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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 삶’ 다룬 책 체코서 번역 출간…“유럽 내 신전체주의 위험에 경종 되길”


박지현 '징검다리' 공동대표(왼쪽)와 토머스 호락 교수, 채서린 작가. 사진 제공 = 박지현 대표.
박지현 '징검다리' 공동대표(왼쪽)와 토머스 호락 교수, 채서린 작가. 사진 제공 = 박지현 대표.

북한 일가족의 일상적 삶을 통해 북한의 인권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 지를 보여주는 책이 체코어로 번역돼 출간됐습니다. 유럽에서 고개를 드는 신전체주의의 위험을 경고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번역을 맡은 체코 교수는 밝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1347년 개교해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가운데 하나인 체코의 명문 찰스 대학교(Charles University)에서 30일 북한 주민들의 열악한 삶을 그린 책 ‘가려진 세계를 넘어(The Hard Road Out)’ 체코어판 출판 기념회가 열렸습니다.

영국에 사는 탈북민 출신 인권운동가 박지현 씨와 한국 출신 채서린 작가가 지난 2019년부터 불어와 중국어, 한국어, 영어 등 4개 국어로 출간한 이 책의 체코어 제목은 ‘북한에서의 나의 삶(můj život v severní koreji)’.

찰스 대학에서 2002년부터 한국학을 가르치는 토머스 호락 교수가 번역했습니다.

호락 교수는 이날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인 동료로부터 책을 소개받아 읽은 뒤 큰 감명을 받아 바로 번역을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호락 교수] “오늘날 유럽 사람의 시선으로 읽으면 거의 충격을 받을 정도로 궁핍한 생활, 국민에 대한 억압, 부자유 그런 게 많이 와 닿았죠. 저는 1970~80년대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에서 자라서 어떤 것은 데자뷔처럼 감정적으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가 떠올랐습니다. 물론 북한처럼 심한 수준은 아니었지만요.”

이날 출판 기념회에는 얀 피셔 전 체코 총리와 홍영기 체코 주재 한국 대사, 체코 주재 핀란드 대사 등 프라하의 여러 나라 외교관이 참석했습니다.

또 저자인 박지현 씨와 채서린 씨도 직접 참석해 북한 주민들의 최근 실상과 이를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선 등에 대한 생각을 나눴습니다.

‘북한에서의 나의 삶(můj život v severní koreji)’ 표지. 사진 제공 = 박지현 '징검다리' 공동대표.
‘북한에서의 나의 삶(můj život v severní koreji)’ 표지. 사진 제공 = 박지현 '징검다리' 공동대표.

박 씨는 VOA에 프라하의 많은 매체가 인터뷰를 요청해 바쁜 하루를 보냈다며 북한 주민들에게 체코는 친숙한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씨] “북한 주민들에게 체코는 낯선 나라가 아닙니다. 지금도 체스코블로벤스코(체코슬로바키아)로 부르지만 (예전에) 북한 해외 노동자와 유학생도 있었고요. 옛날에 저희 살 때 체코 영화도 봤었고요. 그래서 북한 주민들한테 체코는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나라 중 하나인데 그곳에서 우리 북한 주민들을 위해 모두 힘써주고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가 가게 되면 북한 주민들도 힘을 내지 않을까.”

‘가려진 세계를 넘어’는 남북한 출신 두 여성이 영국에서 우연히 만나 5년간 대화하며 서로의 체제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선입견을 하나씩 지워가며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을 담백하게 담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보다 박지현 씨의 조부와 부모, 자녀에 이르기까지 한 가족의 삶을 통해 출신 성분에 따른 차별과 주민 통제 등 북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런 북한 정권의 압제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주민들의 강인함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런던에서 열린 영문판 출판 기념행사에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영국 상·하원 의원,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장(COI) 등 저명 인사들이 직접 혹은 영상을 통해 축사와 찬사를 보내 주목을 받았습니다.

호락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옛 동유럽의 사회주의와 북한의 체제가 어떻게 다른지 쉽게 비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호락 교수] “체코도 공산주의 국가였지만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독특한 나라입니다. 개인의 기본 인권이 무시되고 철저하게 당이 정한 대로 움직이는 나라. 아마 전체주의 수준으로 따지면 북한을 넘어설 나라가 현재도 없고 과거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북한은 차원이 완전 다르죠. 완전한 신격화, 정치 지도자를 신격화해서 완전히 종교처럼 사람의 의식까지 빼앗으려는 노력은 체코에 없었습니다.”

아울러 체코와 헝가리 등 옛 유럽 공산 국가의 일부 시민들 사이에 고개를 드는 전체주의의 위험을 경고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전체주의에 대한 향수, 가짜 뉴스 등 허위 선전의 위험을 경고하는 데에도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란 설명입니다.

[녹취: 호락 교수] “전체주의 나라의 본질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체코 사회도 가짜뉴스라든가 분열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고 일부에선 신전체주의 분위기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회주의 시절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러시아나 중국을 우러러보는 것까지 확산하고 있는데, 전체주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보여줄 수 있는 게 필요합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옛날이야기로만 듣고 있는데 본질을 잘 모르잖아요.”

체코는 1948년 북한과 수교한 뒤 매우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냉전 해체 후 북한 체제에 매우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 2005년과 2019년 체코 국회 등 정부 대표단의 통역으로 북한을 두 번 방문하고 한국에서도 3년 가까이 체류했던 호락 교수는 “북한의 고립이 더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호락 교수는 “(프라하에) 북한 대사관이 있지만 존재감은 거의 없고, 찰스 대학을 비롯해 지역사회와의 교류도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에서 평양외국어대학 체코어과 학생들을 만난 뒤 느꼈던 슬픔이 떠오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호락 교수] “학생들이 너무 불쌍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체코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제대로 된 교재도 없고 인터넷이 접속되지 않아서 실제의 체코를 못 듣고, 못 읽고, 못 보고, 100년 이상 된 고전을 그냥 외우더라고요. 그러니까 우수한 인재들이 자기의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그냥 당에서 지시하는 대로 다들 움직여야 하는 거예요. 느낀 바가 아주 컸습니다. 다시 그런 엉뚱한 선전 선동. 사회주의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많이 가슴에 와 닿았죠.”

호락 교수는 체코가 북한에 교육 등 인적 교류를 제안해도 청년들의 사상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북한 정권 입장에서 유학생을 보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박지현 씨는 이날 행사 뒤 찰스대 학생들과 북한 실상에 대해 대화하며 “극악한 전체주의가 우리의 소중한 자유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강조했다”고 전했습니다.

체코에서 ‘북한에서의 나의 삶’이란 제목으로 판매를 시작한 이 책은 현재 현지 온라인 서점에서 358 체코 코루나(CZK), 미화로 16달러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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