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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길남 박사 “두 딸과 제3국 상봉위해 북 압박할 것”


8일 신숙자 씨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한 오길남 박사.

8일 신숙자 씨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한 오길남 박사.

북한은 최근 유엔에 보낸 서한을 통해 한국과 국제사회에서 송환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신숙자 씨가 이미 병으로 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신숙자 씨의 남편 오길남 박사는 전형적인 북한의 거짓이라며 믿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지난 1985년 부인 신 씨와 두 딸을 데리고 북한으로 넘어 갔다가 이듬해 홀로 탈북한 뒤 가족 송환에 혼신을 다하고 있는 오길남 박사를 전화로 연결해 현재의 심경과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들어보겠습니다.

문) 북한이 부인 신숙자 씨에 대해서 유엔에 병으로 사망하셨다는 그런 통보를 했는데요, 유엔에 통보했다는 사실, 언제쯤 아셨나요?

답) 그거는 4월 27일에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 차석 공사가 유엔 북한 인권담당 특별 보호관에게 이걸 했는데, 보고서를 그 날짜로 4월 27일 일겁니다. 작성해가지고 거기로 보냈는데 알게 된 건 5월 초가 됐습니다. 5월 초 니까 5월 2,3일 경에 된 것 같습니다. 일일이 그 날짜를 기억을 못하고 있습니다.

문) 보고서 내용 보시고 처음에 심경이 어떠셨나요?

8일 신숙자 씨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한 오길남 박사.

8일 신숙자 씨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한 오길남 박사.

답) 심경이야 하나, 둘, 셋 하면, 첫 번째 뭐라고 할까 가볍게 분노했습니다. 심경이. 그리고 안죽었어, 직접적인 사인 증명이 아니다. 전혀 근거가 전혀 없는, 조작된 주장이다. 이렇게, 벌써 그렇게 판단을 했습니다. 첫 번째, 우리 저의 아내, 신숙자의 사망설, 사망에 대한 주장, 그거 당장 믿지는 않았습니다.

두 번째, 딸이, 딸들이 저를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거는 그 사람들이 만든겁니다. 내가 책에도 나오고, 딸들이 저한테 녹음 테이프 등을 통해서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했습니다. 그 책이, 책도 있고, 녹음된 것을 문서화 해 놓았습니다.

그 다음에 세번째는 북한의 강제 수용소가 없다, Arbitrary Detention, 그런게 없다, 그리고 Arbitrary Detention, 강제수용소에 수용한 적이 없다, 라는 얘기는, 그건 사진이 북한에서 내보낸, 내보내는것도 힘듭니다. 본인들이 안보냈는데 어떻게 바깥으로 나와서 윤이상씨가 지금, 부인이 그 사진 때문에 자기들이 곤혹을, 곤혹스러운 상황에 있다, 그렇게 하소연 하고 있습니다.

문) 북한의 통보 내용을 믿을 수 없다고 한국에서, 기자회견에서 말씀 하셨는데요, 부인 신숙자씨 께서 북한의 발표와 달리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어떤, 최근에 들으신 얘기나 가족의 행방에 대해서 알고 있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답) 최근에 들은 것은 없고, 그러나 그동안 쭈욱 국가 보위부, 그 무시무시한 국가 보위부의 손아귀에서 이런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저런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온갖 고초를 겪는다는 것을 듣고 알고 있고, 우리 사람이 정말 죽었다면 간염에 의해서, 간염은 직접적인 사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의학상으로도 그렇고 그럴 경우에 그 사람들이 죽여버린 거 아니겠나 그런 생각까지 갖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인 규명도 하면 좋겠는데 또 한편으로는 집사람의 나이가 저가 70살이고 우리 집사람이 조금, 아직 70은 안되고, 칠순은 넘겼지만 70은 아직 안됐습니다. 북한에 뭐 먹는게 있나, 제대로 영양공급이 불가능한 체제입니다. 드라큘라 체제에서 다 빨리는거죠. 그 정도로 얘기 하겠습니다.

문) 박사님, 지금 북한의 그런 통보를 유엔에 간 상태고, 지금 현재 박사님께서는 가족들을 위해서 앞으로 어떻게 노력을 하실 생각이신가요? 일단 두 딸과…

답) 네, 그건 인제 개인적으로는 어떤 계획같은게 만들 수도 없고, 생각해 볼 수도 없고, 여기에 한국의 인권단체들과 더불어 국제 인권단체와 함께 방안을 모색해 볼 생각입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5월 20일 경에 브뤼셀에 유럽 의원연맹에 European Parliaments, 유로 의회의 청문회에 증인이로서 참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또 5월에도, 아 6월달에는 옛 독일 수도 본에서 개최되는 국제 인권 포럼에 참석하게 됩니다. 거기에 가서 거기 있는 분들한테 이런 저런 얘기를 들려주면서 어떤 방안을 모색하면 좋겠다, 다른건 우선 저사람들이, 저쪽 사람들이 저희 집사람이 죽었다고 그렇게 일단 통보를 했으니까 그러면 내 딸을, 독일에서 태어나서 독일에서 성장 하다가 북한의, 대남공작 부서의 공작에 휘말려 들어가지고 들어간 딸 둘을 한국에는 보내달라고 그러면 보내주지 않을겁니다. 그래서 독일에서 보내가지고 한 번 면담하자, 그걸 아마 중점을 두고 할겁니다. 요청하고 호소도 하고, 그렇게 해서 얻어낼 생각입니다.

많은 이탈리아나, 독일이나 프랑스나 영국에서 지지가 있을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미국에서도, 미국에서는 가서 또 했으니까 로버트 킹 대사가 북한 사람들한테, 아마 제일 먼저 얘기를 했을겁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너무 압박이 거세니까 임기응변 식으로 대응했던 것으로 봅니다.

문) 오박사님, 그리고 앞서 캐나다 의회에서도 오박사님 입장을 지지하는 결의안도 있었고요 또 독일과 이탈리아 등지에서 정부 관계자들도 만나서 도움을 주겠다는 그런 약속을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특히 독일 같은 경우에 독일에 계시다가 북한으로 가시기 전에요, 독일 시민권자는 아니지만 독일에서 무기한 거주할 수 있는 자격으로 계셨고요, 독일 정부에서 그런 측면에서 특별한 도움이나 이런 것을 기대하고 계신게 있나요?

답) 네, 독일에서는 적극적으로 북한에다 요구할 것으로 내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쪽에서는 여태까지 독일 외무부에 아직 아무런 통보를 하고 있지 않고 있지만 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문) 혹시 독일 정부에서 북한에 그런 정부 차원에서 요구를 하겠다는 언지를 받으신 게 있나요?

답) 그런건 없지만 제가 작년 10월에 독일에 갔을 때 독일 외무부의 인권 담당관이라고 할까 인권 담당 위원장이 될겁니다. 거의 장관급이나 마찬가지고, 저한테 자기가 노력하겠다는 그런 어떤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박사님,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답)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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