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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판 과거사 청산'.. 프랑스의 세티프 대학살 사과 요구 <영문기사 + 오디오>


유럽전역에서 제 2차 세계대전 종전이 널리 경축되고 있는 가운데 아프리카 북부 국가인 알제리 국민은 매우 특이한 승전의 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치 독일이 무조건 항복했던 1945년 5월 8일, 프랑스군은 알제리에서 수많은 시위자들에게 발포했습니다.

프랑스의 식민지배하에 있던 당시 알제리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의 환희속에 프랑스로부터의 자치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프랑스군의 발포로 수 만명이 학살됐습니다. 알제리인들은 세계 대전 종전의 날에 일어난 프랑스군의 알제리인 대학살에 대해 프랑스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알제리인 대학살 사건과 1백32년에 걸친 식민통치는 알제리인들에게 쓰라린 과거사로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을 나치 독일 죽음의 수용소에 보내는데 동조했던 프랑스의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프랑스지도자가 사과한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반세기가 지난 1995년, 작크 시락 대통령이 처음이었습니다.

지금 알제리에서는 60년전에 일어난 프랑스군의 알제리인 대학살에 대한 프랑스의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알제리인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1945년 5월 8일, 알제리 북부 상업도시 세티프와 동부지역 여러 도시들에서 알제리인들이 프랑스 시민과 동등한 지위와 자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프랑스군의 발포로 학살된 사건에 대해 프랑스로 부터는 아직껏 공식적인 인정이나 사과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학살 희생자수는 1만5천 명에서 많게는 4만5천 명으로 추정되나 확실한 수자는 알수 없습니다. 알제리의 역사 학자로 ‘알제리 독립사’를 저술한 라바흐 마히우트씨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 많은 알제리인들이 자유 프랑스군의 일원으로 나치스 독일에 대항해 싸운 끝에 전쟁이 끝나자 알제리인들은 종전을 환호하는 동시에 프랑스 시민과 완전히 동등한 지위와 프랑스 식민지배로부터 자치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가 무참한 비극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알제리인들은 그 사건을 세티프 대학살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2월 알제리 주재 프랑스 대사는 세티프 대학살을 가리켜 용서할 수 없는 비극이라고 개탄했습니다. 그리고 미셀 바르니에르 프랑스 외무장관은 지난 8일, 알제리의 유력지 알 와탄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티프 대학살에 대한 프랑스의 책임문제가 금년에 열리는 프랑스-알제리 우호조약 협상에서 거론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압델아지즈 부테풀리카 알제리 대통령은 제 2차 세계 대전 종전 60주년 기념행사때 프랑스는 세티프 대학살에 대한 보다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했습니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또한 알제리 국민은1830년부터 1962년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통치 기간중에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공식적인 시인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알제리는 프랑스와 8년에 걸친 치열한 독립전쟁을 치른끝에 1962년에 프랑스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그후에도 프랑스와 알제리는 대단히 험난한 관계에 있다가 지난 2003년에 프랑스 지도자로서는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작크 시락 대통령이 알제리를 공식 방문함으로써 두 나라의 관계 개선 노력이 조금씩 진전되기 시작했습니다. 작크 시락 대통령의 알제리 방문은 부테풀리카 알제리 대통령이 먼저 프랑스를 방문한지 3년이 지난 뒤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프랑스 내에서는 알제리에 대한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관한 논란이 별로 없었습니다. 프랑스 역사학자 스토라씨는 프랑스와 알제리의 새로운 세대는 모든 것에 관해 알기를 원하며 과거사를 잊으려 하는 것은 커다란 과오로 여기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 프랑스 자체 내에서 알제리 식민지배에 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어떤 일을 저질렀는가에 관해서도 최근 일부의 고백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전 프랑스군 장성 몇 명이 알제리의 독립전쟁 기간 중에 자행된 잔학행위들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프랑스의 극우파 정치인 장-마리 르팽도 알제리 독립전쟁 기간에 알제리인들을 고문했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르팽은 이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다시, 스토라씨는 역사란 잊혀질 수 없으며 역설적이게도 아주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일수록 더욱 더 표면에 떠오르게 마련이라고 말합니다.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는 알제리만이 아닙니다. 아프리카 국가로 프랑스가 식민통치했던 코트 디브아르 같은 나라들에서는 아직도 프랑스의 간섭이 계속되는 가운데 비난이 일고 있습니다. 프랑스인들도 프랑스의 식민지배 과거사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국회는 최근 과거 식민지에서 프랑스가 끼친 긍정적인 영향을 부각시키는 내용의 교육 계획을 시행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일부 프랑스인들은 이에 관해서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프랑스군에서 복무했던 알제리인들과 다른 외국인들에게 프랑스 태생과 동일한 연금을 지급하지 않습니다.

알제리의 역사학자 라바흐 마히우트씨는프랑스는 2차대전중 프랑스가 유대인들을 나치스 죽음의 수용소에 갇히도록 추방했던 것에 대해 그랬던 것과 똑같이 알제리인들에게도 세티프 대학살에 대해 공식 사과를 발표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세티프 대학살에 따른 알제리인들의 정신적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고, 많은 알제리인들에게 1945년 5월 8일은 그렇게 오래 전의 일도 아니라고 마히우트씨는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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