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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북한 정상 간 친서 교환사


미국과 북한 최고 지도자들 사이에 친서가 오고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친서 교환이 갖는 의미와 함께 양측 간에 지금까지 언제, 어떤 내용의 친서가 오고 갔고, 이후 미-북 관계가 어떻게 진전됐는지 서지현 기자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문: 서지현 기자.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를 놓고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우선 '친서'라는 것이 외교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답: 양국 정상 간 직접적인 대화 소통의 최고 단계가 바로 '친서'입니다. 한 나라의 정상이 상대 국가의 정상에 대해 의사를 전달하는 가장 정중한, 최고 단계의 의사전달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특히, 북-미 정상이 직접 만난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죠. 친서를 전달하는 것은 정상회담에 준하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정상 간 친서 교환 여부가 미-북 관계 흐름을 파악하는 중요한 신호처럼 여겨져 온 것도 그 때문입니다.

문: 미국과 북한 정상 간 친서 교환은 그 동안 여러 차례 있었죠? 이번이 몇번째인가요?

답: 전체 친서 교환 횟수로 따지면 이번이 다섯번째인데요. 모두 친서 전달 이후 양국 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난 1994년과 1999년, 2000년 세 차례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었는데요.

1994년에는 제네바 합의 체결 이후 경수로 건설과 중유 공급에 필요한 자금 조성 등을 확약하는 내용이었고, 1999년에는 핵무기와 미사일을 북한이 포기하면 광범위한 경제적 지원을 해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2000년에는 북한과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친서였습니다.

문: 1994년 클린턴 대통령의 친서가 미국 정상으로서 북한 정상에 보내는 첫 친서였군요. 당시 북 핵 위기상황에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분수령이 됐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답: 맞습니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 NPT 탈퇴를 선언하고 국제원자력기구 IAEA의 핵 사찰을 거부해 핵 위기가 발발한 상황에서 1994년 미-북 간 제네바 합의가 타결됐죠. 친서가 전달된 것도 바로 이 때입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보낸 친서는 전문이 공개돼 있는데요.

친서는 '평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 김정일 각하'로 시작합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최고 지도자', '각하'로 지칭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화제가 됐는데요.

당시 강석주 북한 핵 협상 대표는 로버트 갈루치 미국 측 대표에게 대통령 친서에 담길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호칭을 '최고지도자 김정일 각하'라고 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 바 있습니다. 이를 미국이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문: 네. 친서의 단어 하나, 문구 하나도 정치적 맥락을 읽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군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까.

답: 그렇죠.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친서 내용은 '나는 나의 모든 직권을 행사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제공될 경수로 발전소 대상의 자금 보장과 건설을 위한 조치들을 추진시키며, 1호 경수로 발전소가 완공될 때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제공될 대용 에너지 보장과 필요한 자금 조성, 그 이행을 위한 조치를 추진시키겠다는 것을 확언합니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지막 줄은 '미 합중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라고 서명이 돼 있고, '1994년 10월20일 워싱턴 백악관'이라는 날짜와 장소가 뒤이어 씌여 있습니다.

문: 이후 1999년 두 번째 친서가 전달됐죠?

답: 네. 1999년 5월,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이 평양을 방문해 김영남 국가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두번째 친서를 전달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친서에서 '북한과 수교할 용의가 있다'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페리 조정관은 방북 이후 9월, 미-북 관계 정상화 모색과 양측의 수교를 통한 한반도의 냉전구조 해체 등 획기적인 내용이 담긴이른바 '페리보고서'를 발표하게 되죠.

당시 미국과 북한 간 베를린 합의로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제제를 일부 해제하는 조치를 발표하는 등 관계 정상화 분위기가 무르익게 됐습니다.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죠.

그 해 10월, 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 때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내는 클린턴 대통령의 세번째 친서가 전달됐습니다.

문: 북한 측의 미국에 대한 친서 전달은 없었습니까.

답: 북한 측은 지난 2000년 10월 방금 말씀 드린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북에 며칠 앞서 워싱턴을 방문했던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통해 클린턴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바 있습니다. 북-미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는 내용이었죠.

그러니까 올브라이트 장관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달한 친서는 북한 측의 첫 친서에 대한 답신의 성격이 강합니다.

당시 백악관 측은 김 국방위원장의 친서는 사적이고, 외교적인 서신이므로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제안의 일부를 검토 중이며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역에서 이미 이룩된 진전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지 살피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문: 미-북 관계가 친서 전달을 분기점으로 개선됐다는 공통점이 있군요. 그런데 부시 대통령의 친서 전달이 북한 내부로서는 선전용 도구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일부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답: 네. 지난 1994년 클린턴 대통령이 처음으로 북한에 친서를 보냈을 때 북한은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굴복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특히 이 친서는 이른바 '담보서한'이라는 통칭어로 사용돼 평양축전 개막식 때 북한 군중들이 '조미합의', '담보서한'이란 단어로 카드섹션을 벌이기도 했었는데요.

이번에도 북한 당국이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대내 선동 목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서지현 기자와 함께 친서 교환이 갖는 의미와 미국과 북한 최고 지도자 간 친서 교환 사례 등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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