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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사진 예술의 인식을 바꾼 작가, 에드워드 웨스턴


에드워드 웨스턴. (제공: edward-weston.com)
에드워드 웨스턴. (제공: edward-weston.com)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사진 예술의 인식을 바꾼 작가, 에드워드 웨스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인물 아메리카] 사진 예술의 인식을 바꾼 작가, 에드워드 웨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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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웨스턴은 1930년대 미국의 뛰어난 사진작가이면서 일반인들의 사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한 공로자였습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자적인 경지에 도달했다는 평을 받는 그의 작품들은 이른바 ‘즉물사진(straight photography)’으로 분류됩니다. 즉 피사체의 모습을 조작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사진을 말합니다.

그 당시 사진작가들은 소프트(soft) 사진, 즉 부드러운 사진을 주로 만들었습니다. 선을 부드럽게 해 사실적이기보다는 예뻐 보이게 하는 사진이었습니다. 에드워드 웨스턴은 그런 추세에서 벗어나 단순하고 사실적인 자신의 특성을 개발한 것입니다.

1886년 미국 중서부 일리노이주 하이랜드파크에서 태어난 웨스턴은 17살 때 아버지가 코닥 카메라를 사다 준 것이 계기가 돼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나, 얼마 되지 않아 ‘시카고미술대학(School of Art Institute of Chicago)’에 작품을 전시할 정도였습니다. 잠시 ‘일리노이사진대학(Illinois College of Photography)’에서 공부하기도 했지만 웨스턴은 캘리포니아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글렌데일에 사진관을 내고 사람들의 초상화를 주로 찍어주면서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그는 1909년 플로라 챈들러(Flora Chandler)와 결혼해 4명의 아들을 두었습니다. 웨스턴은 캘리포니아에서 유명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예술 세계를 넓혀갔습니다. 동부인 뉴욕에도 가서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릿즈(Alfred Stieglitz), 화가인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등을 만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웨스턴은 특히 오키프로부터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에드워드 웨스턴이 찍은 티나 모다티(Tina Modotti) 사진.
에드워드 웨스턴이 찍은 티나 모다티(Tina Modotti) 사진.

​1923년 갑자기 초상화 사진관을 그만둔 웨스턴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멕시코로 간다”는 글을 남기고 캘리포니아를 떠났습니다. 로스엔젤레스 사진작가 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다 사귄 티나 모다티(Tina Modotti)라는 여성과 함께였습니다. 두 사람은 멕시코에서 약 3년간 살면서 여러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예술가, 작가들과 어울렸습니다. 웨스턴은 모다티에게 사진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모다티도 저명한 사진작가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파시스트 정치 운동에 빠진 모다티는 끝내 의문에 휩싸인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

멕시코에 있는 동안 에드워드 웨스턴의 작품에서는 사실적인 표현이 더 예리해졌습니다. 인물이나 물건, 건물 등의 사진을 선명하고 주제가 뚜렷한 작품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또 민속문화라 불리는 전통적인 것들도 사진에 담았습니다. 당시에는 많은 예술가가 민속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박물관에서는 그런 유형의 전시회가 자주 열렸습니다.

1926년 다시 캘리포니아로 영구 귀국한 웨스턴은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완숙한 사진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주요 소재는 바닷가의 조개와 바위, 해안선, 고추 등 채소, 그리고 여인의 나신 등이었습니다. 웨스턴은 이런 주제들을 통해 선이라든지 모양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을 추구했습니다.

1930년대 중반이 되자 웨스턴의 인생에는 또 한 번의 변화가 왔습니다. 플로라 챈들러와의 결혼 생활은 끝나고 채리스 윌슨(Charis Wilson)과 재혼한 것입니다. 웨스턴은 캘리포니아의 카멜(Carmel)로 자리를 옮겨 해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두 번째 부인 채리스는 웨스턴이 가장 좋아하는 누드모델이 돼주었습니다.

웨스턴은 1937년 ‘구겐하임 펠로우쉽(Guggenheim Fellowship)’ 수상이라는 생애 최고의 영예를 안게 됐습니다. 미국과 남북 아메리카의 뛰어난 미술가들에게 주어지는 이 상이 사진작가에게 주어진 건 처음이었습니다. 웨스턴이 이 상을 받았다는 것은 사진작가들도 진정한 예술가로 인정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에드워드 웨스턴은 1930년대까지 계속 사진을 찍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늘 쪼들렸습니다. 웨스턴은 아들이 카멜에 지어 준 조그마한 집에서 살았고, 1945년에는 두 번째 부인 채리스가 집을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 웨스턴은 파킨슨병으로 사진 일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들의 보살핌을 받던 웨스턴은 10년 후인 1958년 숨을 거두었습니다.

사진이란 어떤 정보를 기록하는 것 이상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던 시대에 에드워드 웨스턴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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