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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풍경] 재일한인 위안부 영화 ‘침묵’


박수남 감독과 딸 박마의 피디가 재일한인 위안부 영화 ‘침묵’ 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박수남 감독과 딸 박마의 피디가 재일한인 위안부 영화 ‘침묵’ 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 북한 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성노예로 살았던 위안부들의 증언을 담은 영화가 미국에서 상영됐습니다. 일본계 한국인 모녀가 제작해 특히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장양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2014년, 충청북도 속리산 기슭의 한 사찰에서 걸어나오는 이옥순 할머니.

당시 87세인 이옥순 할머니를 찾아간 사람은 한국계 일본인 박수남 감독과 박 감독의 딸인 박마의 씨.

<영화 녹취: 20년 만에 찾아왔어요.>

20년 만에 옥순 할머니를 찾은 박 감독 모녀는 태극기가 걸린 집을 찾아 가파른 골목길을 올라갑니다.

태극기를 발견한 두 모녀는 집으로 들어가고, 옥순 할머니는 울먹이며 반갑게 두 모녀를 맞이합니다.

<영화 녹취: “아이구 세상에… 아이구, 반가워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

영화 `침묵'은 20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이 옛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영화 녹취: “몇 차례를 일본에 들어가셔서 그렇게 대단하게 일본하고 싸웠잖아요? 일본 사람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렇게 늘 압장서서 장구치고.”>

옥순 할머니는 일본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가게됐습니다. 자신을 볼 때마다 죽은 딸을 떠올리는 아버지 지인의 하소연에 지쳐 한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영화 녹취: “우리 아버지 이름이 봉달인데, 봉달이 너는 부모가 산소를 잘 써서 너의 딸이 살아왔는데, 우리 딸은 안 살아왔어요. 거기서 아주 많이 갔어요. 많이 갔는데 나 하나밖에 안 온 거에요.”>

영화에서는 박 피디가 1989년 일본 오키나와에 끌려갔던 배봉기 할머니를 소개하는 장명이 이어집니다.

배봉기 할머니는 19세 어린 나이에 위안부가 됐고, 31세가 되어 자유를 찾았습니다.

배 할머니는 전쟁 중 폭탄이 떨어지고 대피하던 상황 등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루코 라는 이름의 위안부 여성의 죽음을 회상하며 눈물짓는데요, 배 할머니는 그 여성이 어머니를 그리워했다고 말합니다.

1991년 배 할머니는 아파트에서 쓸쓸한 죽음은 맞았습니다. 할머니의 주검은 사망한 지 며칠이 지나서야 사회복지사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고향이 가고팠다는 할머니의 생전 영상녹취록은 마치 유언장 같습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을 소개하는 가운데 영화는 1990년 초부터 이뤄진 위안부 관련국들의 움직임들을 옛 언론보도 자료를 통해 보여줍니다.

북한에서는 일본과의 수교 협상이 진행됐고, 1992년 1월 열린 협상에서 북한이 위안부에 대해 국가배상을 공식 요구했다는 일본 신문의 자료사진도 나옵니다.

당시 한국 언론은 북한와 연대하는 일본 사회당과 한국의 정대협 대표들이 평양을 방문해 위안부 문제에 함께 대처하겠다고 선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런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배 할머니의 유골은 일본의 한 사찰로 옮겨졌습니다.

배 할머니의 죽음 이후, 15명의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운동을 벌이는데요, 당시 박수남 감독이 피해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되어줬습니다.

1994년 당시 67세였던 이옥순 할머니는 장구를 치고 다른 할머니는 꽹과리를 치며 한복 차림으로 일본 시내를 행진합니다.

이어지는 화면에는 증언석에 앉은 할머니들이 과거 경험과 병들고 늙은 자신들의 현실을 이야기하다 격분해 실신하는 모습도 담고 있습니다.

아무 말 못하고 줄곧 눈물만 흘리는 할머니의 모습도 보입니다.

<영화 녹취: “죽지 않겠어요. 200년이고 300년이고 살아서, 선으로 마음 먹고 왔었는데, 왜 죽어요. 우리는 절대 안죽겠어요.!>

당시 일본군이 위안부 여성들을 상해했던 칼을 상징하는 칼 꾸러미를 내동댕이칩니다.

영화는 증언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이 어땠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영화 녹취: “몇 십 년 지난 후에 만났는데 서로가 외면하는 거에요. 나 기억하겠어요? 한다 그거야. 그럼 왜 아는 척을 안하냐고. 그러니까, 말이 무서워서 그런다고, 너만 알고 나만 알자 그 말이야. 서로 울기도 했죠. 그런데 죽을려고 할 때 입 거품이 올라오더니 숨이 끊어지더라고요…”>

비참하게 병들어 죽어간 할머니는 자식도 모르는 고통 속에 침묵하다 죽었다며, 남의 종노릇하며 고생했던 할머니를 보고싶다고 말합니다.

영화는 당시 일본 군의관이었던 유아사 켄 씨가 사과하는 장면을 공개합니다. 유아사 씨는 전쟁 중에 위안부들을 학대하고 그들의 삶을 파괴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합니다.

1935년에 일본에 태어난 박수남 감독은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 등 전쟁으로 인해 상처입은 사람들을 만나 영상에 담기 시작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접했습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투쟁사를 담은 박수남 감독의 영화 ‘침묵-일어서는 위안부’는 30년 전부터 모아놓은 자료들을 모아 지난 2016년에 발표했었고, 당시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박수남 감독은 지난 2015년 한-일 간 위안부 합의에 부당함을 느끼고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촬영한 영상을 영화화 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 워싱턴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WCCW)가 주관해 지난 19일 미 동부 버지니아 페어팩스 청사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박 감독의 딸이자 영화의 제작과 편집을 맡은 박마의 피디는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녹취: 박마의 피디 성명]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위안부 피해자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겁니다. 일본 정부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요구하는 사죄와 배상을 철저하게 거부해왔습니다. 그리고 일본 국민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일본 정부가 국민에게 말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 피디는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한인 3세로서, 사람들이 위안부로 강제동원된 피해 여성들의 아픔을 알아주기를 원한다며, 일본이 변화될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박 피디는 일본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며 미국 내 상영이 일본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마의 피디] “일본에서는 뭐라고 할까, 일본 사람들이 인종 차별하고 과거 역사 사실을 미국 사람들이,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알리고 전쟁 희생자는 우리 민족뿐 아니라, 공통점 있으니까 그것을 같이 함께 공유해서 …”

박마의 피디는 `VOA'에 영화를 본 관람객들의 반응을 전했습니다.

[녹취: 박마의 피디] “할 때마다 영화를 보면 일본 사람들은 바뀝니다. 그것은 젊은 애들이 오고, 스토니브룩 대학교에 일본 학생이 왔었는데, 주변사람들이 위안부 없었다고 하고, 헤이트 대모가 일본에 있어서 진실을 알고 싶어서 왔다고, 알게돼서 감사하다고 막 울었습니다.”

영화 침묵은 뉴욕주립 스토니브룩 대학과 조지워싱턴 대학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진 버지니아 페어펙스 카운티 청사 등 4곳에서 상영됐습니다.

박마의 피디는 미국 내 상영은 이제 시작이라며 향후 더 많은 기회가 있기를 희망했는데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아리랑’도 곧 개봉한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영화에 출연한 15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가운데 생존자는 4명이며, 모두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VOA 뉴스 장양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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