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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bia University]한국의 저명인사들이 많이 공부한 동부 명문 콜럼비아 대학교


뉴욕 맨하탄 북부에 위치한 콜롬비아 대학교(Columbia University)는 사립 명문 대학 그룹인 아이비 리그의 하나로서 미국에서 다섯번째로 역사가 오래된 학교 입니다. 학생수는 약 2만 3천명 가량으로 미국의 중간규모이나 단과 대학과 부설 교육기관의 수는 무척 많습니다.

콜롬비아 대학의 중추인 콜롬비아 칼리지의 학생처 관계자는 칼레지외에 여러개의 단과대학이 있다며 석사나 박사 과정은 문리과 대학원외에, 여러 전문직 학교들 즉, 경영대, 법대, 국제 행정대, 건축대, 미술대등에서 교육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 의대,치대, 간호대등 방대한 규모를 가진 보건 의학 분야의 대학들이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런 여러단과 대학들을 모두 합치면 콜롬비아 대학에는 모두 16개의 단과 대학이 있는셈입니다. 이처럼 직접 콜롬비아 대학 산하에 있지 않고 독자적인 운영을 하면서 역시 콜롬비아 대학 체제에 속한 학교들도 있습니다. 즉 바나드 여자 대학, 사범 대학, 유니온 신학대학, 유태 신학대학등이 그것입니다.

이 학교를 말하면서 역사를 언급하지 않을수 없을 만큼 콜롬비아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교육기관입니다.

처음 이학교가 세워진 것은 1754년으로, 당시의 이름은 영국왕의 명칭을 따서 킹스 칼리지 라고 했습니다. 학생은 불과 8명으로 첫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이 독립을 선언하자 식민지 시대의 이름을 쓰는 것이 어울리지 않아 콜롬비아 칼리지로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그후 차츰 학생수도 늘고 대학원 과정과 전문 직업 학교들도 늘어나 ‘Columbia University’가 되었습니다.

학생처 관계자는 식민지 시대에 설립된 다음 독립혁명을 거친 이 학교가 미국 건국에 공헌한 많은 인물을 배출하게 된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면서 초기의 유명 동창생들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콜롬비아 칼리지를 졸업한 유명 인사중에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하에서 최초의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 미국 최초의 대법원장이 된 존 제이 등이 있습니다. 또 미국 헌법의 최종 문안 작성에 주역을 맡은 구버뉘어 모리스, 독립 선언의 기초자의 한 사람인 로버트 리빙스턴등이 있습니다. 기구가 확대된 다음 졸업한 전문직 대학원 출신까지 전체를 놓고 볼때는 법과 대학을 졸업한 데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특히 유명하고, 뉴욕 주 지사 열명, 뉴욕시장 14명이 우리 학교 출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연방 상하 양원에 콜럼비아 졸업생이 섞이지 않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졸업생은 아니지만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은퇴후 우리학교에 13대 총장으로 재직했던 일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콜럼비아 대학교 졸업생이나 교수들의 학문적 기여 또한 막대해서 노벨상 수상자만도 50명에 육박하며, 그중 몇명의 학자는 지금도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외국 학생실의 한 관계자는 대외적으로 이름이 나있는 콜럼비아 대학의 유명 분야들을 이렇게 간추려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학교의 의과 대학은 여러해 동안 많은 분야에 걸쳐 연구 업적을 쌓고 저술량이 많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법대도 유명한데 특히 국제법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경영대는 국제기업경영 기업 초직등에 관한 교육이 특히 강합니다. 물론 우리학교의 근간인 문리대 즉, 칼리지의 우수성은 전국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콜롬비아의 학부는 보통 11% 내외의 지원자가 합격하는 어려운 관문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학교는 입학도 어렵지만 졸업을 제대로 하느냐가 더 큰 문제입니다. 한 학생은 하루 최소한 서너시간은 강의실 수업외에도 공부를 해야하며 주중에는 별로 쉴수있는 여유가 없고 주말이나 돼야 약간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명문 사립대학에서 공부하는데는 재정적인 뒷받침 또한 튼튼해야 합니다. 그러나 학교측에서는 콜럼비아 학부 재학생의 경우 약 반수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융자 장학금 일자리 제공등으로 재정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 재학생은 고등학교때부터 성적이 우수할 경우에는 장학금을 외부에서 받아올수도 있으며 대부분이 학생들이 4년과정을 마치는 동안에 어떤형태든 지원을 받는 실정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의 전통있는 명문 대학들 중에서도 콜럼비아 처럼 옛날부터 국제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학교도 드물것입니다. 1764년 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중에 미국 대법원장이 된 죤 제이는 파리 강화 조약, 제이 조약등을 적극 추진하고 외무 장관직을 역임했으며 1765년 졸업생인 로버트 리빙스턴은 미국 최초의 외무 장관겸 프랑스 문제 장관을 지내기도 하는등 콜럼비아 출신은 처음부터 국제통이 많았습니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돼 이학교의 여러 단과 대학에는 국제 문제와 연관시킨 많은 프로그램들이 설치되어 있고 그 수준 또한 우수합니다. 이 학교에 오래전 부터 한국학 연구소가 설립돼 있는 것도 모두 그런 풍토에서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2004년도 한국어 수강생은 약 80명, 동아시아학 수강생은 약 1000명으로 아시아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도 매우 높습니다.

전교생에 비해 외국 학생비율이 매우 높은 이곳에서 40%는 아시아 출신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학교의 한국 유학생 및 교수 수는 470여명에 달하는데, 여기 재학중인 교포학생들까지 합치면 한인 학생 수는 대단히 많아 집니다.

콜럼비아 한인 학생회는 미주 한인 2세들의 전국 대학생 쎄미나를 개최하기도 하는등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콜롬비아 대학의 한인학생들이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것은 요즈음만의 일이 아닙니다. 이 학교에는 2차 대전 전부터 한국의 우국지사들이 많이 공부를 하면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벌인 오랜 전통이 깔려있습니다.

대표적인 과거의 콜롬비아 출신을 보면 1918년의 조병옥 박사 1926년의 장 이욱 박사를 비롯해서 김도연, 장덕수, 김양수, 김활란, 오천석씨등이 모두 여기서 공부를 했습니다. 근래에는 과거와 달리 유학생들이 문과보다는 이공계에 집중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교포학생들은 학부의 여러분야에 고루 퍼져있습니다.

콜롬비아 대학은 뉴욕 맨하탄 북부인 모닝 사이드라는 구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비교적 조용한 곳이기는 하나 그래도 대도시의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기때문에 도시의 각종 문제점을 의식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교 캠퍼스에는 주변에 출입을 통제할수 있는 울타리나 건물들이 둘러서 있고, 저녁시간에는 불필요한 인파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학생은 저녁 늦게까지 공부를 마치고 학교 울타리 밖에 위치한 기숙사까지 걸어 가는데도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미국 제5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콜롬비아 대학은 설립 당시부터 추진해온 양질의 배움터, 창조적인 연구 활동, 교육의 계발등 3대 목표를 250년이나 지난 지금도 줄기차게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콜럼비아 대학교의 웹사이트 http://www.columbia.edu/를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콜럼비아 대학교 한인 학생회 웹싸이트는 http://www.columbia.edu/cu/ksa/home.html 이고 희귀 한국 도서 소장실 웹사이트 는 http://www.columbia.edu/cu/lweb/indiv/eastasian/Korean/korare.html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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