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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11월 10일


1871년 11월 10일 오늘

영국의 탐험가이자 선교사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소식이 끊긴지5년 만에 미국 기자 헨리 모턴 스탠리에 의해 발견됩니다.

스탠리는 당시 소문만 무성했던 리빙스턴의 행방을 찾아 아프리카로 떠났고, 1871년 오늘 탕가니카 호수 부근의 우지지에서 드디어 리빙스턴을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1813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리빙스턴은 대학에서 그리스어와 의학, 신학을 공부했고, 이후 아프리카로 건너가 의료 선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856년 아프리카 에서 돌아온 리빙스턴은 '남아프리카 전도여행' 이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이것을 뒤로하고 1866년 또다시 아프리카로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5년 동안 소식이 단절됐던 리빙스턴은 하지만 1871년 오늘, 스탠리 기자에 의해 발견된 것이었습니다.

스탠리가 리빙스턴을 만나 처음 물은 말은 "리빙 스턴 박사님 이십니까?" 였습니다. 이는 스탠리 기자의 기사를 통해 미국과 유럽사회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스탠리는 영양실조와 말라리아로 거의 죽어가고 있던 리빙스턴을 간호해주었고, 둘은 함께 탕가니카 호를 탐색해 그것이 나일 강이 아니라 루알라바 강의 발원지임을 밝혀냅니다.

스탠리는 이후 자신의 경험을 헤럴드지에 기고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아프리카에 끝까지 남아 선교활동을 하던 리빙스턴은 결국 1873년 5월 1일 오두막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로 숨을 거두게 됩니다.

1483년 11월 10일 오늘

'면죄부에 관한 95개조의 논제'를 발표한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독일의 아이스레벤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후 대학에서 법을 공부하던 루터는 어느 날 자신의 친구와 도보 여행을 하던 중 친구가 벼락에 맞아 숨을 거두자, 그 충격으로 법률 공부를 접고 신학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루터는 수도회에 들어가 가톨릭 사제가 됐고, 신학 공부를 계속해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가 됩니다.

하지만 당시 가톨릭 교회는 면죄부를 구입하기만 하면 죄가 말끔히 씻어지고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고 주장하며, 면죄부를 판매하는 등 부정과 부패로 가득했습니다.

이에 루터는 '면죄부에 관한 96개조 조항'을 발표하고, 구원은 돈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신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 행위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이 일로 마르틴 루터는 교황으로부터 파면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신약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해 일반인들이 쉽게 성서를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루터의 가톨릭 교회에 대한 비판은 이후 독일은 물론 유럽전체에 퍼졌고, 이는종교개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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