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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지금] 마크 펠드, 어떻게 ‘딥 스로트’의 주인공이 될수 있었나


미국내 시사현안과 화제가 되고 있는 소식들을 알아보는 미국은 지금 시간입니다. 요즘 미국은 워터 게이트 사건의 ‘딥 스로트’가 밝혀지면서 떠들썩 합니다.

이 시간에는 익명의 정보 제공자, 또는 내부 고발자를 의미하는 ‘딥 스로트’의 주인공 마크 펠트씨가 어떻게 그런 역할을 수행했는지, 그리고 딥 스로트 공개와 관련된 여러 논란들에 대해 그와 접촉을 했던 워싱턴 포스트 신문의 전 현지 두 기자가 어떻게 얘기하고 있는지 김영권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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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우선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것중에 하나가 당시 풋나기 기자였던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어떻게 연방 수사국 FBI의 넘버 2, 즉 FBI 부국장으로 부터 정보를 입수했는가? 하는 것인데요. 우드워드 기자가 2일 그 경위를 밝혔다죠?

답: 네, 우드워드 기자는 2일자 워싱턴 포스트 신문에서 ‘마크 펠트가 어떻게 딥 스로트가 됐는가’ 란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렸습니다.

우드워드 기자는 기자가 되기 전 해군 대위로 군에 복무하면서 국방부와 백악관 사이의 정보를 전달하는 특사 즉 전령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던중 백악관에서 당시 연방 수사국 FBI 관리로 일하던 마크 펠트씨를 처음 만났다고 고백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 전부터 이미 두 사람간에 개인적인 교류가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우연한 만남 이후 펠트씨는 우드워드 기자의 장래 진로와 정보 분류 방법 등에 조언을 해주면서 멘토, 즉 조언자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우드워드 기자는 말했습니다. 그냥 스쳐가는 인연정도로 끝날 수 있었던 두 사람간의 관계가 워터 게이트란 역사적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창구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문: 펠트씨와 우드워드 기자간의 접촉 방법도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할정도로 화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워터 게이트 사건과 관련해 대 여섯번 접촉을 가졌는데요. 모두 새벽 2-3시경 워싱턴의 키 브릿지 근교 지하주차장에서 직접 만났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드워드 기자가 펠트씨를 만나고 싶을 때면 적색 깃발을 꽂은 화분을 창 밖 발코니에 내다놓았고, 펠트씨는 우드워드 기자의 집에 배달되는 뉴욕 타임스 신문 쪽수에 동그라미를 그려 접촉 시간을 알려주는 방법을 통해 만남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우드워드 기자는 2일 NBC 방송 투데이에 출연해 펠트씨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주변에서 그 같은 신호들을 전달하고 접촉을 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고 말하고 그러나 펠트씨가 스파이, 즉 첩자를 색출하는 직책을 맡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접촉들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채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문: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정보의 신뢰도와 펠트씨의 정보 누설에 대한 의도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런 점에 대해 우드워드 기자는 어떻게 얘기했습니까?

답: 우드워드 기자는 연방 수사국 부국장이란 펠트씨의 지위때문에 그의 말과 정보가 큰 신뢰성를 가지고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는 워터 게이트 사건의 중요성이 갖는 무게와 이 같은 정보 출처, 그리고 펠트씨의 신중한 자세가 그의 정보 누설 목적 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이를 기사화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여러 정보들이 갖는 의문에 대해 우드워드 기자가 펠트씨에게 질문했을때, 펠트씨는 매우 명료하게 의문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정보라고 거듭 확인해줬다면서 그런 이유때문에 당시 두 젊은 기자와 워싱턴 포스트 편집장은 매우 편안하게 특종 기사를 써나갈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문: “마크 펠트는 과연 국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정보를 누설한 애국자이자 영웅인가? 아니면 자신의 야심을 위해 직무를 유기한 배반자인가?” 이런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요. 우드워드와 번스타인 두 사람은 그러한 논란에 대해 어떤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까?

답: 우드워드 기자는 워터 게이트 사건이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법들을 위반했기 때문에 이를 누설한 펠트를 배반자로 몰아 붙일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번스타인씨는 당시에는 그가 애국자인지 배반자인지 생각하지 않았으며, 펠트씨가 정보를 누설한 동기조차 정확히 알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사건이 마무리된 뒤에야 FBI 국장을 꿈꿨던 펠트의 야심이 백악관의 견제로 무너진 배경과 백악관과 연방 수사국의 껄끄러운 관계들을 알 수 있었다고 번스타인씨는 덧붙였습니다.

워터 게이트 사건의 전모를 폭로한 두 사람은 당시 워터 게이트 사건이 매우 중대한 사안이었고, 기자의 의무는 사건의 진위를 찾고 그 사실들을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제공하는 의무를 갖고 있기때문에 펠트씨의 의도에 구애 받지 않고 기사를 썼다고 말했습니다.

문: 딥 스로트의 주인공이 33년만에 공개가 됐는데…. 이제는 그 공개 배경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2일 펠트씨 가족들이 비밀을 공개한 이유는 돈 때문이라고 보도를 했는데요. 우드워드 기자와 번스타인 두 사람은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까?

답: 두 사람은 모두 그 이유에 대해 알 수 없다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가족들의 개인사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번스타인씨는 돈보다는 펠트씨 가족들이 91살의 노령인 펠트씨가 사망하기전에 그의 업적을 알리고 이를 정보 누설의 정당성을 인정 받기 위해 이 사실을 공개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2일 기사에서 우드워드 기자가 워터 게이스 사건 특종 보도로 유명인사가 됐고, 더군다나 이에 관한 책 출간으로 많은 돈을 벌은 반면, 실질적인 정보 제공자인 펠트씨는 아무 수혜도 받지 못했다는 펠트씨 가족들의 불만이 딥 스로트 공개의 주요 배경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 신문 보도에 따르면 펠트씨 가족들은 딥 스로트 공개에 앞서 우드워드 기자와 여러번 접촉을 갖고 정보 공개에 따른 여러 수익금 분배를 논의했으나 펠트씨 사망후 사실을 공개해야 한다는 우드워드 기자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독자적으로 다른 대중 잡지를 통해 사실을 공개하게됐다고 보도해습니다.

미 언론들은 따라서 앞으로 딥 스로트에 관해서 펠트씨 가족들이 펴낼 책과 우드워드-번스타인 두 사람이 펴낼 책이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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