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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북 관계 진전, 북한의 진정성과 협력이 관건’


북한에 대한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는 미-북 두 나라가 오랜 적대 상태를 끝내고 관계 정상화로 가는 출발점이 될 전망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미-북 관계에 획기적인 진전이 이뤄지기까지는 많은 제약요인들이 산적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이 미국 정부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를 계기로 살펴 보는 특집기획, 오늘은 유미정 기자가 미-북 관계 진전의 제약요인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북한의 핵 신고서 제출에 발맞춰 미국 정부가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방침과 적성국 교역법 적용 종료 발표를 발표하면서, 한국전쟁에서 적으로 싸웠던 미국과 북한 관계에 전례없는 '해빙무드'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미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부시 행정부 초기의 분위기를 돌아볼 때, 미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미-북 관계의 진전을 알리는 서곡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대학 정치학과의 김홍낙 교수는 북한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됨으로써 미-북 관계 개선, 그리고 국제사회로의 편입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향해 첫 발을 내딛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미국과의 국교정상화를 통해서 국제사회로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거든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되지 않으면 국제기구, 예를 들면 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을 통해 융자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또 북한이 이 리스트에서 해제되지 않으면 미국과의 국교정상화는 불가능한 형편이구요."

하지만 미-북 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관계에 급격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를 발표하면서, 앞으로 두 나라 관계가 진정한 진전을 이루려면 여러 가지 시험을 거쳐야 할 것임을 내비쳤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발표에서 테러지원국 해제가 효력을 발휘하기까지 45일 동안 북한의 진정성과 협력을 주시하겠다는 것 외에, 일본인 납치자 문제와 북한의 인권 문제도 거론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핵 신고서 검증 과정에서 드러나게 될 북한의 진정성과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다시 웨스트 버지니아대학의 김홍낙 교수입니다.

"현재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제출한 신고서에 기재된 사항들이 사실인지 진실한 숫자인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확인 절차가 남아있으니 그 것을 45일 동안 어느 정도 확인하고 미국 나름대로 이 것이 신뢰할 수 있는 숫자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지는 단계에 가서 테러지원국 지정이 해제되게 되니까 아직도 불확실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영변 원자로를 중심으로 한 플루토늄 관련 활동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가 이미 많은 부분을 파악하고 있어 크게 문제가 될 게 없다고 말합니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바로 이번 핵 신고서에서 누락된 핵무기와 우라늄 농축 의혹, 그리고 핵 확산 문제라는 것입니다.

[조지타운대학교 아시아연구소장인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David Steinberg) 교수] 스타인버그 교수는 플루토늄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농축 우라늄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며, 이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북한의 입장은 차이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또 북한이 이미 보유한 핵무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도 남아있다며, 이와 관련해서도 미국과 북한은 상당한 견해차를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핵무기는 6자회담 의제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또 북한이 영변 외 핵실험 기지 등 다른 의혹 시설에 대한 미국의 강도 높은 검증 요구를 수용할지도 의문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들은 비핵화 3단계의 목표인 완전한 핵 폐기와 미-북 관계 정상화로 나가는 데 줄곧 걸림돌로 등장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입니다.

현 부시 행정부의 임기가 7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미-북 관계 진전에 한계로 작용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이들은 북한이 비핵화 3단계 종료 문제를 미국의 차기 정부와 협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워싱턴 소재 맨스필드재단의 고든 플레이크 소장의 말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그 때부터 진짜 협상이 시작되고, 그 때부터 진짜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제네바 합의문 때 아무리 약점이 많이 있었어도 그 때 알았던 모든 북 핵 프로그램을 동결시켰었는데, 지금은 북한이 영변 발전소에서 플루토늄 뽑아다가 재처리하고 핵무기하고 실험까지 했는데 이번 신고 보면 전략적인 의미가 없습니다. 말 다 나가고 난 뒤 마구간 문 닫는 것과 같은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컬럼비아대학의 찰스 암스트롱 교수 역시 부시 대통령의 남은 임기 중 미-북 관계 진전에 중대한 돌파구가 마련되는 것은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암스트롱 교수는 비핵화 3단계는 지금까지의 협상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며, 부시 행정부는 차기 정부에 더 어려운 과제를 남기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북한도 핵 신고서를 제출하는 선에서 시간벌기를 시도하면서 미국 차기 정부의 향배를 주시하는 전략에 치중한다면, 미-북 관계 진전은 기대보다 더디게 진행될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 직후인 지난 1988년 북한이 테러지원국으로 지명된 이후 20년만에 불명예스러운 이름에서 벗어난게 된 것은 미-북 관계에 매우 상징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동력을 유지해 나가면서 북한이 미국과 진정한 관계 정상화를 이루고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편입하기까지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전문가들은 미-북 관계의 진정한 시험대는 바로 지금부터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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