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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구금된 김영환은 누구?'


중국 랴오닝성 국가안전청에 구금 중인 한국의 북한 민주화 운동가 김영환 씨의 과거가 한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 내 주체철학의 대부에서 북한 민주화 운동가로 변신한 김영환 씨의 삶을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지난 2010년 고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하관식이 열린 한국 국립현충원.

[녹취: 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하관식장 소음] “선생님의 인간 중심의 철학을 우리가 공부해서 정말 세계의 민주화를 이뤄낼 수 있는 위대한 국가를 만들자고 한 선생님의 뜻을 여기에서 다시 한번 다짐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하관식에서는 민간단체인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김영환 연구위원이 침통한 얼굴로 황장엽 전 비서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북한의 주체사상을 확립한 주인공, 또 한 사람은 그 주체사상을 한국에 처음 전파한 주체철학의 대부였습니다. 한기홍 북한 민주화네트워크 대표의 말입니다.

[녹취: 한기홍 대표] “김영환 연구위원은 80년대 중반에 한국에 소위 주사파 운동을 도입한 사람인데요. 그런 과정에서 91년에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해서 북한의 수령인 김일성을 두 번이나 면담하고 남조선 혁명을 잘 하라 이렇게 일종의 얘기를 듣고 왔었습니다.”

1963년생으로 서울대 법대 82학번인 김 위원은 1980년대 한국 대학가에서 이른바 민족해방 학생운동을 확산시킨 ‘강철 서신’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김 위원은 1999년 한국의 ‘월간조선’ 에 기고한 전향 선언문에서 주체철학에 빠지게 된 동기를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민족주체의식’을 교육 받고 ‘인본주의’를 중요하게 여기던 자신에게 주체사상은 아주 매력적이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환상은 1991년 강화도에서 북한 반잠수정을 타고 북한에 밀입국해 김일성 주석을 두 차례 면담한 뒤 서서히 무너졌습니다. 김 위원이 서울의 한 행사에서 언급한 고백입니다.

[녹취: 김영환 위원] “다른 자유나 기회도 봉쇄돼 있지만 주체사상 혹은 주체철학을 연구할 수 있는 자유조차도 철저하게 봉쇄돼 있는 국가다. 그리고 김일성을 면담했을 때도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 같이 토론할 수 있게 되길 원했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된 주체철학에 대해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김 위원은 당시 “북한의 경제 실상이 예상보다 워낙 열악했고, 당 간부들이 하급 관리나 일반 주민들을 아주 고압적인 자세로 대하는 데 실망했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1992년 한국에 입국한 탈북 청년 강철환과 안혁, 그리고 96년 공개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처조카 이한영 씨의 증언을 들은 뒤 “김정일 정권이 극단적으로 부도덕한 정권’ 임을 깨닫게 됐다고 김 위원은 고백했습니다.

[녹취: 김영환 위원] “잔혹한 주민들에 대한 탄압. 이런 것을 없애고 북한의 인권 수준을 높이고 북한을 민주화 시키는 것이 가장 절실한 과제요 사명이라 생각했습니다.”

“인민의 자주성을 외치는 주체사상을 내세우면서도 인민의 자주성을 세계에서 가장 억압하는 국가가 북한”이며 “주체사상은 단지 지배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때서야 깨달았다”고 김 위원은 말했습니다.

김 위원은 이후 1997년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와 150 여 차례 만나며 북한 민주화 이론 정립과 인권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녹취: 김영환 위원] “황장엽 선생도 여러 차례 그런 얘기를 했지만 북한에는 실제로 공산주의 이론을 제대로 알고 있는, 혹은 공산주의 이론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이가 없다는 것”

김 위원은 이후 운동권에서 전향한 이들과 ‘시대정신’ 이란 잡지를 만들어 ‘수령의 허상’ 등 북한 정부가 가장 불편해 하는 진실들을 고발했습니다.

[녹취:김영환 위원] “소위 얘기하는 수령의 오류성. 그 것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다른 간부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총리를 내세우고 등등 이런 짓을 하고 있지만 수령의 오류성에 치명적 손상을 입었고 이 것이 장기적으로 민심의 이반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합니다.”

역시 운동권에서 전향한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한기홍 대표는 김영환 위원이 이런 활동 때문에 북한 정부의 테러 위협까지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한기홍 대표] “북한 입장에서는 수령을 만나서 접견한 사람이 수령을 배신한 행위가 됐으니까 김영환 위원의 북한 민주화 운동 시기부터 굉장히 테러 같은 것을 하려고 했던 시도들도 있었고 북한에는 굉장히 눈에 가시 같은 사람이죠.”

김 위원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는 북한 민주화 운동가들과 탈북자들은 김영환 위원이 사실상 한국 내 북한 민주화 운동의 선도자 역할을 했다고 평가합니다. 민족해방 계열 운동권에서 북한인권 운동가로 전향한 하태경 국회의원 당선자의 말입니다.

[녹취: 하태경 국회의원 당선자] “북한 민주화 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했죠. 윤현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목사님도 계시지만 그래도 젊은 세대에서는 북한 인권 민주화의 필요성에 대해 초기에 강하게 부각시킨 역할을 했죠.”

수십 일째 주인의 손길이 끊긴 김영환 위원의 인터넷 사회연결망 ‘페이스북’ 홈페이지에는 ‘일신 일일신 우일신’ 이란 한자성어가 올려져 있습니다.

북한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매일 혁신하고 항상 혁신하고 영원히 혁신하자는 겁니다.

미국의 소리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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