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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오늘] 유엔 안보리, 시리아 의장성명 논의...화제의 인물 '아웅산 수치'


세계 각국의 주요 움직임을 알아보는 ‘지구촌 오늘’ 시간입니다. 시리아 대통령이 평화안을 즉각 이행하겠다고 발표한후 민간인들에 대한 보안군의 공격이 더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크메르 루즈 대학살범들에 대한 전범재판이 캄보디아 정부의 협력이 없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 밖의 지구촌 소식, 문철호 기자와 함께 알아 봅니다.

문) 오늘은 시리아 사태를 먼저 알아 보겠습니다. 코피 아난 공동특사의 평화안을 이행하겠다고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이틀 전에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시리아 보안군의 시위대 민간인들에 대한 공격은 더 격화되고 있다는 보도군요.

답) 네, 아사드 대통령이 평화안 이행을 마감일인 10일까지 완료하기로 동의했다고 아난 공동특사가 밝혔죠. 그리고 아사드 대통령은 보안군 병력과 중무기들이 주거지역에서 이미 철수하기 시작했다고 말했었습니다. 하지만 보안군 병력이 5일, 수도 다마스쿠스 교외 도우마 지역과 북부도시 알레포 등에서 민중봉기가 시작된 이래 가장 맹렬히 공격을 퍼붓고 있다고 반정부 진영이 밝혔습니다.

문) 평화안 이행을 확인하기 위한 유엔 감시단 선발대가 시리아에 도착했다는 보도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보안군의 공격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예정대로 감시가 진행될 수 있을까요?

답) 네, 유엔 평화유지군 고위 관계관이 250명의 비무장 유엔 감시단 파견에 관해 아사드 대통령의 동의를 받기 위해 4일 다마스쿠스에 도착했습니다. 코피 아난 특사는 이보다 앞서 시리아 평화안에 관해 유엔 총회에 영상으로 보고하면서 휴전 이행은 4월 12일 마감일까지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아난 특사는 그러면서 반정부 진영에 대한 시리아 정부의 폭력진압을 종식하는 과정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반정부 진영 활동가들은 아사드 대통령이 평화안 이행을 완료하는 마감일까지 정부의 입지를 최대한 확대하기 위해 맹렬한 공격을 펼치는 거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문) 이런 상황에서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의 움직임은 어떤가요?

답) 네,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은 시리아 정부가 평화안을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는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의장성명 채택 문제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소리가 입수한 의장성명 초안은 시리아 정부에 인구 밀집지역에서 중무기 사용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즉각 중단하고, 병력을 철수하라고 요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반정부 진영 당사자들은 48시간 안에 공격을 중단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문)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은 시간을 다투는 문제일텐데요?

답) 그렇습니다. 유엔의 일부 외교관들은 안보리 의장성명이 5일 중에 채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요 지난 번 의장성명 채택에 러시아와 중국이 동의했었지만 이번에는 어떨른지 확실치 않은 상황입니다. 또한 시리아에 유엔 감시단을 파견하는 일은 안보리에서 결의안이 통과돼야 가능한 일입니다.

문) 다음은 캄보디아로 가봅니다. 크메르 루즈 정권때 대학살을 자행한 전범들에 대한 재판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군요?

답) 네, 유엔의 국제전범재판소는 크메르 루즈 정권 고위 지도자들 가운데 한 명에 대한 공판을 끝내고 무기 징역형을 선고한 외에, 나머지 전범에 대한 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캄보디아 정부의 전적인 협력이 없이는 용의자들을 추가로 체포하고 기소하는 일이 불가능한데, 캄보디아 정부는 새로운 재판 진행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문) 캄보디아 정부에 전 크메르 루즈 당원들이 많다는데 그 때문인가요?

답) 그렇습니다. 캄보디아 정부는 크메르 루즈 전범 추가 기소는 캄보디아 사회를 분열시키고 심지어 내전을 유발할 수도 있다며 추가재판 진행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도 대학살을 자행한 폴 포트 정권 이전이지만, 크메르 루즈에 소속돼 활동을 했었는데요, 현 캄보디아 정부에 상당수의 전 크메르 루즈 당원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문) 크메르 루즈 전범재판소의 국제 판사들이 잇달아 사임했는데 후임이 임명됐습니까?

