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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이뤄지기도 전에 위기에 처한 키르기즈스탄  - 2004-08-22


소련이 붕괴되면서 중앙아시아의 작은 나라 키르기즈스탄은 엉겁결에 독립을 맞았습니다. 그 후의 이행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어느 정도 진전을 이루어 왔습니다. 그런데 분석가들은 이같은 진전이 현재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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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키즈스탄의 수도이며 산업중심지인 비슈케크는 암말의 발효된 젖을 휘젖는 데 쓰이는 목제 피스턴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이 붙여진 세계 유일의 도시입니다. 키르키스탄은 전체 인구의 4분의 3이 회교도이지만, 암말들이 망아지를 낳는 봄과 가을에 만들어지는 이 부드러운 알콜 음료는 널리 소비되고 있습니다. 키르키즈탄의 수도 비슈케크는 중앙아시아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 1인당 나무가 많다고 자랑하지만, 바람이 역류할 때에는 키르키즈스탄의 북부에 있는 산업공장들에서 닐아오는 스모그가 사람들의 폐를 해칠 수가 있습니다.

구 소련 공산주의 정권이 남긴 방사능과 생물학적 화학적인 폐기물 적치장들이 키르키스탄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습니다. 키르키즈스탄의 북부에 있는 소련 우라늄 처리공장은 1990년대에 폐쇄됐지만, 그 청결과정은 돈이 많이 듭니다. 그것이 가져올지 모를 환경 재앙을 막으려면 대규모 국제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러시아및 유라시아계획 책임자인 앤더스 애슈런드 씨는 소련의 붕괴로 키르키즈스탄은 러시아로부터 재정 원조가 끊어져 대부분의 산업시설들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고 말합니다. 애슈런드 씨는 “소련이 붕괴된 이후 키르키즈스탄처럼 교역조건의 악화로 타격을 받은 나라는 별로 없다고 말하고, 수출할 게 별로 없다고 덧부쳤습니다.

일부 금광과 양을 제외하면 키르키즈스탄은 별로 내세울 경제자원이 없습니다. 중국,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나라들에 둘러싸여서 소련 붕괴 후에 보다 우호적인 러시아로부터 단절돼 있는 이 조그만 산악국인 키르기즈스탄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나갈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키르키즈스탄은 물리학자인 아스카르 아카예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해 급진적인 정치적 경제적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애슈런드씨는 키르기즈스탄은 몇가지 중요한 성취를 자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애슈런드 씨는 “위치를 감안할 때 키르키즈스탄은 해외투자를 유치하는데 크게 성공했으며, 특히 이것은 한 캐나다 회사의 금광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힘입은 것으로 키르기즈스탄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특히 1996년부터 농업부문에서 연평균 8% 정도의 고도성장을 보인 초기의 급진적인 토지개혁의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아카예프 대통령은 키르키즈스탄에 적용할 수 있는 몇가지 다른 모델을 검토한 결과 결국 스위스의 모델을 선택했습니다. 키르기즈스탄과 마찬가지로 스위스는 작은 나라이며, 산악으로 둘러싸여 있고, 다민족으로 이루어졌으며, 자연자원이 빈약합니다. 그러나 스위스는 제품과 서비스의 뛰어난 품질과 개방성과 오랜 평화 덕분에 번영을 구가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카예프 대통령은 키르기즈스탄도 이같은 모델로 성장을 달성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아카예프 대통령의 10년의 통치기간중 키르기즈스탄은 소련의 붕괴 후 세계무역기구, WTO에 가입한 최초의 중앙아시아 국가가 됐습니다. 지난 2001년 9. 11테러공격 이후 키르기즈스탄은 미국에 군사기지를 개방해 아프가니스탄의 테러분자들과 싸우도록 허용했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개방이 해외투자를 비교적 용이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키르기스탄 국립대학의 아이누라 촐폰쿨라바 교수는 아카예프 대통령이 민주화에 대한 그의 공약을 이행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촐폰쿨라바 교수는 “이웃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키르기즈스탄은 국회와 통치역량을 약화시키고 오로지 대통령의 권한과 중앙통제를 강화함으로써 점차 독재체제로 전환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해외로부터의 대규모 지원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중반까지 성장을 계속하던 키르기즈탄 경제는 빈곤에서 탈출하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총 450만명의 키르키즈스탄 국민중 80%가 하루 2달러 이하로 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질적인 실업은 많은 사람들이 서방에서 일자리를 구하도록 내몰고 있습니다.

이같은 어려운 상황은 많은 국민의 불만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공산당원들은 정부를 전복하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우즈벡, 러시아, 다른 소수민족과 다수를 차지하는 키르키즈족 사이에 인종적 긴장이 높아가는 가운데 남부에서는 회교도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으며, 일부는 폭력에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워싱턴 DC에 있는 전략 국제문제연구소의 코리 웰트 연구원은 내년의 선거를 앞둔 이 나라의 미래는 불투명하다고 말합니다. 웰트 연구원은 독립한 키르기즈스탄은 처음에는 중아아시아의 스위스가 되려는 목표로 나아갔지만, 이제는 그같은 방향에서 이탈하고 있으며, 키르기즈스탄의 앞날은 앞으로 이 나라가 본래의 코스를 회복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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