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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상처 되돌아본 2차대전의 호주군 포로들 (영문+오디오, 관련기사 참조)


제 2차 세계 대전 말기에 일본군에 붙잡혀 태국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던 전 호주군 전쟁 포로들이 최근 일본의 패전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다시 태국을 찾았습니다.

일본은 태국에서 부터 버마에 이르는 악명 높은 “죽음의 철로”를 건설하는데 연합군 전쟁 포로들을 노예 노동자로 동원했습니다. 당시 최소한 만 2천명의 전쟁 포로들이 처형되거나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아시아 각국에서 제 2차세계 대전 종식을 가져온 일본의 항복 6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는 가운데, 전 연합군 전쟁 포로들 역시 이에 동참했습니다.

이들은 최근 태국 서부의 소도시, 카나찬부리에서 열린 기념 행사에서 일본 황군이 아시아지역을 휩쓸었던 60여년 전의 공포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1942년 부터 1945년 까지 6만 명의 연합군 전쟁 포로들과 약 20만명의 아시아인들이 태국에서 버마를 잇는 철로를 건설하기 위한 가혹한 강제 노동에 동원됐습니다.

이 철로는 버마 전선으로 일본 군 병력과 장비를 수송하고 궁극적으로는 인도 침공을 지원하기 위해 건설됐습니다.

그러나 철로 건설은 엄청난 희생을 수반했습니다.

전쟁 포로들은 불결한 여건속에 때로는 곰팡이가 핀 쌀과 상한 고기로 연명해야 했습니다.

최소한 만 2천명의 전쟁 포로들과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아시아 노동자들이 질병과 영양 결핍, 심한 구타로 인한 부상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올해 84살의 호주인 참전 군인, 바덴 존스씨는 당시 겪어야 했던 고초와 바로 옆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심한 노동을 견뎌내지 못하고 끝내 사망했습니다. 어느날 일터에서 돌아온 동료들이 바닥에 주저 앉고는 정말 지긋지긋 하다면서 내일 일을 하러 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죽어 있었습니다. 기아와 더불어 극심한 피로 때문에 하루 아침에 그렇게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존스씨는 이러한 비극과 고난의 기억이 반드시 잘 보존되어 후세들이 이를 통해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전쟁 포로들이 겪었던 참상이 그대로 보존되어야 합니다. 젊은 세대들은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일본은 자신들이 한 행동을 결코 시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이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전쟁 포로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비밀리에 라디오 방송을 청취한 덕분에 이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끝나 가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으로 접하게 됐습니다.

올해 84살의 해리 베이커씨는 전쟁이 끝난다는 소식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고 말합니다.

“전쟁이 막바지에 달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인들이 모든 물건들을 불태우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어느날, 한 영국 장교와 신호수가 수용소로 걸어 들어 왔습니다. 이들은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던 것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자신들을 살해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우려하던 전쟁 포로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일본의 항복 소식을 열렬히 환영했다고 베이커씨는 회상했습니다.

베이커씨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한 행동을 결코 용서하지도 잊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집에 일본인 교환 학생들을 받아 들이고 제 자신이 직접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일은 접어 두고 이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태국을 다시 찾은 많은 전쟁 포로들에게 있어서 이번 기회는 60년 전,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하직한 전우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고하는 최후의 기회가 되었을 런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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