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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지금] 미 전문가 "북한 경제 '달러화' 심화"


지난 2015년 10월 축구경기가 열린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 주민들이 원화 혹은 달러화로 막대풍선을 구입하고 있다.

북한 내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평양은 지금’ 시간입니다. 북한경제의 ‘달러화(Dollarization)’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물건을 사고 파는 등 각종 거래에 북한 돈인 원화 대신 미국 달러화를 사용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한국계 미국인 신은미 씨가 평양 시내 상점에서 장을 보는 사진을 자신의 사회연결망 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사진에서는 식료품 매대에 진열된 참기름 병 밑에 10,000 원이라고 적힌 가격표를 볼 수 있습니다.

북한 노동자의 월급이 3천원에서 30만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이는 상당히 비싼 겁니다. 만일 한 달에 1만원을 받는다고 하면 그 돈으로 참기름 한 병을 사면 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북한경제의 이중적 구조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라고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한국 현대사연구소 정창현 소장은 지적합니다.

[녹취: 정창현] "북한의 대표적인 슈퍼마켓에서 참기름이 국내산은 1만원, 수입산은 2-3만원에 팔리고 있는데 가격 자체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비싸지만 외화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무리는 없는 것 같습니다.”

북한 일반 노동자가 참기름을 살 때는 비싸다고 할 수 있지만 달러가 많은 돈주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북한의 시장 환율로 1 달러는 8천원 정도이니까, 참기름 가격이 1, 2 달러면 그리 비싼 편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난해 5월 북한 평양의 425문화회관 주변에서 한 남성이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북한 평양의 425문화회관 주변에서 한 남성이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북한에서 달러가 널리 쓰인다는 것은 손전화 즉, 휴대전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손전화를 구입하려면 월 3천원가량의 기본요금 외에 100-400 달러 상당의 단말기 구입비를 내야 합니다. 월급 1만원을 받는 노동자에게는 엄두를 낼 수 없는 가격입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손전화 가입자 수는 이미 3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는 북한에서 달러를 가진 부유층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라고 함경북도 청진에 살다가 지난 2003년 한국으로 망명한 탈북자 최수경 씨는 말했습니다.

[녹취: 최수경] "휴대전화 비싼 것은 300 달러까지 한다고 하는데, 북한사회도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져서, 우체국에서 (손전화) 사용료를 받을 때도 비싼 편인데 그럼에도 엄청난 사용료를 매달 내는 것은 그만큼 부유층이 많아졌다는 얘기죠.”

북한경제 전문가인 미 남부 조지아주립대학의 그레이스 오 교수는 북한이 ‘부분적 달러화 (Partial Dollarization)’국가라고 말했습니다. 아프리카나 중남미에서는 달러화를 자국 화폐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북한은 원화와 달러화를 병행 사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녹취: 그레이스 오 교수] "North Korea will be partial dollarization because …”

지난 2011년 9월 북한 라선경제특구지역의 장마당.
지난 2011년 9월 북한 라선경제특구지역의 장마당.

북한 주민들의 달러화 사용은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 국가가 주는 배급이 중단되고 국영상점이 문을 닫자 주민들은 너도나도 장마당으로 나와 장사를 했는데, 이 와중에서 달러와 중국 돈 위안화가 쓰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특히 평양과 신의주, 혜산, 무산, 청진, 만포 등 북-중 접경 도시를 통해 달러화와 중국 인민폐가 널리 쓰였다고 탈북자들은 말합니다.

경제 전문가인 그레이스 오 교수는 북한 주민들이 자국 돈인 원화 대신 달러와 위안화를 사용하는 이유로 인플레 즉, 물가오름세와 돈 가치 하락을 꼽았습니다. 물건을 사고 팔고 또 저축을 하려면 돈의 가치가 보장돼야 하는데 북한 돈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녹취: 그레이스 오 교수] "Depreciation or inflation of domestic currency…"

탈북자들은 특히 2009년 11월 화폐개혁을 큰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당시 북한 당국은 구화폐와 신화폐를 100대1로 강제 교환했는데 이 과정에서 장마당에서 돈을 번 상인들이 큰 손해를 봤다는 겁니다. 다시 탈북자 최수경 씨입니다.

[녹취: 최수경] “2009년 11월에 화폐개혁을 하는데, 모든 사람에게 있는 돈을 다 바꿔준 것이 아니라, 1인당 10만원 이런 식으로 제한해서 바꿔줬는데, 100만원 가진 사람은 90만원이 휴지조각이 된 거죠, 그래서 북한 돈에 대한 불신이 생겨서 달러화나 위안화를 갖게 되는 거죠.”

달러화는 이후 급속도로 북한 원화를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장마당에서 돈을 번 ‘돈주’들은 2000년대부터 아파트를 지어 팔기 시작하면서 거래를 주로 달러화로 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 평양에는 몇 천 달러부터 20만 달러 상당의 고급 아파트까지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문가들은 달러화 사용이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외화를 사용함으로써 물가오름세를 억제하는 것은 물론 무역 거래와 시장화를 촉진시킨다고 그레이스 오 교수는 말했습니다.

[녹취: 그레이스 오 교수] "That can actually start market Economy…"

지난해 5월 평양 인민문화궁전 앞에 고위직 관리들을 위한 독일산 벤츠 승용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다.
지난해 5월 평양 인민문화궁전 앞에 고위직 관리들을 위한 독일산 벤츠 승용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다.

반면 북한사회가 ‘달러를 가진 사람’과 ‘달러가 없는 사람’으로 이원화 돼 빈부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 당국은 외화 사용을 금기시해 단속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은 달러 사용에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정창현 소장은 말했습니다.

[녹취: 정창현] “일정한 규모의 돈을 쓰게 하는데 있어서 제한이나 조사 같은 것이 과거에 비해 한결 자유스럽습니다. 다만 바로 달러를 쓰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달러를 국가재정으로 수용하는데 시장 환율로 바꿔서 장롱 속의 달러를 흡수하려는 거죠.”

북한에 얼마나 많은 외화가 있는지 정확히 파악된 것은 없습니다. 한국의 삼성경제연구소는 몇 년 전 북한에서 20억 달러 정도의 외화가 유통되고 있다고 추정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가운데 절반 가량이 달러화이며 40%는 위안화, 나머지 10%가 유로화라고 추산했습니다. 북한의 국내총생산 (GDP)이 200억 달러 수준임을 감안할 때 이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석탄을 비롯한 광물과 무기 수출, 관광, 개성공단, 밀무역, 해외 송출 노동자와 탈북자들의 송금 등 4-5개 경로로 외화를 조달해 왔습니다.

북한의 외화 사정은 한층 빡빡해질 전망입니다. 중국은 올 2월 북한의 최대 돈줄인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또 한국은 개성공단을 폐쇄했고, 북한의 무기 수출은 사실상 중단됐습니다.

이에 따라 10억 달러가량의 외화 수입이 감소돼 북한은 심각한 외화난을 겪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습니다.

VOA 뉴스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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