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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북한 화폐개혁 1주년] 4. 미국의 평가 – 실패한 개혁


북한 정부가 전격 단행한 화폐개혁 조치가 30일로 1년을 맞았습니다. 북한 당국은 인플레이션을 막고 화폐 가치를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적지 않은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1년이 지난 북한의 화폐개혁 조치가 북한경제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는 특집방송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 마지막 순서로 미국 내 평가를 정리해 드립니다.

올해 설날이었던 지난 2월14일. 북한 조선중앙TV는 평양 도심의 제일백화점이 손님들로 붐비는 모습을 방영했습니다.

평양 제일백화점 관리인: “음력설을 맞으면서 우리 평양 제일백화점에 손님들이 많이 찾아 오고 매대들마다 흥성거리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화폐개혁이 단행된 지 석 달이 조금 지난 때였습니다.

북한은 4월에는 이례적으로 서방 기자들을 평양으로 불러 화폐개혁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리기성] “밖에서 지금 우리나라 화폐교환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관해 떠들고 있는 이런 것 보다는 그렇게 무슨 큰 사회적 혼란도 없고 지금 전반적으로 안정이 돼 가고….”

북한 사회과학원의 리기성 교수는 북한 경제가 화폐개혁 이후 큰 혼란 없이 안정을 찾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의 이 같은 움직임들은 화폐개혁이 성공적으로 진행됐음을 선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평가는 전혀 달랐습니다. 미 국무부의 필립 크롤리 공보담당 차관보는 지난 3월 정례브리핑에서, 북한 당국의 화폐개혁과 시장통제는 재앙이라고 말했습니다.

화폐개혁이 북한 경제에 끔찍한 영향을 끼쳤고, 주민들의 평균적인 삶의 수준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것입니다.

같은 달 미 국무부의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도 화폐개혁 실패 이후 북한의 인도주의적 문제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내 대부분의 전문가들 역시 미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화폐개혁을 후유증만 컸던 실패작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미 의회 산하 독자적인 연구기관인 의회조사국의 딕 낸토 연구원은 북한 당국이 시장에서 힘들게 모은 주민들의 재산을 몰수한 것은 어리석은 실책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화폐개혁은 대부분의 주민들은 물론 부유층의 삶마저 어렵게 만든 완전한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북한 당국의 화폐개혁과 이어진 시장통제로 식량과 생필품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면서 가격이 크게 뛰었습니다. 쌀 값은 화폐개혁 직후 kg 당 20원대였지만 3개월 뒤인 3월 초에는 1천3백원으로 60배나 올랐습니다.

낸토 연구원은 화폐개혁의 부정적인 영향이 북한 당국의 예상 보다 훨씬 더 심각했고, 결국 북한 당국도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 연구기관인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연구원은 북한의 화폐개혁은 과거 일부 제한적으로 허용했던 경제개혁 조치들을 모두 무효화시킨 퇴행적인 조치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때문에 시행 과정에서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했으며, 그 강도가 너무 커서 북한 당국이 사과하는 이례적인 일까지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맨스필드재단의 고든 플레이크 소장은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정책을 철회했다는 점에서, 실패로 끝난 화폐개혁은 북한 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화폐개혁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 때문에 북한 당국이 정책을 철회하고 사과까지 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며, 이는

앞으로 북한 정부와 주민들 간의 관계에서 새로운 기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새로운 현실은 김정은 후계 체제의 북한 당국에 또다른 도전이 될 수도 있다고, 플레이크 소장은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플레이크 소장은 북한의 화폐개혁이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즉각적인 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초기에 물가 불안과 사회적 혼란이 초래되기는 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립 샌디에이고대학의 스테판 해거드 교수는 단기적으로 볼 때, 무역업자 등의 자본을 대량으로 몰수해 국가 재정을 확충했다는 점에서는 나름대로 북한 당국이 성공을 거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화폐개혁 이후 곧바로 식량 가격이 폭등하고 물자 부족 사태가 벌어지는 등 후유증이 너무 컸다고 덧붙였습니다.

해거드 교수는 그러면서, 북한 화폐개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적인 경제활동을 막으려 시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민들이 소비와 소득을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을 폐쇄하는 것은 주민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라는 것입니다.

해거드 교수는 북한이 오히려 사적인 경제활동에 대한 제약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화폐개혁이 실패한 중요한 또 다른 이유로, 물자공급 능력 부족도 꼽히고 있습니다.

북한 경제의 구조적 한계로 공급 능력이 전체 사회 필요량에 턱 없이 부족한데도 오히려 시장을 폐쇄하는 정반대의 조치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물가를 잡겠다고 시작한 화폐개혁이 오히려 물가를 더욱 폭등시키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워싱턴 소재 북한인권위원회의 김광진 방문 연구원은 화폐개혁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국가경제든 개인의 삶이든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국가가 돈을 회수해서 경제를 돌리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거죠. 국가경제가 돌아가야 되는데, 생산하고 분배하고 다시 자금을 회수하고 이런 순환 흐름이 돼야 하는데 이걸 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까 시장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시장을 차단시키고 할 수가 없다는 거죠. 그 몫이 너무 크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시장을 통제하고 계획경제로 돌아가기 위해 전격 단행한 화폐개혁.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시장 없이는 북한 경제가 지탱하기 어렵다는 엄연한 현실만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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