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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국 정부 북한인권정책 진단2부] 서방 전문가들 “북한 인권, ‘홍보수단’ 전락 우려…대북정보 유입 필수”


윤석열 한국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북한에 대한 '담대한 구상'을 발표했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북한에 대한 '담대한 구상'을 발표했다.

한국의 윤석열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주요 대북 의제로 삼고 있다는 신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미국과 유럽의 인권 전문가들이 진단했습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발표한 ‘담대한 구상’에서 인권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인권이 부수적인 홍보 수단으로 사용될 여지도 있어 우려스럽다는 반응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북한인권정책협의회 재가동 등을 진지한 북한 인권 개선 의지로 받아들이는 긍정적 평가도 있습니다. 저희 VOA가 어제부터 보내드리는 한국의 대북 인권 정책 진단 기획, 오늘 2부 마지막 순서로 미국 등 서방세계 전문가들의 견해를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워싱턴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북한의 인권 문제만을 20년 넘게 다루고 있는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최근 한국과 미국 정부의 북한 인권 관련 움직임을 조금 근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나라 모두 겉으로는 북한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범퍼 스티커’ 즉 차량에 붙이는 광고 문구 정도로 활용하는 듯하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스칼라튜 총장] “North Korean human rights has been turned into a bumper sticker. Every South Korean presidential administration comes up with a bumper sticker. Now its '담대한 구상', Park Geun-hye's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I mean, you look at all presidents and that's all there is a bumper sticker.... I hope that North Korean human rights will not just turn into a bumper sticker here in the USA”

스칼라튜 전 총장은 역대 한국 정부는 모두 ‘범퍼 스티커’처럼 내세우는 대북 정책을 갖고 있었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주에 밝힌 ‘담대한 구상’ 역시 마찬가지로, 그 안에 북한 인권 언급은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상당히 강조하면서 이에 기반한 대북 정책의 대전환을 기대했지만, 지금은 북한 인권 문제를 비핵화와 미사일, 정치 안보를 위해 제쳐 두거나 일괄 타결 시도를 위해 ‘부수적 사안(fringe issue)’으로 다루는 과거의 실책을 반복하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총장] “I was hoping that the Yoon Suk-yeol administration in South Korea would lead with human rights. And then we hear about the President's proposal for a 담대한 구상 the Grand Bargain, I don't really see human rights in the Grand Bargain. And I'm getting a little bit worried. And right now I do not see human rights as being part of the agenda. Again, it's not regarded as a main issue, is regarded as a fringe issue.”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임명 등은 고무적이지만 “지금 당장 인권이 (대북) 의제의 일부로 보이진 않는다”는 겁니다.

미국과 유럽의 북한 인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바이든 행정부와 윤석열 정부가 모두 전 세계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열정적으로 강조하면서도 유독 북한 인권에는 말을 아끼는 상황에 대해 이중 잣대가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1년 반이 넘도록 북한 인권 정책을 조율할 북한인권특사를 임명하지 않으면서도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여전히 우려하며, 미국은 인권을 외교정책의 중심에 두는 데 전념하고 있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안보 전문가들은 두 나라 정부의 이런 움직임을 북한의 핵미사일 위기를 고조시키지 않으려는 외교적 대응의 일환으로 풀이하지만, 국제인권단체들은 수십 년간의 대북 정책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또 다시 무시하는 행태로 비판합니다.

세계 100여 개 나라의 인권 상황을 감시하는 휴먼라이츠워치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23일 VOA에, “인권은 근본적으로 북한의 핵 문제로 연결된다”며 한국 정부의 분발을 촉구했습니다.

[로버트슨 부국장] “Human rights are fundamentally connected to nuclear issues in the DPRK because the government’s abuses inspire so much fear in the North Korean people that they don’t dare object to the massive diversion of resources from basic needs like food security, education and health to military projects like missiles and nuclear warheads. Kim Jong-un sacrifices the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of the North Korean people on a daily basis for his war machine, so the least South Korean should do is raise human right issues in their proposals.

“정부의 학대는 북한 주민들에게 너무 많은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식량 안보, 교육, 보건과 같은 기본적인 필요에서 미사일과 핵탄두 같은 군사 프로젝트까지 자원을 대규모로 전용하는 것을 주민들은 감히 반대할 수 없다”는 겁니다.

로버트슨 부국장은 “김정은은 그의 ‘전쟁 기계’를 위해 북한 주민들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날마다 희생시킨다”며 “한국이 최소한 해야 할 일은 그들의 (대북) 제안에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중동 지역의 인권 감시와 개선 활동을 하는 세계기독교연대(CSW)의 벤 로저스 동아시아 담당 선임분석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충분히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면서도 최근의 움직임은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로저스 선임분석관] “His words in his inauguration speech were very encouraging, but his Liberation Day speech and the failure to mention human rights in North Korea at all was disappointing.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강조한 “그의 취임식 연설은 매우 고무적이었지만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 인권에 관해 전혀 언급이 없었던 것은 실망스럽다”는 겁니다.

로저스 선임분석관은 “윤 대통령은 경악스러운 북한 내 인권 위기를 조명하고 남북 관계는 비핵화와 인권 증진이 병행돼야 개선할 수 있으며 두 사안이 서로 연계돼 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취임식 연설을 공고히 해 나가는 게 필수”라고 말했습니다.

[로저스 선임분석관] “It is vital that President Yoon build on his inauguration speech by continuously shining a light on the shocking human rights crisis in North Korea, by emphasising that relations between North and South can only be improved if there is both denuclearisation and improvement in the human rights situation, and that the two issues are interlinked.”

