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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의 산실, 미국 대학을 찾아서] 프린스턴대학교 (1)


미국 뉴저지주에 소재한 프린스턴 대학교.

매주 미국의 명문 대학들을 소개하는 '지성의 산실, 미국의 대학을 찾아서'. 오늘은 미 동부 명문사립대학인 아이비리그 시리즈 3번째, 미국 동북부 뉴저지주에 있는 프린스턴대학교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지성의 산실, 미국 대학을 찾아서 오디오] 프린스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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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륙 미국의 모든 젊은이를 위해 출발한 학교”

프린스턴대학교는 하버드대학교, 윌리엄앤메리대학교, 예일대학교에 이어 영국 왕실의 정식인가를 받고 미 신대륙에 세워진 고등교육 기관입니다. 1746년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의 장로교 목회자들이 영국 조지 2세 국왕의 칙령을 받아 뉴저지 지역에 '뉴저지칼리지(The College of New Jersey)'라는 이름의 새로운 대학교를 설립하는데요. 이게 바로 오늘날 아이비리그 명문 사립대의 하나인 프린스턴대학교의 모체가 됩니다. 38년간 미국 대학 진학상담과 교육을 해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도움말 들어보시죠.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당시만 해도 영국 왕실에서 미 식민지 대륙에 대학 설립을 인준하게 될 때는 식민지의 지도자나 목회자 양성을 하기 위한 게 목적이었는데요. 하지만 프린스턴대학교는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언어와 순수학문을 가르친다는 교육 헌장을 채택했습니다. 특히 '특정 종파를 초월해서 미국에 거주하는 모든 젊은이에게 교육의 기회를 준다'는, 그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문구를 넣어 문호 개방을 허용했는데요. 개교하면서부터 ‘지식과 이성의 탐구와 전달’이라는 교육이념을 추구하는 프린스턴대학교는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학부에서부터 대표적인 '연구중심의 대학교(research university)'입니다. 연구중심 대학교라는 것은 대학 학부에서 특정 분야의 전문인이나 직업 교육을 위주로 하는 학제가 아니라 순수하게 학문 그 자체를 연구하는 대학을 말합니다."

“목회자의 응접실에서 시작한 프린스턴대학교”

프린스턴대학교의 첫 강의는 예일대학교를 졸업하고 뉴저지 엘리자베스타운(Elizabethtown)이라는 곳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조너선 디킨슨 목사(Jonathan Dickinson)의 응접실에서 10명의 신입생으로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탄한 출발은 아니었다고 하는데요.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설명입니다.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1747년 5월 개교한 지 몇 달 만에 디킨슨 목사가 세상을 떠나고 학교 운영에 다소 어려움을 겪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웃 마을 뉴어크(Newark)에서 목회를 하던 에런 버르 목사(Aaron Burr)가 이 신생 대학교의 총장을 맡기로 하고, 캠퍼스도 자신의 목회지가 있는 뉴어크로 이주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최초로 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1756년 가을학기가 시작되면서 버르 총장은 다시 대학을 지금의 캠퍼스가 있는 프린스턴 시로 이주시켰습니다."

1956년 냇소홀 설립 200주년을 기념해 발행된 3센트짜리 우표.
1956년 냇소홀 설립 200주년을 기념해 발행된 3센트짜리 우표.

“미국 독립운동의 격전지, 프린스턴대학교”

에런 버르 총장은 프린스턴 시로 캠퍼스를 이전한 후, 당시 뉴저지 주지사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교사를 신축하고 '냇소홀(Nassau Hall)’이라고 명명했는데요. 영국 국왕 윌리엄 3세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이 건물은 강의실, 교수실, 기숙사, 도서관, 채플, 식당, 주방 등이 갖추어진, 당시 신대륙에서 단일 학교 건물로는 가장 큰 건물이었고요. 영국과의 독립전쟁 때는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녹취: 교육전문가: 손승호 씨] “영국군과 독립전쟁을 치르는 동안, 프린스턴의 단일교사였던 냇소홀은 영국군과 미 대륙군에 차례로 점령당하는 격전지이자, 군대의 막사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독립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1777년 1월 3일 ‘프린스턴 대전투’에서 영국군이 프린스턴 교정에서 마지막 후퇴를 하게 되는데요. 당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전투 사령관이자, 훗날 미국 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을 역임한 알렉산더 해밀턴의 마지막 공격으로 영국군이 항복하게 됩니다. 이때 전투의 상흔이 아직도 프린스턴 교정에 남아 있고, 지금도 연방정부에 의해 사적지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1956년 냇소홀 설립 200주년 때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3센트짜리 우표가 발행되기도 했습니다.”

1783년 냇소홀에서 당시 미국의 의회 격인 연합회의가 처음 모이는 영광을 안게 됐고요. 이로 인해 프린스턴대학교 캠퍼스는 1783년 6월 30일부터 11월 4일까지 비록 몇 달간이긴 하지만, 신생 독립국가 미합중국의 초대 수도 역할을 감당하는 역사적 의미도 갖게 됩니다.

학생들이 프린스턴 대학교 교정을 거닐고 있다.
학생들이 프린스턴 대학교 교정을 거닐고 있다.

