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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본부.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이 새해 들어 더 고조되면서 유럽에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우크라이나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토는 러시아의 이런 주장을 일축하고 있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현 긴장 사태의 뿌리가 되고 있는 나토는 어떤 기구인지 알아봅니다.

“냉전 시대에 태어난 군사동맹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구소련의 팽창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군사동맹체입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국제 사회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국가들과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 국가들의 냉전 체제로 재편됐습니다.

특히 당시 유럽은 영국과 프랑스 등 서유럽의 전통적인 민주 국가들과 폴란드, 루마니아 등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로 나뉘어 대립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들의 군사적 팽창에 위협을 느낀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 간에는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군사동맹체의 필요성이 제기됐는데요.

그 결과 1949년, 12개 나라가 미국 워싱턴 D.C.에서 ‘북대서양조약’에 서명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출범했습니다.

초창기 회원국은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 2개국과 영국, 프랑스, 벨기에, 덴마크, 아이슬란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유럽 10개국입니다. 나토 본부는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군사동맹체”

2022년 현재, 나토는 30개 회원국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출범 후 1952년 2월, 터키와 그리스의 동시 가입을 시작으로 1955년에는 당시 분단국이었던 독일의 민주 진영, 서독이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30년 만인 1982년 스페인이 가입하는 등, 나토는 큰 변화 없이 꾸준히 지속됐는데요. 하지만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1999년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 가입을 시작으로, 2004년, 루마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불가리아 등 구소련 국가들이 속속 가입했습니다. 2009년 크로아티아와 알바니아가 합류했고, 가장 최근에 가입한 나라는 북마케도니아로서, 지난 2020년 나토의 서른 번째 회원국이 됐습니다.

주요 유럽 국가들 가운데 스웨덴과 핀란드의 경우, 오랫동안 군사 비동맹과 중립을 유지하면서, 몇 년째 나토 가입을 저울질 중입니다.

반면 이번 사태의 불씨가 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그리고 또 다른 구소련 국가인 조지아는 오래 전부터 나토 가입을 희망해왔지만 성사되지 않고 있습니다.

“나토의 임무”

나토 출범 당시, 미국의 해리 투르먼 대통령은 나토 창설의 목적에 대해, 전후 세계 평화와 자유를 수호하고 민주주의 증진의 염원을 담았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과 14개 조항으로 이뤄진 ‘북대서양조약’은 나토의 근간이 되고 있는데요.

나토는 이 조약에서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 법치의 원칙에 입각하고, 유엔의 헌장을 존중하며 모든 나라와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추구하는 한편, 집단 방어와 평화, 안전 보호를 위한 공동의 노력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나토는 특히 제5조에서 회원국에 가해지는 무력 행사에 대해서는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공동 대응한다는 내용의 ‘집단안보’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나토는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한 때 존립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일기도 했습니다.

나토 출범의 직접적 동기가 됐던 공산주의 소련이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는데요. 하지만 나토는 냉전 이후 세계 평화에 대한 임무를 확대하며, 유럽 너머로 활동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현재 나토의 주 임무는 전 세계 주요 대테러 작전과 평화유지,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반발”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미국과 서방의 병력과 무기가 우크라이나에 배치돼 자국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입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접경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켜 놓은 것도 이러한 맥락입니다.

러시아는 특히 미국과 유럽이 1990년 독일 통일 당시, 나토를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기로 했던 약속을 어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후 나토에 가입한 폴란드와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구소련 국가의 나토 병력과 무기도 철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나토는 구소련과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일축하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는 러시아가 그런 주장을 하는 이유를 미국의 41대 조지 H. W. 대통령 당시 재임했던 제임스 베이커 전 미 국무장관의 발언에서 찾고 있습니다.

지난 1990년 3월 제임스 베이커(가운데 등진 모습) 당시 미 국무장관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미하일 고르바초프(오른쪽 안경 쓴 이)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회담하고 있다.
지난 1990년 3월 제임스 베이커(가운데 등진 모습) 당시 미 국무장관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미하일 고르바초프(오른쪽 안경 쓴 이)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회담하고 있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은 통일 독일의 최종 지위와 나토 가입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990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모스크바에서 만났는데요. 이때 베이커 전 장관은 나토의 관할권이 동쪽으로 1인치도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베이커 전 장관은 지난 2014년 한 인터뷰에서 전후 문맥없는 우스꽝스러운 주장이라고 일축한 바 있습니다.

베이커 전 장관은 진실은, 당시 협상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만약에(what if)”라는 말을 했고, 이에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서기장은 그 자신, 동독 포함 나토의 확장 해법을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나토는 한 개인의 발언이 동맹의 합의나 공식 조약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게 나토의 공식 입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토의 핵심 국가인 미국도 나토 가입 여부는 각국의 의사에 따른 것이며, 다른 나라가 간섭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나토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전체 회원국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요.
현재 러시아의 위협 외에도 우크라이나 국내 정치 수준과 각국의 이해 관계 등으로 회원국의 전체 찬성을 얻기 힘들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조만간 성사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

최근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최근 전 세계가 긴장 속에 지켜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입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019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을 때부터 전 세계의 화제를 일으킨 인물입니다.

1978년생으로 올해 44세인 그는 정치 경험이 전혀 없던 코미디언 출신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당시 소련의 일원이었던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는데요. 젤렌스키 대통령의 증조부는 독일 나치 정권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당시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0대 때 영어 공인시험인 TOFEL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이스라엘에서 교육받을 기회도 있었지만 교수였던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는 키예프국립경제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코미디언을 꿈꿨던 그는 17살 때, 지역 코미디 방송 팀에 들어간 후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요. 그러다 2015년 ‘국민의 종’이라는 코미디 연속극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부정부패에 맞선 청렴한 대통령 모습을 연기하며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당초 정치에 뜻이 없다고 말했던 그는 2018년,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국민의 종’ 연속극 제작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함께 정당을 창당하고 이듬해 대선에 도전했습니다.

선거 초반, 우스운 희극인 쯤으로 치부됐던 그는 이 선거에서 현역 대통령을 누르고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 되는 돌풍을 일으킵니다.

당시 우크라이나 대선에는 약 40명의 후보가 나섰는데요. 그는 페트로 포로셴코 당시 대통령과 결선 투표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리고 이 결선 투표에서 약 73% 대 24%라는 압도적 차이로 우크라이나의 제6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취임 당시 만 41세였던 그는 또 우크라이나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갖고 있습니다.

취임 후 그는 친미국, 친서방 행보를 이어가는 동시에, 러시아에 적대적이었던 포로셴코 대통령보다는 적극적으로 러시아와 대화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위협적인 언사나 압박에는 굴하지 않겠다며 러시아와 일정 거리를 두는 행보를 걸었습니다.

이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관 재계약 연장 거부 등을 무기로 우크라이나를 압박했는데요. 여기에 지난해 봄부터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접경에 10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집결시키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현재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위협과 함께, 국내 비판으로 사면초가에 몰려 있습니다.

집권한 지 3년이 다 되가는 가운데 그에 대한 평가는 썩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특히 정치 경험과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평가와 함께 정부 요직을 친인척들로 채웠다는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반역 혐의를 받고 외유 중이던 포로셴코 전 대통령이 최근 폴란드에서 돌아와 비판에 앞장서고 있는데요.
러시아의 침공 위협으로 불안정한 우크라이나 정국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도력 부재로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관해 알아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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