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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현대 환경운동의 선구자, 레이첼 카슨


레이첼 카슨.
레이첼 카슨.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들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현대 환경운동의 선구자, 레이첼 카슨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인물 아메리카 오디오] 현대 환경운동의 선구자, 레이첼 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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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카슨 여사는 DDT를 비롯한 살충제의 남용에 반대하며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자연보호 운동에 불을 지핀 인물입니다. ‘디클로로-다이페닐-트라이클로로 에테인’(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의 약자 DDT는 스위스의 화학자 파울 뮐러가 발명한 합성 살충제로 말라리아 퇴치와 농업 생산을 늘리는 데 큰 효과를 냈습니다. 뮐러는 ‘신이 내린 축복의 물질’이라고까지 찬양을 받은 이 제품 개발로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해양생물학자인 레이첼 카슨은 DDT가 심각한 생태계 파괴, 암 발생 등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고 강력한 반대 운동을 펼쳐 결국 미국 정부의 DDT 사용금지 조치를 끌어내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레이첼 카슨은 1907년 5월 27일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레이첼의 어릴 적 꿈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글 쓰는 재주가 뛰어나 불과 10살 때 쓴 소설이 어린이 잡지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대학에서도 영문학을 전공하던 레이첼은 생물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결국 동물학으로 전공을 바꾸었습니다.

레이첼 칼슨(오른쪽)이 지난 1952년 야생동물가 아티스트인 밥 하인즈와 함께 해양 생물학 조사를 하고 있다.
레이첼 칼슨(오른쪽)이 지난 1952년 야생동물가 아티스트인 밥 하인즈와 함께 해양 생물학 조사를 하고 있다.

레이첼은 여름철이면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우즈홀 해양생물연구소(Woods Hole Marine Biological Laboratory)에서 해양과 그 생태계에 대해 공부를 했습니다. 그곳에서의 공부와 경험으로 1930년대 중반에는 워싱턴에 있는 연방 정부의 수자원 연구소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레이첼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월간지 ‘애틀랜틱(Atlantic Monthly)’에 바다의 여러 가지 생물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이때 어느 출판사에서 일반인들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써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래서 레이첼은 1941년 첫 저서 ‘해풍 아래서 (Under the Sea Wind)’를 펴냈습니다.

1951년에는 두 번째 저서로 ‘바다의 가장자리 (The Sea Around Us)’가 출간됐습니다. 이 책은 1년 이상이나 베스트셀러의 위치를 차지했고 전국 최우수 도서상도 받았습니다. 레이첼은 이 책으로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됐습니다. 책도 많이 팔리고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자 레이첼은 1952년 정부 일을 그만두고 저술에 전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동북부 메인주 해안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1962년 출판된 레이첼의 저서 ‘침묵의 봄 (Silent Spring)’
1962년 출판된 레이첼의 저서 ‘침묵의 봄 (Silent Spring)’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책으로 평가되는 레이첼의 저서 ‘침묵의 봄 (Silent Spring)’은 1962년에 나왔습니다. 레이첼은 한 친구가 소유하고 있는 조류 보호구역 해안지대에서 바다가 오염되고 많은 새와 물고기들이 죽는 현상을 보게 됐습니다. 비행기에서 뿌리는 DDT 때문이었습니다.

레이첼은 문제성을 의식하고 여러 잡지사에 이에 관한 글을 싣도록 제의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잡지사도 그 같은 논란거리를 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레이첼은 자신이 직접 나서 4년 동안 세계 각지로부터 DDT로 인한 피해 발생 사례들을 수집하고 이를 연구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쓴 저서 ‘침묵의 봄’에서 레이첼은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으로 파괴되는 생태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폭로했습니다. 이 책은 아름다운 마을이 점차로 생명을 잃어가다가 봄의 소리, 새들의 소리가 사라진 죽음의 공간으로 바뀐다는 이야기로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책 제목을 ‘침묵의 봄’이라 붙였습니다.

‘침묵의 봄’은 DDT와 같은 살충제와 농약이 새, 물고기, 야생동물, 인간에게 미치는 파괴적 결과를 낱낱이 파헤쳤습니다. 무서운 것은 생물의 몸에 들어간 DDT는 체내에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새끼들에게도 그대로 이전이 되고 먹이 사슬을 따라 다른 동물에게도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살충제 기업들은 긴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이 비과학적이고 감정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시는 언론까지도 레이첼을 비난했습니다. 일부에서는 레이첼에게 공산주의자라는 혐의까지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침묵의 봄’이 발행 첫해 60만 부나 팔릴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사람들은 합성살충제의 폐해에 대해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됐습니다. 자연히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레이첼은 각종 모임이나 방송 등에 나가 살충제의 해독과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보다 과학적이고 보다 정확한 방법을 개발해 어떤 한가지가 다른 한가지를 멸종시키는 일을 피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책이 나온 1962년에는 미국 여러 주에서 살충제를 제한하자는 법안이 40여 건이나 상정됐습니다. 이 무렵 암 연구소는 DDT가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증거를 발표했습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유해 살충제에 대한 조사를 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1963년 케네디 행정부에는 환경 자문위원회가 구성되고 여러 주는 DDT의 사용을 금지하기 시작했습니다.

1969년 미국 의회는 국가환경정책법안을 통과시키고 이 법에 따라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1972년 드디어 DDT 사용금지 조치를 내리게 됩니다. 사실 EPA라는 정부 기구가 창설된 것도 레이첼 카슨이 주도했던 풀뿌리 환경운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레이첼 카슨은 그같은 결정이 내려진 걸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침묵의 봄’이 나온 지 2년 후인 1964년 5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사인은 유방암이었습니다.

레이첼은 일찍 떠났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가 출범한 환경 운동은 그 후 미국은 물론 세계적인 환경운동에 불을 지피게 됐습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레이첼 카슨을 20세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100대 인물의 한 명으로 꼽았고, 지미 카터 대통령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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