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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 100년의 발자취] 초기 한인의 생활상


한인이민사를 연구하시는 김지수 씨를 모시고 100년이 넘는 한인들의 미주 이민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시간입니다. 지난 주에는 일본 총독부 여권을 가지고 도미한 유학생들에 관한 얘기에 이어서 오늘은 초기 한인의 생활상을 살펴보겠습니다.

1948년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미국에 거주하던 한인을 초기 한인이라고 부르는데 이들 초기한인 가운데는 이승만, 안창호와 같은 초기 유학생과 하와이로 이민왔던 농장 이민 7천여명, 사진 신부, 또 1913년 부터 18년까지의 신도 유학생, 해방될 때 까지 일본 여권을 소지하고 미국에 온 유학생등이 모두 초기 한인 사회를 이룹니다.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초기 한인들은 본토에 2천 5백명 내지 3천명, 하와이에는 4천명 정도였습니다.

초기 한인들은 미국에서 지금의 서기 그러니까 서력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당시 대한에서 사용하던대로 고종 연호와 광무 연호, 융희연호, 단기 연도를 차례로 사용하다 1919년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자 민국 연도를 사용했습니다.

재미 한인들이 미국에 살면서도 한국 년도를 썼다는 것은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한인들이 얼마나 고국을 사랑하고 그리워했는 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1930년대 들어 미국의 주류 사회와의 혼돈을 막기 위해 재미 한인은 연호를 서력 즉 서기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1907년경부터 불려지던 애국가와 1882년부터 사용되던 태극기도 한인들이 모든 집회에서 널리 사용하면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조국 독립의 염원을 표출했습니다.

"그 당시 1907년에 애국가가 불러지기 시작하자 미국의 한인들고 애국가를 굉장히 많이 불렀습니다. .... 애국가는 1948년조에 정식으로 대한민국 국가로 채택됐습니다."

이들 한인은 자신을 조선사람, 격식을 높여서 부를 대는 대한인 또는 대한 사람이라고 불렀고 한국말을 조선말이라고 칭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Honolulu는 호항, San Francisco는 상항, Losangeles 는 나성, Washington D.C.는 화부, Riverside 는 하변, Salt Lake City는 염호라고 불렀습니다."

1930년도 초부터 농장 일을 접고 도시 정착을 시작한 한인들 중에 LA에 정착해 제퍼슨 블루버드를 중심으로 초기 한인 촌을 형성했던 한인들은 상점들이 많이 몰려있던 이 제퍼슨 블루버드를 잡화상 거리라고 불렀고 버몬트 애뷰느는 보문가, 주택가였던 31st.는 삼일로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에는 재미한인들의 독립운동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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