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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2월 20일


1962년,

미국과 소련간의 우주개발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미국 우주선 프렌드쉽 7호가 발사됩니다.

우주선 안에는 제 1기 우주비행사 7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된 존 글렌 중령이 타고 있었습니다. 글렌 중령은 1943년 해병대 직속의 항공부대에 입대한 이래 능력을 인정받아온 전투기 조종사였습니다.

미국 전역의 수많은 사람들은 텔레비전과 라디오 앞에 모여들어 우주선 발사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림으로 시작된 우주 개발은, 이 후 미국 또한 우주개발에 힘을 쏟으며 미. 소 경쟁 시대를 맞습니다.

그러던 중1961년 4월 소련이 인류최초의 유인 비행선인 보스토크 1호를 발사했고 이에 10개월 후인 1926년 오늘, 미국 또한 머큐리 계획에 따라 글렌 중령을 미국의 첫 유인 인공위성인 프렌드쉽 7호에 태워 지구 궤도 비행을 시도한 것입니다.

프렌드쉽 7호는 발사 11분 만에 성공적으로 114km 상공 지구궤도에 진입했고, 지구 궤도를 도는 데는4시간 56분이 걸렸습니다.

6.25전쟁 참전용사이기도 한 글렌 중령은 같은 해 3월 한국을 방문해 큰 환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1974년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으로 당선돼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글렌은 1998년10월,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의 승무원의 일원으로 다시 우주를 방문합니다. 그의 나이 77살이었습니다.


1968년,

재일 한국인 김희로 (金嬉老) 가 일본의 조직 폭력단 야쿠자 2명을 라이플총으로 살해합니다.

사건 후 도주한 그는 한 온천여관에서 여관 주인과 투숙객 13명을 인질로 잡고 88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입니다.

김희로는 야쿠자들이 빚 독촉을 하며 민족차별적인 욕설을 퍼붓자 격분해 총을 쐈다고 말하며,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대우와 멸시에 대한 정중한 사과를 요구합니다.

이 사건은 일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며 재일동포의 인권문제를 부각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마침내 시즈오카현의 경찰본부장은 사죄 방송을 합니다.

김 씨는 체포된 뒤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 삼십여 년 만에 석방돼 한국땅을 밟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김씨는 친부의 성을 찾아 권희로로 개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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