“진정한 평화는 자유와 인간에 대한 존엄 없이는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평화 추구를 위해 인권이 포기되거나 희생되어서는 안 되며, 윤 대통령은 잔혹한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와 국제사회의 구상을 지지함으로써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한반도 전문가인 렘코 브뢰커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 인권에 대한 “로드맵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브뢰커 교수] “I'm afraid I don't see any roadmap at the moment. South Korea is in dire need of a workable and clearly principled North Korea-policy, after Moon Jae-in's conciliatory policy failed to deliver tangible results. So far, however, Seoul has shown little sign of coming up with such a policy. President Yoon is running out of time to come up with a realistic North Korea policy. His proposal to Pyongyang that basically promised untold riches in exchange for denuclearization was a sign of what to me looked like despair.”

“한국은 전임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유화 정책이 실질적 성과를 내는 데 실패한 뒤 실행가능하고 명확한 원칙에 입각한 대북 정책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아직 그런 정책을 내놓을 조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브뢰커 교수는 특히 비핵화와 막대한 지원을 맞바꾸겠다는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은 과거에도 여러 번 실패한 장밋빛 희망으로 자신에게는 “절망(despair)적 신호처럼 보인다”면서 중요한 것은 실행 가능한 대북 정책을 펼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 담당 부차관보는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자세가 “진지해 보인다”며 3가지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습니다.

먼저 북한 인권 관련 정부 부처 간 협의체인 북한인권정책협의회를 오는 25일, 2년 만에 개최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인권 담당뿐 아니라 정부의 모든 부처가 북한 인권 증진 방안을 모색하는 데 관여하는 포괄적 방식을 생각한다는 것”으로 “매우 진지한 긍정적 신호로 보인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코헨 전 부차관보] “I liked the idea that they were thinking of it in a comprehensive way, not just as a human rights section, but that all parts of the government would be involved in looking at how to advance human rights in North Korea. Now that to me is a very serious and positive sign,”

코헨 전 부차관보는 다양한 분야의 기관들이 입장과 생각, 전략을 공유하며 북한 인권 증진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라며 이런 비슷한 협의가 미국 정부와 유엔에서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담대한 구상’ 역시 포괄적으로 보면 다양한 분야의 대북 지원과 인프라 개발 협력 과정에서 북한 노동자들의 권리, 임금, 성분 문제 등 인권 사안을 제기할 여지도 있다며 협력 속에 인권에 초점을 맞춘 보다 섬세한 정책을 만들도록 격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코헨 전 부차관보는 또 윤석열 정부가 전임 문재인 정부 아래서 괴롭힘 당하던 북한 관련 비정부기구들에 기금 제공을 모색하는 것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코헨 전 부차관보] “The other part was they're looking at giving funding to the NGOs that were really harassed under the previous administration in South Korea. They're looking now at giving funds to the efforts of these groups to promote human rights in North Korea to have non-governmental efforts and that the government would pitch into lends support to these efforts. That's a very good way to do things.”

윤석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이 북한인권재단을 출범시켜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민간단체들에 자금을 지원하려는 노력은 매우 유익하다는 겁니다.

이신화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는 앞서 VOA와의 인터뷰에서 한국도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 방식의 대북 민간단체 지원 시스템을 추진해 안정적이고 일관적으로 북한 인권 증진 지원 활동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이에 대해 데이먼 윌슨 NED 회장 겸 최고경영자도 지난주 VOA와의 인터뷰에서 이 대사 등의 이런 구상을 반기며 NED 차원에서도 이런 노력에 적극 협력할 의지가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한편 또 다른 전문가들은 북한 인권에 있어 가장 심각한 부분은 김정은 정권이 정보 통제와 세뇌를 통해 주민들을 우민화하는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가 대북 정보 유입 활동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일 때 그 진지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윌리엄 브라운 메릴랜드대 교수는 22일 VOA에 북한 정권을 매우 긴장시키는 것은 윤 대통령이 북한 주민들과 직접 대화를 시도하고 그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할 때라며, 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I think that's what President Yoon is talking about, talking to, trying to talk to the people in North Korea. That would make the regime very nervous, I think it’s more powerful, that would be the most powerful message. As I say proper, proper information, not propaganda. Useful and useful information be like weather,”

북한 주민 다수가 휴대전화 등 여러 현대적 기기를 갖고 있는 만큼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선전이나 심리전이 아닌 일기예보와 사업, 농업 등 삶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깨울 필요가 있다는 제안입니다.

영국에서 활발한 북한 인권 운동으로 앰네스티 인권상과 아시아 여성상 등을 수상한 박지현 씨도 이날 VOA에, 윤석열 정부가 ‘자유’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설파하려면 북한 주민들에게 진실된 정보부터 보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씨] “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새 정권으로 바뀌어서 (윤 대통령이) 진정으로 자유를 언급하셨을 때 그 속에 북한 주민들의 자유가 있다면 정보부터 북한 주민들에게 들여보내는 노력부터 해야 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지금 시대에서 정보는 단순한 음악이나 드라마가 아니잖아요. 정보 자체가 사람들의 삶 자체를 바꾸는 지렛대 역할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 지렛대를 아직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니까,”

휴먼라이츠워치의 로버트슨 부국장은 이런 정보 유입을 비롯해 한국 정부가 인권과 인도적 지원, 이산가족 상봉, 비핵화 등을 함께 제기하는 ‘다면적 대북 정책(a multi-faceted North Korea policy)’을 추진해야 한다며, “허풍과 위협을 사용하는 대화 게임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북한 정권이 깨닫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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