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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KAL기 납치 피해자 가족 황인철 씨 “우리 아버지를 돌려주세요”


지난 2014년 2월 'KAL기 납치피해자 가족회' 황인철 대표가 서울 정부청사에서 통일부에 방북신청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1969년 KAL기에 탑승했던 승무원과 승객 50명 중 39명은 피랍 이듬해인 1970년 2월 14일 귀환했지만 11명은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못했다.

유엔은 강제실종을 중대한 인권 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강제실종이란 국가기관, 또는 국가의 역할을 자임하는 단체에 의해 체포, 구금, 납치된 후 실종되는 것을 말하는데요, 특히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매우 심각한 인권 유린으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매주 깊이 있는 보도로 한반도 관련 현안들을 살펴 보는 ‘심층취재,’ 오늘은 북한에 납치된 아버지를 47년째 기다리고 있는 강제실종 피해자 가족의 아픔을 전해 드립니다. 이연철 기자가 보도합니다.

[녹취: 노래 Bring Him Home Santa 일부] “Dear Santa, I need to change my Christmas list. There’s one big thing I missed……”

미국에서 지난 2007년 발표된 ‘산타님, 아버지를 집으로 보내주세요' 란 제목의 노래입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형과 축구공을 받고 싶긴 하지만, 그 보다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크리스마스 때 집으로 돌아오기를 더 바란다는 내용입니다.

이 어린이는 결국 원하던 대로 크리스마스 때 아버지를 만났을까요? 아마도 그 해 크리스마스에 못 만났다면, 그 다음해에는 반드시 만났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아버지를 집으로 보내주세요’ 라는 운동을 펼치고 있는 황인철 씨는 그렇게 운이 좋은 경우가 아닙니다.

[녹취: 황인철] “저희 어머니한테 아버지 어디 가셨냐고 물어보면, 미국 출장 중으로 해 가지고 미국에 계시고, 이제 크리스마스 때 돌아오신다 이런 말씀을 해 주셨죠.”

하지만 이후 수 십 번의 크리스마스가 지나갔지만 황 씨는 아직도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미국에 출장을 간 것이 아니고 북한에 납치됐기 때문입니다.

황 씨의 아버지 황원 씨는 32살이던 1969년 12월11일에 출장길에 나섰다가 북한으로 납치됐습니다. 타고 있던 비행기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나포돼 북한으로 끌려갔기 때문입니다.

한국 정부의 강력한 항의와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한 북한은 1970년 2월에 39명을 송환했지만, 황원 씨를 비롯한 11명은 제외됐고, 결국 이들 11명은 47년이 지난 지금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송환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황원 씨는 북한 당국자들에게 집으로 돌려 보내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담은 노래를 부르다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습니다.

[녹취: 노래 가고파 일부]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바다……”

황 씨는 초등학교 3학년이 돼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됐고, 그 이후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밖에 나가서 놀거나 자전거를 타는 일 같은 사소한 일들도 더 이상 평범한 일상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두려운 마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납북과 월북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 얘기를 꺼내기조차 힘들었고, 그런 사실이 알려진 뒤에는 이런 저런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도 시달려야 했습니다.

[녹취: 황인철] “그 때 당시에 신원조회라는 말만 들으면 지레짐작을 해서 제가 뒤로 빠지게 되고, 그나마 더 상처를 받을까 봐 접근을 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됐죠.”

황 씨는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패배감과 절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결혼한 지 3년 만에, 31살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황인철 씨 어머니도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웠고, 모든 일에 예민해졌습니다.

[녹취: 황인철] “출장을 간다고 집을 나간 아버지가 북으로 납치됨으로 해서 모든 평범한 삶이 항상 본인에게는 불행하게 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공포감 속에 많이 사로잡혀 계셨거든요.”

올해 78살인 황 씨의 어머니는 제대로 걷기도 힘들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고, 얼마 전부터는 치매에도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 만의 세상에 갇힌 어머니는 예전에는 잘 하지 않던 아버지 얘기를 수시로 꺼내 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녹취: 뉴스 보도] “지난 69년 강릉에서 서울로 오던 KAL 국내선 여객기가 북으로 강제 피랍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23살의 스튜어디스가 오늘 평양에서 남쪽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지난 2001년 2월 26일 평양에서 3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때 아버지와 함께 납치됐던 여객기 승무원 성경희 씨가 어머니를 만나는 모습을 본 황인철 씨는 아버지를 찾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성 씨를 통해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두 살 때 아버지와 헤어진 황 씨는 이 때 공교롭게도 2살이던 첫째 딸이 젖병을 물고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당시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녹취: 황인철] “두 살짜리 아들을 보지 못하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떨까? 내가 버린 것도 아니고 끌려가서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데 라는 생각 자체가 너무나 고통스러웠겠죠. 제가 볼 때도.”

황인철 씨는 문제가 금새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납치 사건은 은밀하게 이뤄져 증거가 없지만, 아버지 사건은 송환자들의 증언이 있는 명백한 사건이라고 믿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사건 당시 자료를 찾아 다니고 기자회견도 하고, 사진전시회를 벌이고, 정부 당국자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아버지의 생사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무성의한 답장을 보내왔고, 한국 정부는 아버지 사건을 과거의 사건으로 치부하는 등 소극적으로 대처했습니다.

2010년에는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에 한국 납북자 중 처음으로 아버지 사건을 접수했지만, 북한으로부터 강제실종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짧은 대답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황인철 씨는 아버지 문제 해결을 위해 황금 같은 인생의 시기를 모두 다 보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출판사에서 7년 간 근무하기도 했지만, 아버지를 찾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일용직 노동자로 전전했습니다.

아내와 세 딸을 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어려움도 겪고 있지만, 결코 부끄럽거나 한스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제 와서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녹취: 황인철] “단 한 가지 만이라도 내가 포기할 수 있는 이유를 발견했으면 중간에 제가 (포기를) 했죠. 저도 바보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한 가지도 발견하지 못하니까 하루하루 1년만 하자 1년만 하자 했던 것이 17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된 거죠.”

황 씨는 아버지가 아직 북한에 살아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지난 2013년 2월에 신의주와 단둥을 통해 아버지를 탈북시킬 기회를 갖기도 했지만, 그 때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면서 기회가 무산됐습니다. 또, 지난해 3월 아버지가 평성에 살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녹취: 황인철] “저는 아버지를 유골이 된, 주검이 된 모습으로 만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아들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고요, 항상 건강 유지하시고 조만간에 빠른 시일 안에 뵙기를 간곡히 바라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 유지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아버지.”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 COI는 북한이 1950년 이후 다른 나라 국민들을 조직적으로 납치함으로써 대규모 강제실종 사태를 초래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납치와 강제실종은 한국전쟁과 1959년에 시작된 일본 내 조선인 북송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은 또 1960년대와 80년대 사이에 한국과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수 백 명을 납치했고, 1990년대부터는 중국과 레바논, 말레이시아, 루마니아, 싱가포르, 태국 등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도 납치하는데 관여했다고 COI는 밝혔습니다.

이밖에 북한은 최근 중국에서 탈북자들과 한국 국민들을 납치하기도 했습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는 북한에 의한 강제실종의 피해자가 어린이를 포함해 2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이연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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