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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이라크 도시 키르쿠크 - 쿠루드족 귀환으로 더욱 불안


이라크가 새 헌법을 기초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감에 따라, 북부의 석유 산업 중심지, 키르쿠크의 지위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인종 조정 정책으로 알려졌던 사담 훗세인의 강제 주민 이동 정책, 이른바 “아랍화”로 인해 사회 구조가 분열됐던 키르쿠크 성이 이제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를 원하고있는 것입니다.

키르쿠크에서 VOA 특파원이 이에 관해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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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일 야씬씨와 부인 아미라 모하메드씨가 시멘트와 석탄재를 섞어 만든 속이 빈 건축용 블록들로 단층짜리 수수한 집을 짓고 있습니다. 이 쿠르드족 부부는 약 1년 전 8명의 자녀를 데리고 키르쿠크시 교외의 고향 마을, 투르콜란으로 돌아왔습니다.

다른 수천명의 쿠르드족과 마찬가지로, 이들 부부도 지난 1987년 쿠르드족을 키르쿠크와 같은 전략 지역들로부터 몰아내고 아랍인들을 이라크 석유 산업의 북부 중심지인 키르쿠크시로 데려옴으로써 인종적인 균형을 전환시킨다는 사담 훗세인 정권의 “아랍화”정책에 따라 살던 곳에서 쫓겨났습니다.

야씬씨는, 투르콜란이 자기들의 고향이기 때문에 가족이 돌아왔다고 말하고, 사담 훗세인이 쫓겨나자 마자 귀향하길 원했다고 말합니다.

인권 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는 25만명 이상의 쿠르드족과 비 아랍인들이 키르쿠크에서 강제로 추방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2003년이래, 수만명의 아랍 정착민들이 키르쿠크 지역을 떠났으나, 수만명의 다른 정착민들은 현재 살고있는 도시나 마을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눌러 앉기로 했습니다.

한편, 현지 관리들은 10만명 이상의 쿠르드족이 되돌아온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들 귀향자중 상당수는 비참한 여건속에서, 또는 국내 실향민들을 위한 수용소들에서 그리고 물이나 전기가 거의 들어오지않는 부락들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고향에 되돌아왔다는 아미라 모하메드 여인의 만족감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습니다.

아미라 여인은 투르콜란에서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으며, 이제는 자기들을 강제로 쫓아내려 할 사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키르쿠크에서 인종적인 분개감과 형편없는 생활 여건, 그리고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폭력 사태를 낳고 있습니다.

인권 단체들은, 주종을 이루는 세 인종 집단 모두의 지도자들에 대한 공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권 단체들은 또한 키르쿠크 성 전역에서 인종적인 선을 넘나드는 보복 살인 행위들이 자행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키르쿠크에서는 또한 송유관과 가스관들에 대한 저항 분자들의 공격에다 차량 폭탄 공격과 그밖의 다른 테러 활동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관계자들은 이같은 폭력 사태가 통제할수없을 정도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상황은 정치에 의해 더욱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쿠르드족은 현재 이라크 국회에서 두번째로 큰 투표 세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키르쿠크를 쿠르드족의 통제하에 다시 두기위해 이라크 내부의 경계선을 재 획정해야 할지의 여부를 둘러싸고 의원들간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분석가들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키르쿠크의 지위를 결정하기위해 결국 국민 투표가 실시될지도 모릅니다.

“쿠르드 애국 동맹”의 고위 간부인 아드난 마프티씨는 논쟁이 석유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역사적으로, 키르쿠크는 쿠르디스탄의 일부며, 주민 다수가 쿠르드족으로, 이들은 너무도 많은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수백만명의 쿠르드족이 독재 치하에서 고통을 당하고 살해됐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키르쿠크 주민의 권리와 쿠르디스탄 지역으로 귀환할수있는 권리를 찾고있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것입니다. 석유는 문제될게 하나도 없습니다. 쿠르디스탄은 부유합니다, 이라크 전역이 부유합니다. 석유는 어디에든 있습니다.”

하지만, 쿠르드족 지역내에서 조차도 내부의 정치적 문제로 인해 키르쿠크 문제의 해결이 더욱 어렵게 돼가고 있습니다.

1990년 대 중에 “쿠르드 민주당”과 “쿠르디스탄 애국 동맹”은 정치적인 적대 관계에 사로잡혀, 내전을 초래했습니다. 1988년 평화 협정이 이루어 졌으나, 양측이 이 지역을 통치했던 두 적대 행정부를 통합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성안해낸 것은 단지 며칠전이었습니다.

쿠르드 민주당에 속해 있었던 마흐무드 오스만씨는, 전국적인 정치와 현지 정치의 배경을 감안할 때 인종적인 긴장은 격화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키르쿠크를 잠재적인 분쟁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그 한가지 이유는, 민족이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랍 민족도 있고 투르코멘족도 있으며 쿠르드족과 아씨리아족도 있습니다. 이는, 그 자체로 모든 사람을 한데 결합시키기가 그렇게 용이하지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들이 앞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그들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통해, 또 이 지역들로부터 추방됐던 사람들의 귀환 노력을 통해, 그리고 이 지역으로 불러왔던 아랍인들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 노력해야합니다.”

술레이마니야 시에 본사를 둔 쿠르드족의 주간 신문, “하울라티”지의 편집인인 아소스 아르디씨는, 이러한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쿠르드족 지도자들은 키르쿠크의 상황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입니다. 키르쿠크는 매우 민감한 지역으로, 상이한 집단들 사이에서 때때로 긴장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실제로 폭발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습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모든 사람, 모든 집단의 지도자들과, 그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폭발은 곧 어느 누구, 특히 쿠르드족에게 이득이 되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일반 쿠르드족이 과거지사는 과거로 돌릴 태세가 되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쿠르드족으로, 투르콜란 부락에서 집을 짓고 있는 이스마일 야씬씨는 아랍 정착민들과 그들의 계속 잔류 요구에 거의 관심이 없다고 말하고, 그들이 우리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은 채 우리 재산과 농토를 모두 차지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동정심을 조금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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