답) 아직 두 명의 판사들이 임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해 10월에 독일의 지그프리드 블룬트 판사가 캄보디아 정치권의 간섭을 이유로 사임한 뒤 스위스의 로랑 카스페르-앙세메 판사가 후임으로 임명됐습니다. 그러나 이 스위스 판사도 캄보디아 판사의 거듭되는 도전 때문에 지난 3월 사임한 채 후임이 채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유엔은 캄보디아 정부의 전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하고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문) 다음은 아프리카 소말리아로 가봅니다. 수도 모가디슈에서 폭탄 테러가 벌어져 고위 인사들이 살해됐죠?

답) 네, 모가디슈의 국립극장에서 4일, 폭탄이 터져 소말리아 올림픽 위원장과 축구협회장 등 10명이 숨졌습니다. 이날 국립극장에서 압디웰라 모하메드 알리 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소말리아 국영 텔레비전 방송 출범 행사가 진행되는 중이었는데 폭탄이 터졌다고 보도들이 전했습니다. 알리 총리는 무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문) 누구의 소행인가요?

답) 소말리아에는 이슬람 극단주의 반군단체, 알 샤바브가 정부에 대항해 내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모가디슈에서 정부군과 아프리카연합 평화유지군의 공세에 밀려 퇴각한 뒤 수도에서 폭탄 공격 등 테러를 벌이고 있습니다. 알 샤바브는 이번 공격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습니다.
모가디슈 국립극장은 1990년대에 소말리아 내전이 시작되면서 폐관됐다가 지난 달 20년 만에 다시 개관됐는데 참변이 벌어졌습니다.

문) 마지막으로 목요일에 보내드리는 화제의 인물입니다. 오늘은 버마 민주화 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에 관해 알아 봅니다. 버마 의회 보궐선거 결과를 보면 수치 여사에 대한 버마 국민들의 지지는 절대적이군요?

답) 그렇습니다. 랑군의 빈민층이 다수인 지역에서 출마한 수치 여사에 대한 지지표가 85%에 달할 정도입니다. 그럴뿐만 아니라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 소속 후보 44명 중 43명이 당선된 것도 수치 여사에 대한 지지가 크게 반영된 것으로 관측됩니다. 수치 여사와 민주주의민족동맹은 지난 1990년 총선에서 495석 중 392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고도 군부가 이를 무효화함으로써 좌절을 겪었죠. 수치 여사와 동료 정치인들은 이번에 극히 제한된 여건이지만 압승을 거두고 의회에 진출해 제도권 안에서 민주주의 개혁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문) 수치 여사가 정치에 들어선게 언제인가요?

답) 수치 여사가 정치에 들어선건 1988년입니다. 버마는 그 당시에도 군사정권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항만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와 항쟁이 일어났습니다. 1988년 8월 8일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군중시위가 벌어지고 유혈진압 닷 새 만에 군부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는데요 버마 국민들은 이를 8888 항쟁이라고 부릅니다. 외국에 있던 수 치 여사는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귀국했다가 시위대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병원 앞에서 민주화를 위한 연설을 하게 됐습니다. 그 뒤 9월 24일, 민주주의 민족동맹 결성에 참여하면서 민주화 운동과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문) 수치 여사는 아주 어렸을 때 개인적으로 커다란 비운을 겪었죠?

답) 네, 수치 여사의 아버지 아웅산은 버마 독립의 영웅으로 추앙되고 있는데요 수치 여사가 두 살 때인 1947년에 암살됐습니다. 수치 여사는 버마 대사인 어머니를 따라 인도 등 외국에서 자라났고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정치학, 경제학,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수치 여사는 뉴욕 유엔 본부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수치 여사는 민주주의민족동맹을 결성한후 약 1년 만인 1989년 7월에 가택연금되면서 고난의 길을 가게 됩니다. 수치 여사는 2010년 11월에 가택연금에서 풀려날 때까지 15년의 대부분의 기간을 교도소 구금과 가택 연금으로 보냈습니다.

문) 수치 여사는 오랫 동안 이산가족으로 살아 왔죠?

답) 네, 그렇습니다. 수치 여사는 1988년에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귀국했다가 1989년에 가택연금을 당한 이래 남편과 두 아들을 만나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남편은 1999년에 암으로 사망했는데요, 그 이전에 남편이 버마를 방문하려 했지만 군사정권이 허락치 않았습니다. 군부는 수 치 여사에게 해외에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나가면 다시 돌아 올 수 없게 될 것이 확실해 거절한 적도 있습니다. 수치 여사는 1991년에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출국할 수 없어 아들이 대신 상을 받았습니다.

진행자) 지구촌 오늘, 문철호 기자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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