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뉴스 동서남북] 북한 ”장마당 양곡 판매 금지” 효과는?


지난 2017년 12월 북한 청진의 장마당.
지난 2017년 12월 북한 청진의 장마당.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의 장마당이 새로운 위기를 맞았습니다. 국경 봉쇄로 장사가 안 되는데다 북한 당국이 장마당에서 쌀과 옥수수 등 양곡 판매를 금지했기 때문인데요. 북한 당국이 왜 장마당 양곡 판매를 금지했는지, 식량 사정은 어떤지,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이 지난해 12월을 전후해 장마당에서 양곡 판매를 금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이 장마당 양곡 판매를 금지한 소식은 한국의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의 글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양 교수는 지난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펴낸 보고서에서 “북한 정부는 종합시장에서 식량 판매를 금지하고 당국이 운영하는 양곡판매소에서만 식량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의 북한 농업 전문가인 GS&J 인스티튜트 권태진 북한동북아연구원장은 양곡 판매 금지가 전국적으로 이행되는 것은 아니며, 지역별로 편차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북한 전역에 걸쳐 전면적으로 시행되는 것은 아닌 것같고, 일부 지역에서 양곡판매소를 통해 식량이 공급되는 상황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장마당 양곡 판매 금지가 지난해 하반기 북한 당국의 정책적 흐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겁니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9월 25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양곡 유통 비리 척결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농업과 양곡 유통 비리를 없앤다며 ‘허풍방지법’을 만들었습니다.

이어 북한은 12월 8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를 열고 농장법과 양정법 등 곡물 생산과 유통 관련 법령을 개정했습니다.

탈북민들은 이번 조치가 식량에 대한 북한 당국의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말합니다. 그동안 돈주들이 쌀과 옥수수를 매점매석해 식량 가격이 오르는 경우가 있었는데 정부 당국이 나서서 이를 막겠다는 겁니다.

평안남도 평성에서 농업담당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2011년 한국에 입국한 조충희 씨입니다.

[녹취: 탈북민 조충희 씨] “장사꾼들이 식량 가격을 올리지 못하게끔 식량 흐름을 잘 하겠다는 것인데,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북한이 장마당 양곡 판매를 금지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북한 전문매체인 ‘아시아 프레스’에 따르면 1월13일 현재 쌀 가격은 kg당 5천600원입니다. 이는 전달인 12월(6천100원)보다는 소폭 하락한 것이지만 지난해 1월(4천800원)보다는 무려 800원 비싼 가격입니다.

게다가 옥수수(강냉이)가격은 상당히 올랐습니다.

양강도와 자강도의 경우 1월13일 옥수수 가격은 kg당 3천400원을 기록했습니다. 지난 연말 가격이 2천800원선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20% 이상 오른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양곡판매소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선 판매량이 제한돼있습니다.

정부가 운영하는 양곡판매소에서 쌀과 옥수수를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월 1회, 1인 당 5kg 정도를 세대 단위로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세대를 4인 가족으로 가정하면 한 달에 20kg을 양곡판매소에서 살 수 있는 겁니다.

문제는 구매량이 작은 겁니다. 북한의 4인 가족이1인 당 쌀을 500g씩 먹는다고 치면 하루 한 세대에 필요한 양은 2kg입니다.

그러면 한 달에는 60kg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양곡판매소에서 식량을 구입하더라도 40kg이 여전히 부족합니다.

이런 이유로 주민들은 여전히 장마당에서 쌀을 살 수밖에 없다고 조충희 씨는 말했습니다.

[녹취: 탈북민 조충희 씨] “근데 12월이나 1월에 5일분이나 일주일치 밖에 안 줬으니까, 또 전체적으로 100명이면 100명에 다 준 것이 아니고, 주다가 (쌀이) 떨어졌거든요, 그러니까 5일분만 줬고, 나머지 25일분은 장마당에서 사먹어야 하는 것이죠.”

옥수수(강냉이)가격이 오른 것은 식량난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불안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농사가 안 돼 식량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주민들이 너도나도 옥수수를 사느라 가격이 올랐다는 겁니다.

북한 당국이 장마당 식량 통제를 하려다 실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북한은 지난 2005년 국가가 식량 유통을 전담하는 ‘양곡전매제’를 도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농민들과 장마당이 호응하지 않아 실패했습니다.

또 김정은 위원장은 2021년 여름 식량 가격이 치솟자 7월17일 ‘인민생활 안정을 위한 특별명령’을 내렸습니다. 군량미를 방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부 당국이 보유한 양곡이 부족해 이 조치 역시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전문가들은 장마당 양곡 판매 금지가 기존의 포전담당제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북한이 2012년부터 도입한 포전담당제는 한 분조가 15t을 생산하면 국가에 5t을 납부하고 나머지 10t은 농민들이 자율적으로 처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농민들은 자기 몫의 곡물을 장마당에 팔아 살림을 꾸려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북한 당국이 하려는 것은 곡물 대부분을 헐값에 수매하고, 또 장마당 양곡 판매를 금지하는 겁니다.

농민과 장마당 상인 모두 돈을 벌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북한 당국의 이번 조치는 농민과 장마당 상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북한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메릴랜드대 교수는 이번 조치는 쌀 가격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며, 농민들로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윌리엄 브라운 교수] ”Farmers don’t like that. Farmers want high price rice.”

북한 당국은 양곡판매소 등 여러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식량 사정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기본적으로 쌀과 옥수수같은 식량 공급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한국 농촌진흥청은 북한의 지난해 곡물 생산량을 전년도 보다 3.8% 감소한 451만t으로 추정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한 해 먹고 살기 위해서는 550만t이 필요한데, 100만t가량 부족한 겁니다.

북한 당국은 식량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중국에서 식량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11월 중국으로부터 3만t 상당의 쌀을 수입했습니다. 앞서 10월에도 730만 달러 상당의 쌀을 중국에서 수입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농업을 오래 관찰해온 권태진 원장은 그 정도 수입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말합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작황이 450만t 정도면 외부에서 100만t 정도 들어와야 하는데, 작년 수입량이 10만t 밖에 안 될텐데, 과거에는 밀수, 비공식 수입이 있었지만 지금은 비공식 수입이 근절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북한 관영 `노동신문’은 식량 문제 해결에 나라의 존망이 걸려있다면서 밥먹는 사람들은 모두가 식량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북 제재와 국경 봉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양곡 통제만으로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