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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 엇갈린 평가 받는 힐 차관보


미국과 북한이 핵 검증체제를 둘러싼 오랜 교착상태를 깨고 비핵화 2단계 마무리 방안에 합의하면서 북 핵 협상의 미국 측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습니다. 힐 차관보가 지난 3년 간 북한 핵 문제를 다뤄오면서 어떤 기복을 겪었고, 또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최원기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최근 미국의 민간 단체인 '한미연구소'로부터 '2008년 자유상'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이 상은 말 그대로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에 공헌한 인물에게 주는 상으로, 그동안 미 하원의 짐 리치 동아태 소위원장 등이 받은 바 있습니다. 수상식은 오는 12월 열릴 예정입니다.

워싱턴 관측통들은 힐 차관보가 이 상을 받을만 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힐 차관보가 없었더라면 북한 핵 문제는 물론 한반도 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악화됐을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협상을 현장에서 책임지고 있는 힐 차관보는 지난 2006년 10월 한때 위기를 맞았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부시 행정부가 평양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그같은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평소 북한과의 대화를 주장해온 힐 차관보는 상관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설득해 북한과의 일 대 일 접촉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힐 차관보는 이듬해 1월 외교 관례를 깨고 독일 베를린에서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단 둘이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주고받기식 핵 문제 해법을 만들어 냈고, 이는 한 달 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2.13합의의 모체가 됐습니다. 힐 차관보의 협상력이 돋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힐 차관보는 그 후에도 핵 문제가 벽에 부딪칠 때마다 북한과의 일 대 일 접촉과 주고받기식 해법을 통해 돌파구를 만들어냈습니다. 힐 차관보는 올해 핵 신고 문제를 놓고 교착상태가 계속되자 지난 4월 싱가포르에서 북한 김계관 부상과 만나 '미-북 잠정합의'를 만들어 내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또 힐 차관보는 북한이 핵 검증을 거부하자 지난 1일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힐 차관보는 이 자리에서 '상호 합의에 의한 미신고 시설 검증'이라는 절충안을 제시해 검증 문제로 결렬 위기에 처했던 핵 협상을 다시 본 궤도로 올려놓았습니다. 힐 차관보의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북한 비핵화는 이제 2단계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힐 차관보의 작품인 미-북 핵 검증 합의와 협상 방식에 대해 엇갈린 시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선 긍정적인 평가는 힐 차관보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냈다는 것입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무부 차관보를 지낸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로버트 아인혼 상임고문의 말입니다.

"아인혼 고문은 힐 차관보의 노력 덕분에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6자회담 틀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반면 워싱턴의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인 존 볼튼 전 유엔주재 대사는 북한과 너무 모호한 합의를 했다고 힐 차관보를 비판했습니다.

"존 볼튼 전 대사는 이번 핵 검증 합의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협상을 계속하기로 합의한 것에 불과하다며 힐 차관보를 낮게 평가했습니다. "

일각에서는 힐 차관보의 협상 방식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힐 차관보가 핵 문제가 쉽게 풀릴 것처럼 얘기하는 바람에 평양은 물론 워싱턴에서도 신뢰를 잃어 핵 문제가 꼬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관측통들은 내년 초에 새 행정부가 출범하면 힐 차관보도 북 핵 협상 책임자의 자리를 물러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 비핵화의 초석을 놓은 힐 차관보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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