 죽겠다’는 일념하나로 목숨을 건 탈북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렵게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나와도 돈이 없어 한국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국군포로들이 브로커나 NGO의 도움을 받아 한국 정부와 연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 대표는 “브로커의 도움으로 국군포로들이 대한민국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것은 명백히 정부의 잘못”이라면서도 정부가 국군포로를 데려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소한 국군포로들을 돕는 NGO들이 국군포로를 지원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5) “정부에서 데려도 못 오는데 이런 사람들이 움직이면 한 분이라도 대한민국으로 모셔올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정부는 최소한 이런 사람들한테 브로커들한테 지원하는 게 꺼려지면 NGO단체들이 국군포로들을 데려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한테 저는 재정적으로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지 국군포로들을 데려올 수가 있고, 보통 국군포로들이 북한을 탈출해서 중국에 오셔가지고 오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옵니다.”

서대표는 정부가 악덕브로커에 대해 우려하고 있지만 “이런 악덕 브로커들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국군포로 구출활동에 나서거나 그것도 아니면 국군포로를 돕는 NGO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서영석 대표는 “국군포로들이 아직까지도 (북한에 있는) 탄광과 광산에 집단 거주하면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며 국군 포로 문제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인터뷰6) “지금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들은 함경북도의 은덕군 아오지탄광이나, 함경남도 단천시 검덕광산 등에 있는 탄광과 광산에서 집단거주하면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서 대표는 한국 정부가 “그리운 고향과 부모형제를 그리며 피눈물을 흘리고 계실 국군포로들의 비참한 현실”을 가슴 깊이 새겨, “북한의 눈치를 더 이상 살피지 말고 국군포로 문제를 남북회담의 가장 중요한 의제로 채택”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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