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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3월 14일


1964년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 법원에서 리 하비 오스왈드를 살해한 잭 루비에게 사형이 선고됩니다. 한해 전인 1963년 11월 리 하비 오스왈드는 미국 텍사스 주 달라스 시내에서 퍼레이드 중이었던 미국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했습니다.

오스왈드는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지 하루 만에 케네디 암살 범으로 공식 기소됐습니다. 하지만 하루 뒤, 잭 루비는 형무소로 이송 중이던 오스왈드에게 총격을 가했던 것입니다.

당시 현장에 나와있던 미국의 라디오와 텔레비젼 방송사들은 루비가 군중을 뚫고 오스왈드에게 총격을 가하는 장면을 생생히 중계했습니다.

달라스 경찰은 오스왈드의 형무소 이송을 비밀리에 하지 않고 기자들의 출입을 허용했던 것입니다. 아이크 파파스 기자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파파스 기자는 사람들에게 겹겹으로 쌓여있는 오스왈드에게 다가가 왜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했는지, 하고 싶은 말은 없는지 물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뒤에 있던 잭 루비가 오스왈드를 향해 총을 쏜 것이었습니다. 잭 루비는 자신이 오스왈드를 살해한 것은 좋아하고 존경했던 케네디 대통령의 살해범을 스스로 처단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한 행동이라고 줄곧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루비의 변호인단은 루비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며, 따라서 루비가 오스왈드를 살해한 행동에 책임이 없다는 쪽으로 몰고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루비의 변호인단은 항소를 준비했습니다.

1966년, 미 항소법원은 루비 사건에 대한 재심을 허락합니다. 하지만 재판을 기다리고 있던 루비는 이듬해 암으로 사망하고 맙니다.

1973년

남북조절위원회 2차 회의가 평양 모란봉 초대 소에서 사흘 간의 일정으로 시작됐습니다. 남한측 에서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북측에서는 박성철 공동위원장 대리가 각각 대표로 참석했습니다.

천만 이산가족의 관심 속에 열린 남북한 대표간의 만남.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만 같은 기대감이 가득했습니다. 남측은 경제와 예술분야에서 민간교류를 먼저 진행하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북측은 군비축소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의견을 좁히지 못한 채 회의는 끝나고 말았습니다.

석 달 뒤, 양측은 다시 회의를 가졌지만 이때도 엇갈린 입장은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이어 같은 해 8월 8일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의 주모자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지목되면서 남북 조절위원회는 결국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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