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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탈북 난민 100명 시대 특집] 탈북자를 돕는 한인들


미국 내 탈북 난민 1백 명 시대가 다가왔습니다. 지난 2004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근거해 난민 지위를 받아 제3국에서 미국에 입국한 탈북자 수는 지난 9월 말 현재 93명으로 이르면 올해 안에 1백 명을 넘어설 전망입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는 탈북자 1백 명 시대를 맞아 지난 주부터 여덟 차례에 걸쳐 특집방송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6부는 탈북자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고 있는 한인 자원봉사자들의 얘기를 보내드립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탈북자들 “목사님이 도와주셨어요. 통역을 해 주시고 필요하면 사 주시고 심지어 집값까지 내 주셨어요.”

미국에 정착하는 대부분의 탈북 난민들은 난민 지원단체 외에 한인 자원봉사자들로부터 여러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정착이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는 탈북자들.

“ 박사님 없었으면 아마 아직도 헤매고 있을지 몰라요. 그 분이 처음에 와서 지금까지도 저희 생활에 어려운 일은 100% 다 풀어주세요.”

정착 성공의 열쇠는 탈북자 자신의 의지와 난민단체가 제공하는 정착 지원 프로그램을 꾸준하게 듣는 것, 그리고 친절한 한인 자원봉사자를 만나는 3박자가 맞아야 한다고 탈북자들은 말합니다. 초기정착 지원과 교육은 미국 난민단체가 정부로부터 자금을 받아 제공하지만 문화 적응과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 정서적 안정을 돕는 것 등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라크와 베트남, 아프리카, 쿠바 등 난민 정착의 역사가 긴 10여 개 국가들은 아예 선배들이 지원단체를 설립해 체계적으로 정착을 돕고 있지만 난민 정착 역사가 이제 3년 반에 불과한 탈북자들은 아직 그런 전국적인 단체가 없다는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탈북자들을 돕고 있는 한인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교회와 기독교인들입니다. 이들은 중고 자동차 구입비를 무이자로 빌려주거나 숙소를 제공하고, 교회가 직접 독신 탈북자들의 양부모 역할을 하며 결혼식, 장례식을 치러주고 있었습니다.

교회와 자원봉사자들 “ 저희는 딱 한가지만 합니다. 자동차를 살 수 있도록 돈을 빌려드리는 겁니다. 자동차가 있으셔야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자동차를 살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돈 언제 갚아야 합니까 물어보시면 아무 때나 될 때 갚으시면 됩니다 하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들을 우리가 신뢰한다는 표시인 것 같습니다.”

“저희 집이 우선 한인 커뮤니티에 가까운 데 있고 여기에 대중교통도 좋거든요. 그런 저런 면에서 또 저희 아래층에 방이 목욕탕과 함께 있고 해서 도왔죠.”

“정말 친정 어머니같이 결혼식도 시켜봤고 하나씩은 다 경험한 교회가 된 것 같습니다. 탈북자들을 위한 삶의 터전을 장만하기 위한 기초적인 단계에서 상당히 해야 되는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탈북 난민들이 일단 정착지에 도착하면 지역 난민단체는 대개 통역과 자원봉사 제의를 목적으로 한인교회를 접촉합니다.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에는 한인단체가 없거나 도울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에 종교단체를 접촉하는 것입니다.

자원봉사자들은 탈북자들에게 현금을 제공하기 보다는 자립에 필요한 기본적인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탈북자에게 무료로 치료를 해준 치과의사 등 자원봉사자들의 말입니다.

치과의사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탈북자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우리가 돕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도울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우선 동포들이 도와줘야 자립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만약에 탈북자가 자립을 해서 왔을 경우에는 제가 돈을 받아야겠죠.”

자원봉사자 이모 씨: “자립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진짜 도와주는 것이지 그냥 랩탑 컴퓨터,TV, 카메라 살수 있도록 돈을 주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립하는 데 모든 초점을 두자. 그래서 본인에게도 정확히 설명을 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대개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사랑에 근거해 탈북자들을 돕고 있지만 나름대로 특별한 이유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서부 지역에서 탈북자를 돕고 있는 송모 박사의 말입니다.

송 박사 “제 자신이 미국에 와서 고학을 했고 집에 돈 한 푼도 안 가지고 오고 내가 벌어서 일했기 때문에 누구나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적에 제가 마음 속으로 거절을 못합니다. 그저 도와주고, 도와준다는 뜻에서 도와주는 게 아니고 자연스럽게 발이 가고 저도 모르게 전화를 걸고 그럽니다.”