“개교 150주년, 프린스턴대학교로 변경”

프린스턴대학교는 학교가 설립된 지 150년 만에 학교의 이름을 바꿉니다. 1896년 개교 150주년을 기념해, 학교 부지가 있는 프린스턴 시를 기념하며, 프린스턴대학교로 개명하는데요. 당시 교수진 대표로 우드로 윌슨 교수가 "국가에 이바지하는 프린스턴대학교"가 되자는 명연설을 합니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902년 윌슨 교수는 프린스턴의 13대 총장에 선출되는데요. 어쩐지 많이 듣던 이름이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듯합니다. 네, 한국민들에게도 익숙한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주창했던 미국의 28대 우드로 윌슨 대통령입니다. 윌슨 대통령이 프린스턴의 총장으로 재임하던 기간, 프린스턴은 급성장을 이루는데요.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도움말입니다.

[녹취: 교육전문가: 손승호 씨] "윌슨 총장 시절, 프린스턴이 양적으로도 급성장을 거듭해왔지만, 윌슨 총장은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모두가 학문과 실무를 겸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에 혼신을 다했습니다. 특히 시대적 상황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1천200만 달러를 모금해 프린스턴대학교가 미국의 대표적인 종합대학의 하나로 변모하는 초석을 마련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반대도 있었지만, 대학 교수진을 2배 늘리고 행정구조를 광범위하게 넓히면서, 1, 2학년 교과 과정에는 인문계 순수 인문학문의 폭을 넓히고, 3, 4학년은 전공 과정을 공부하도록 대대적인 교육개혁을 실시했습니다."

프린스턴대학교 스테디움에서 학생들이 풋볼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프린스턴대학교 스테디움에서 학생들이 풋볼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프린스턴대학교 현황”

프린스턴대학교는 현재 약 5천 명의 학부생과 2천800명의 일반대학원생으로 구성되어 있고요. 학부생의 98%가 캠퍼스 내에서 거주하며 대학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현재 노벨상 수상자들을 포함해 세계적인 석학들로 이뤄진 1천200여 명의 교수들이 강의를 하고 있는데요, 교수 1명당 학생이 불과 5명꼴이라고 하네요.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도움말 더 들어보시죠.

[녹취: 교육전문가 손승호 씨] “프린스턴은 종합대학이면서, 선구자적인 연구중심형 대학인데요. 비교적 작은 규모인 덕택에, 학생들과 교수진이 신입생 교양학부 과정에서부터 4학년 전공과목에 이르기까지 아주 긴밀한 접촉을 가질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교수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개인의 인격 성장, 지도력 개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인물로 성장할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명문 대학 중의 하나가 바로 프린스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린스턴대학교는 또 학사 운영자산이 2018년 20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재정적인 풍요함을 누리고 있어 상당히 많은 수의 학부와 대학원 학생들이 장학금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프린스턴대학교가 있는 프린스턴 시"

프린스턴대학교가 있는 프린스턴 시는 뉴저지주 남부에 있는, 지금도 인구 3만 명이 채 안 되는 아주 작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전형적인 대학촌 중의 하나로, 아름답고 생동감이 넘치는 연구도시라고 할 수 있는데요. 프린스턴대학교 외에도 천재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사망하기 전, 20여 년간 머물면서 연구한 곳으로 알려진 고등연구소(IAS), 프린스턴신학교, 또 외국인들의 영어 능력 시험인 TOEFL, TOEIC, GRE 시험 주관처인 ‘ETS (Educational Testing Service) 등이 있고요. 최고급 식당과 극장이 즐비한 데다가 뉴욕, 필라델피아 등 미 동부의 주요 도시들이 모두 1시간여 거리에 있어서, 해마다 60만 명 넘는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프린스턴 대학교 '우드로 윌슨 스쿨(Woodrow Willson School of Public & International Affairs)’ 건물.
프린스턴 대학교 '우드로 윌슨 스쿨(Woodrow Willson School of Public & International Affairs)’ 건물.

“프린스턴과 다른 아이비리그대학의 차이점”

프린스턴대학교가 하버드, 예일, 코넬, 다트머스 같은 다른 7개 아이비리그 대학들과 다른 특징이 있다면, 그건 27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프린스턴에는 의과대학원, 경영대학원, 법과대학원 등의 전문대학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의 도움말 들어보시죠.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프린스턴대학교 행정부와 교수진이 지난 수십 년간 석학들의 지혜를 모아 고민하면서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은 대학은 2가지에 초점을 맞출 때, 대학의 사명을 다하고, 바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학부 교육의 수준이 높아야 하고, 둘째, 일반대학원에서는 순수한 학문연구가 부단히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린스턴은 이 두 분야에서 뛰어나기 때문에 굳이 전문인 양성을 위한 전문대학원을 두지 않아도 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가장 저명한 학과로는 공학, 경제학, 역사학, 정치학 등이 있고요. 특히 3, 4학년생들과 석, 박사 과정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우드로 윌슨 스쿨(Woodrow Willson School of Public & International Affairs)’은 정치가나 외교관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는 그야말로 꿈의 학교인데요. 공공정책, 행정학, 국제관계학, 정치학 등과 관련된 다양한 학문을 교육, 연구하면서 하버드 공공정책전문대학원인 '케네디스쿨(Kennedy School)과 쌍벽을 이룬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학부에서는 아주 소수의 인원으로 제한하고 있어 들어가려면 아주 높은 경쟁을 거쳐야 합니다.

네, 지성의 산실 미국 대학을 찾아서, 시간이 다 됐는데요. 다음 시간에 프린스턴대학교에 대한 재밌고 유익한 이야기 좀 더 들려드리기로 하겠고요.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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