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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중토굴에 숨어 지내던 탈북자들, 중국 당국에 체포 [탈북자 통신: 최윤희]


탈북자원활동을 펴고 있는 박상혁씨가 중국동북부, 지린성 산중 토굴에 숨어지내던 탈북자들이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된 사실을 확인한데 관해 서울에 있는 [최윤희]탈북자통신원이 보도해 드립니다.

최근 중국에 다녀온 탈북지원가 박상혁(가명) 씨는 지난해 12월에 방문했던 토굴 중 일부를 다시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박 씨는 이 과정에서 한 토굴에 거주하던 탈북자들이 중국 공안에 체포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박 씨에 따르면 두만강 근처에 있다는 토굴에는 원래 1명이 살고 있었으나 이후 3명의 탈북자가 더 들어와 4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6월, 3명의 탈북자가 토굴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강제북송 됐다고 박 씨는 말했습니다.

“작년에 살던 사람들 그리고 금년에 재탈북해서 나왔던 사람들이 함께 살다가 중국 공안에 잡혀가고 지금 한 명만 살아남은 겁니다. 다 잡혀나가고....”

체포되지 않은 1명은 박상혁 씨가 지난해부터 알고 지낸 탈북자 김모 씨로 이 토굴에서 3년을 지낸 사람입니다. 김 씨는 당시 토굴에 있지 않아 다행히 체포의 손길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김 씨가 거주하고 있는 토굴은 산속에 은폐되어 있지만 반영구적으로 지은 것 같다고 박상혁 씨는 전했습니다. 김 씨의 토굴은 박상혁 씨가 지난 5월 사진으로 공개한 지린성(吉林省) 왕칭(汪淸)현에 있는 마반산 토굴보다 평수가 넓고, 문을 열면 바깥바람을 쐴 수 있도록 반지하로 지었으며, 부엌과 산나물과 약초를 말릴 수 있는 건조대까지 마련되어 있는 등 장기 거주를 염두에 두고 꼼꼼하게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박상혁 씨에 따르면 김 씨는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돈을 모으면 북한에 들어가서 기계를 사 수공업품을 생산해 장사를 하겠다는 꿈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 씨는 “북한이 개혁개방, 시장개혁으로 가는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는가”고 예측하면서 부지런히 약초를 캐고 농번기 때는 마을에 내려가 일을 해주고 푼돈을 모아왔습니다. 하지만 토굴생활을 함께하던 김 씨의 동료들이 체포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김 씨의 희망은 깨어졌습니다. 체포된 탈북자 중에 한국행을 준비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 씨의 동료들이 강제북송 됐다고 해도 북한 당국이 김 씨의 존재를 알기 어려울 텐데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할 이유가 있는가”고 질문하자 박상혁 씨는 “북한의 감시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치밀하고 철저하다”고 답변했습니다. 박상혁 씨는 40년 동안 북한 체제를 겪어봤던 김 씨는 북한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을 포기한 것 같다”고 풀이 했습니다.

김 씨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주저하는 데는 북한 당국이 탈북자들을 가혹하게 처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당국은 중국 공안에서 탈북자들을 인계받으면 예심을 진행합니다. 북한 당국은 예심기간 동안 탈북자들의 중국에서의 행적을 조사하는데 이 과정에서 각종 가혹행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김 씨가 우려하는 것은 예심과정에서 자신의 존재가 북한 당국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김 씨의 우려는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끌려가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북한 당국이 탈북자들을 어떻게 처벌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탈북자들의 이야기는 (북한으로 끌려가는 것은) 엄하고 죽기보다 더 무섭다 이렇게까지 표현하니까 지금은 잡혀 나가면 6개월 강제노동, 심하면 징역, 감옥까지 간다고 합니다. 처벌수위가 그 전보다 많이 강해진 걸로 제가 보건대 그렇게 느껴지거든요.”

최근 일은 아니지만 박상혁 씨는 2004년 11월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강제 북송된 젊은 탈북자 부부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중국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그 주민지대에 내려와서 일하면서 알게됐고 서로, 탈북자니까 동정하고 연민의 정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 그 사람들이 만나서 가정을 꾸리고, 합법적으로 살 수 없으니까 바위굴에 들어와서 가정을 이루고 숨어서 살았지요.”

5년 동안 두만강 근처 산속에 있는 동굴에서 살았다는 부부는 3명의 자식도 있었습니다. 맏이가 4살, 중국 당국에 체포되기 전인 7월에는 막내도 태어났습니다. 박상혁 씨는 이 소식을 2004년 12월에 이들 부부를 지원해줬던 조선족을 통해 확인했지만 이제야 외부에 공개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구태여 인터뷰나 언론에 이렇게 말하기도 싫고 말해도 누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고, 말할 생각도 솔직히 없었습니다. 이번에 탈북자 문제가 사회적으로 점점 더 외면당하고 이제는 탈북자라는 그것이 사람들 인식 속에서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지 않는가.”

박상혁 씨에 따르면 최근 중국 정부는 탈북자들에 대한 단속을 집중적으로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집중적으로 단속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그 강도가 심해졌다는 게 박상혁 씨의 설명입니다. 이것은 지난 6월 지린성(吉林省) 왕칭(汪淸)현에서는 발생했던 살인 사건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과거에도 물론 그와 같은 일(집중단속)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깊은 수림(樹林)까지 공안의 발길이 미치지 않았는가. 그 전에는 그렇게까지 느끼지 못했거든요. 도시라든가 농촌지역을 중점으로 해서 단속사업을 했지 깊은 산속의 수림지대까지 단속을 하지 않았다고 보거든요. 이번에는 수림지대까지 단속 사업을 하는 걸로 봐서는 중국 공안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잡도리를 하고 접어들지 않았는가 이렇게 보여지거든요.”

왕칭현 살인사건은 탈북자와 관련이 없었고 오히려 사건해결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 40대의 탈북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하자 불심검문이 강화됐고 이 과정에서 탈북자들이 체포되어 북한으로 강제송환되거나 어렵게 마련한 은신처를 옮기는 등 큰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보내드린 탈북자 통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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