뉴욕에서 꽃가게를 하는 김영란 씨는 지역에서 탈북자들의 대모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탈북여성들 “ 뉴욕에 사시는 김영란 집사님. 그 분은 거의 엄마 같은 분이라. 진짜 진짜 엄마 도움 많이 받았어요. 되게 많이 도와주시고 물심양면으로 많이 힘 돼주시고 엄마 같이 해주신 게 되게 도움됐어요. 여기서 생활하려면 되게 외롭잖아요. 그런 분들이 있어서 가족이 없다는 느낌도 못 받고 되게 중요했죠.”

“한 주일에 한번씩 엄마를 만나서 힘든 얘기를 해요. (울적) 뭐 사는 게 힘들어서가 아니라 혼자라는 게 너무 힘들고. 다른 탈북자들은 이렇게 주변에 엄마처럼 보살펴주는 사람 없으면 얼마나 힘들까, 그런 생각도 해요.”

뉴욕에서 만난 김영란 씨 역시 탈북자들을 자기 자식처럼 여기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우리들 자식들이 그렇다면 이상한 눈으로 보느냐. 그렇게 하면 안 된다. 30년을 독재체제에 있었으면 30년을 기다리자. 20살에 왔으면 20년 기다리자. 나는 그 횟수를 기다리자는 거예요. 우리가 인내하며 기다리면서 이 사람들을 잘 물주고 가꾸듯 하면 돼요. 낳은 자식하고 똑같이 생각하면 돼요.”

북한과 미국. 판이하게 다른 사회구조 때문에 탈북 난민들은 미국에 입국한 뒤 적지 않은 사회적 괴리감을 겪습니다. 일부 탈북자들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약속을 자주 어겨 자원봉사자들과 종종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김영란 “시작부터 끝까지 거짓말을 하면 그 때는 바로잡아주기가 힘들어요. 어디 갔다 왔는데 그 장소에 가서 알아보면 전혀 오지도 않고 일도 안 가고 딴 짓을 하고 돌아다녔으면 마음이 아프죠. 하지만 밉지가 않고 너무 가슴이 아프고 끌어다가 막 혼내고 싶고. 그러나 열매가 맺힐 때까지 비바람 쳐도 폭풍우 쳐도 이 사람들과 웃으면서 울면서 그냥 같이 걸어갈 거예요.”

일부 자원봉사자들은 탈북 난민들이 돈 버는데 급급해 영어 등 기초과정을 무시하고 너무 서두를 때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 그 양반들이 북에서 하도 억압을 당하고 여기 와서 자유롭게 사는데 눈에 보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차도 다 갖고 모두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미국 사람들 생활을 들여다 보면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도 무척 많다고요. 그걸 탈북자들이 이해하고 너무 뛰어서 앞서갈 생각하지 말고 자기 주어진 상황에서 경험을 쌓고…”

“ 지금 여기 딱 떨어지면 최고로 신경 써서 해야 할 게 영어를 배워야 해요. 영어를 안 배우고 한달 두 달 영어도 잘 못하면서 직장 구하면 좋은 직장을 못 구하고 시원찮은 직장 구한다고요. 그리고 가면 거기 있는 사람들이 다 감싸주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러면 싸울 수도 있고 싸우면 말이 안되니까 내가 당하는 거예요.”

탈북자들은 대개 다른 나라 난민들보다 일을 잘하고 부지런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언어와 기술이 부족하고 너무 조급하거나 직장에서 감정조절을 못해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반면 겉으로는 탈북자의 취업을 돕겠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사업체에 고용시킨 뒤 적은 월급을 주며 인격을 무시해 탈북자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부 한인 업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워싱턴에 본부를 둔 기독교 단체 미주두리하나 선교회는 서로를 더 올바로 이해하자는 취지에서 미국 내 탈북 난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을 상대로 2년 전부터 각각 수련회와 세미나를 열고 있습니다. 이 단체의 이사장인 조영진 목사의 말입니다.

“이렇게 어려움을 뚫고 헤쳐오신 분들에게 또다시 상처 주는 일이 없이 정말 순수한 사랑을 갖고 이 분들이 이 땅에서 어렵게 새 삶을 개척해 나가는 일을 정말 도와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 분들 없이 내가 혼자 여기서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노! 안됐을 것 같아요 절대.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주저앉았을 것 같아요.”

꿈을 쫓아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에 정착한 탈북 난민들. 대가를 바라지 않은 채 사랑으로 정착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어선지 이들 곁에는 희망의 불꽃이 계속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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