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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라키 아츠시 변호사] "재일 한인 북송사업 피해 재판, 내년 초 일본서 열릴 가능성 커"


와세다대학 공익 법률사무소 소속 시라키 아츠시 변호사가 VOA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와세다대학 공익 법률사무소 소속 시라키 아츠시 변호사가 VOA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재일 한인 북송사업 피해 관련 재판이 일본 법원에서 처음으로 열릴 가능성이 커졌다고 담당 변호사가 ‘VOA’에 밝혔습니다. 도쿄지방재판소와 변호인단이 피해자 5명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북한에 보낼 공시송달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확인한 겁니다. 김영권 기자가 도쿄에서 이 사건을 맡은 와세다대학 공익 법률사무소 소속 시라키 아츠시 변호사를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재일 북송사업 피해자 5명의 소송을 아무 보수없이 자원해서 돕고 계십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시라키 변호사)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휴먼 라이츠 워치의 일본사무소 대표인 도이 가나에 변호사 때문입니다. 도이 변호사는 과거 법률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인데, 제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는 과거 일본인 납치 문제밖에 몰랐습니다. 그런데 도이 대표를 통해 북한의 참혹한 인권 실상을 알게 됐습니다. 얘기를 들으며 옛 독일 나치 정권이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떠올랐습니다. 그와 비슷한 곳에 일본 정부까지 가담해 재일 한인들의 북송을 도왔다는 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자) 그 때가 언제였나요?

시라키 변호사) 2014년 가을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소송을 제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상대인 북한 정부에 대응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생각났습니다. 이 단체는 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해 사실이 인정되면 이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그래서 (피해자 10명과 옛 조총련 간부 등 11명의 이름으로) 인권구제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기자)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시라키 변호사) 연합회가 2015년 1월에 구체적인 심의에 착수했습니다. 이 사안이 지독한 인권 침해란 인식을 한 것이죠. 하지만 이 문제가 아주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결과를 발표했을 때 비판에 대응할 수 있는 치밀한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해 철저한 조사를 한 뒤에 결과를 발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그래서 검토와 조사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자) 그런데 3년 반이 지난 뒤에야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시라키 변호사) 실질적인 해결을 위해서 일본사회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일본인이 이 사안에 대해 알고 있다는 기초적인 조건이 마련돼야 추동력이 생길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방법을 고민하다가 손해배상 소송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일본 국회의원들조차 대부분 북한의 인권 문제 하면 납치 문제밖에 모르는 게 일반적입니다. 우선 계몽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 거죠.

기자) 미국에서 북한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을 통해서 영감을 얻으셨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시라키 변호사) 자료를 찾다가 인터넷을 통해 미국 ‘워싱턴 포스트’ 신문이 보도한 김동식 목사 소송을 알게 됐습니다. 북한에 납치됐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김동식 목사 가족이 미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은 북한 정부가 김 목사 유족에게 3억 3천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아 이런 방법을 동원하면 많은 사람이 북송사업 피해자 문제를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기자) 그래서 지난 8월 에이코 가와사키 씨 등 5명의 이름으로 도쿄지방재판소에 5억엔, 4백 20만 달러(당시 환율)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하셨습니다.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시라키 변호사) 소송을 제기한 뒤 진전이 없다가 지난달에 재판소의 연락으로 변호인단과 협의가 있었습니다. 재판소도 이 사안이 중대하다고 인식하고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변호인단과 협의하길 원했던 겁니다. 왜냐하면 일본에서 민사소송은 국가를 상대로 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일본과 공식 수교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법률상 국가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겁니다. 따라서 북한을 하나의 법인처럼 상대해 소장을 송달할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이런 전례가 일본에서 거의 없기때문에 방식을 어떻게 할지 협의하는 상황입니다.

기자) 구체적으로 어떤 협의를 하는 건가요?

시라키 변호사) 송달 방식, 피고 이름, 주소지 등이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피고의 주소를 모를 경우 ‘공시송달’을 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재판소 게시판을 통해 공개적으로 소장이 접수됐다고 알리고 외국의 경우 6주가 지나면 송달됐다고 간주하는 겁니다. (민사소송법 110조와 112조에 근거해서) 그래서 내년 1월이나 2월이면 재판소가 게시판을 통해 북한 정부 대표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언제 몇 시까지 출두하라는 호출장이 게시가 될 겁니다. 우리는 북한 대표단이 재판에 참석해 사실관계를 서로 입증하며 다투길 바라고 있습니다.

기자) 과거 미국에서 제기된 소송 전례를 보면 북한 정부가 재판에 참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데요. 그럴 경우 어떻게 됩니까?

시라키 변호사) 저희도 북한 정부가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럴 경우 궐석재판이 열리고 원고인 저희가 북송사업과 인권 침해에 대한 사실관계를 모두 입증해야 합니다. 자료 수집과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질 겁니다. 그리고 피고가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고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재판부가 인정하게 됩니다.

기자) 손해배상 액수를 5억엔으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시라키 변호사) 변호사들 간에 액수에 관해 의논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피해자였다면 10억엔을 청구해도 모자랐을 겁니다. 왜냐하면 피해자들은 인생 자체를 북한 정부에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징적인 차원에서 세상이 주목할 수 있도록 1인당 1억 엔으로 해서 모두 5억 엔을 청구한 겁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것은 세계 보편적 원칙입니다. 우리는 당연한 일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승소하면 북한 정권에 인권 침해를 당한 수많은 피해자가 이 대열에 동참할 겁니다.

기자)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는 이 문제를 납치로 분류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언론은 북송사업 피해자들이 북한에 자진해서 갔기 때문에 납치와 직접 결부시키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시라키 변호사) 일본 형법 226조에 소재국 외 이송 목적으로 약취 및 유괴란 조항이 있습니다. 약취(납치)는 강제력을 동원해서 데려가는 것이고 유괴는 속여서 데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원고 5명은 각각 20세, 17세, 14세, 11세, 3살이란 어린 나이에 속아서 사실상 유괴돼 북한으로 갔던 겁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 북송사업을 지원했기 때문에 가해자란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따라서 일본 정부도 사죄하고 청산해야 할 게 있습니다. 그러나 우선은 북한 정권이 귀국 사업을 계획하고 주도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그들의 인권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정부의 변화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일본 정부도 이 문제를 저도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일본인 납치와 동등하게 취급해 북한 정부에 해결을 촉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자) 끝으로 이 소송을 통해 북한 정부에 어떤 요구를 하고 싶으십니까?

시라키 변호사) 북한 정부는 자신들이 얼마나 심각한 인권 침해를 저지르고 있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너무 소홀히 여기고 처참하게 망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송을 단지 인권운동 차원에서 진행하는 게 아닙니다. 반드시 승소해서 북한 정권의 재산을 압류하고 인생을 빼앗긴 분들의 권리 회복을 위해 싸울 겁니다. 특히 일본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연대해 대응할 겁니다. 북한 정부가 이에 대해 반론이 있다면 정정당당하게 일본 법원에 나와서 반론을 제기하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재일 한인 북송사업 피해자 5명이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에 제기한 소송과 관련해 시라키 아츠시 담당 선임변호사로부터 자세한 진행 과정과 경위를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김영권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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