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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을 위한 희망의 목소리- 마이라 다가이포 (4)


지난달 2일 워싱턴 DC 시내에서 미얀마계 이민사회 예배에 참석한 마이라 다이가포.

고난과 역경을 뒤로하고 이제는 미국인의 한 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는 난민들의 이야기, ‘나는 미국인입니다’. 안녕하세요? 김현숙입니다. 미얀마의 소수 민족 가운데 하나인 카렌족 출신 마이라 다가이포 씨는 지난 2004년, 난민 신분으로 미국에 정착했습니다. 오늘 그 마지막 이야기 함께 합니다.

마이라 다가이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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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정권의 탄압으로 집을 잃고 떠도는 내부 난민으로 태어난 마이라 씨는 어릴 때 부모님을 잃고, 이 마을 저 마을을 옮겨 다니다 태국 난민촌을 거쳐 미국에 오게 됐는데요. 20대 초반, 미국 최대 도시 뉴욕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마이라 씨는 미국 생활 10년 만에, 미얀마 난민 문제를 알리는 인권 운동가로 이름을 알리게 됐습니다.

[녹취: 마이라 다가이포] “미국 연방 상원이나 하원, 또 국무부에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바쁜지 몰라요. 그렇게 바쁜 사람들이 미얀마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모으고, 정리해, 보고 하는 것이 저의 주된 임무입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미얀마의 인권 문제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치인들, 지역 지도자들을 끊임없이 찾아가 만나죠. 동시에 미얀마 이민사회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고 있기도 해요. 예를 들어, 미국 정치인들이 미얀마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도록 하기 위해 미얀마 이민자들이 어떻게 지역 의원들에게 압력을 넣을 수 있는지, 예를 들어 지역 의원의 연락처나 접촉 방법 등을 가르쳐 주는 일을 하는 거죠.”

‘미국 버마 운동(US Campaign for Burma)’ 라고 하는 인권단체에서 정책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마이라 씨는 이렇게 정치인과 미얀마인 사회와 함께 일하는 건 물론이고, 여러 인권 행사 강연자로, 또 미얀마 카렌족 출신 청소년들을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죠. 그리고 마이라 씨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또 한 군데 있었습니다.

[현장음: 미얀마인 예배]

워싱턴 DC의 한 유서 깊은 교회, 미국인 예배가 끝난 후엔 미얀마인들을 위한 예배가 열리고 있습니다. 마이라 씨는 워싱턴에서 정착하면서부터 이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마이라 씨가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녹취: 마이라 다가이포] “미얀마에 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부모님과 형제자매 없이 홀로 자라야 했다는 점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이 떠나지 않았고요. 또 인생의 빈자리가 항상 있는 느낌이었었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과 또 나의 앞길을 안내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슬펐습니다. 그러다가 태국의 난민촌에 있을 때 기독교인 가족과 함께 생활하게 됐는데요. 제겐 너무나 큰 축복이었어요. 교회에 가는 건 물론이고, 요리하는 법, 청소하는 법 등을 배우면서 10대 후반에 가족의 사랑을 느꼈고 또 나를 안내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지금에 내가 있게 한 건 바로 난민촌에서 만난 기독교인 가족과 함께한 시간입니다.”

이런 이유에서일까요? 마이라 씨는 교회 활동에 무척 열심이었는데요. 미얀마 난민 출신이자, 교회 담임 목사 부인인 말리 투 씨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녹취: 말릭 투] “마이라 씨는 아주 신앙심이 깊습니다. 또 미국 내 미얀마인 지역사회와 미얀마인 교회의 활동을 돕는데 열심이에요. 우리 교회에서 미얀마 출신 난민들을 위한 정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마이라 씨는 이 프로그램에도 동참하고 있답니다. 미얀마인들을 위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죠.”

미얀마인 교회에서 만난 또 다른 난민 쏘 와 씨는 마이라 씨와 같은 카렌족 출신으로 말레이시아를 거쳐 2년 전 미국에 입국했다고 했는데요. 마이라 씨에게 개인적으로 고마운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녹취: 쏘 와] “마이라 씨는 주위에 아는 사람이 많다 보니까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좋은 사람을 연결해줬어요. 또 우리 딸이 지금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데 피아노를 무척 갖고 싶어 했거든요? 그런데 마이라 씨가 본인이 쓰던 피아노를 저희에게 선물로 줬어요. 좀 낡긴 했지만 사용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피아노를 말이죠. 덕분에 우리 딸이 피아노 연습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미혼으로, 가족이 없이 홀로 살아가는 마이라 씨는 이렇게 미국에서 만난 미얀마 고향 사람들을 가족처럼 여기며 돕고 있었는데요. 꼭 이루고픈 꿈이 또 있다고 했습니다.

[녹취: 마이라 다가이포] “저의 꿈은 미얀마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는 겁니다. 미얀마에서 현재 민주화로의 변화가 일어나곤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표면적인 변화만 보이고 있죠. 국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서민들의 삶에 변화가 있어야 해요. 캄보디아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표면적인 문제만 해결됐을 뿐 서민들은 아직 고생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저의 또 다른 꿈은 저 자신이 성장하는 건데요. 국제 관계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싶어요. 전 미얀마 난민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더 역량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미얀마를 위해 계속 일해야 하는데 머물러 있을 수 없잖아요? 미얀마의 변화를 그저 마음으로만 바라고 있는 게 아니라 제가 있는 이곳 미국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변화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10여 년 전, 영어 한마디 못해 쩔쩔맸던 마이라 씨는 이제 석사과정을 공부할 만큼 실력도 많이 쌓았는데요. 미국에서, 이렇게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미얀마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그 고통을 겪어 봤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녹취: 마이라 다가이포] “우리는 고통 받기 위해 이 땅에 온 존재가 아니에요. 단지 힘이 있는 사람들이 잘못된 방법으로 약자들을 이용하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 이들이 생기는 거죠. 하지만 절대 희망을 잃으면 안 됩니다. 희망이 있으면 미래로 향하는 길을 잃지 않거든요. 또 희망을 가지기 위해선 책임감이 따릅니다. 전 집을 잃고 떠돌면서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어요. 태국 난민촌에서 다니던 학교 공부는 아무 데서도 인정받을 수 없었어요. 졸업장도 안 줬죠. 하지만 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갔습니다. 언젠가 지금의 이 고통을 알리는 시간이 올 것임을 믿고 준비했던 거에요.”

마이라 씨는 그리고 그 고통을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나라에 오게 됐다며, 바로 미국에 오는 행운을 얻었다고 하는데요. 무슨 말을 하든, 아무도 제약하지 않고 또 자신이 하는 말에 전 세계가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이라 씨는 고통 받는 북한 주민들에게도 희망을 전했습니다.

[녹취: 마이라 다가이포] “여러분은 잊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저는 미얀마 문제 전문가이지만 아프리카 수단이나 다른 나라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이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젠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일 겁니다. 인권문제는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이니까요. 여러분도 어디에 있든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목소리를 내세요. 그리고 지금도 외부에서 여러분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네, 미국에 정착한 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오늘은 미얀마 출신 인권운동가 마이라 다가이포 씨의 네 번째 이야기와 함께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또 다른 사연을 가지고 미국에 정착한 난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는데요.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김현숙이었고요.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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