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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 - 노르웨이 북한 인권 난민문제 국제회의에서 피아노 연주 실력 과시


탈북자가운데는 기아와 굶주림때문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갈구해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해 한국의 대학교에서 피아노를 강의하고 있는 러시아 유학파 출신의 김철웅씨 역시 그중 한사람입니다. 김씨는 최근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열렸던 북한 인권 난민문제 국제회의에 참석해 수준 높은 피아노 연주 실력을 과시하며 북한에 대한 외부로 부터 문화 전파와 또 외부세계와 북한과의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Music # 1

이 곡은 남한이나 서방세계에서는 매우 낯익은 팝 피아니스트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연주곡 입니다. 눈을 지긋이 감으며 마치 음악에 취한듯 섬세하게 곡을 연주하는 이 30대 초반의 미남 피아니스트는 평양출신의 탈북자 김철웅씨 입니다.

“저는 배고프지도 춥지도 못입지도 않았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갈급함이 있습니다. 문화적 충족도 넉넉히 돼야 그 사람의 인권이 보장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노르웨이의 항구 도시 베르겐에서 열렸던 한 북한 인권 관련 국제 행사장에서 김철웅씨는 표현의 자유와 문화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국제사회에 북한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탈출한 일반 탈북자들과는 달리 김철웅씨의 모습에서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이 흔히 갖고 있는 여유와 당당함이 느껴집니다.

“ 북한 사람들의 문화적 수준이 높아가고 있기 때문에 북한 (국가) 음악이 그 수준을 못따라 가니까 오픈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가는 겁니다. 그 문화 수준을 어떻게 높아가는가 하면 국제 사회가 좀더 많은 한국어 방송 채널을 늘려서 그들의 문화수준을 높인다면 , 북한 내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문화의 자유함에 대한 갈증이 조금씩 열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Music “도라지 곡”

김철웅씨는 북한에서는 선망의 대상인 평양 특권층 출신 자녀입니다. 당 고위 간부인 아버지와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어머니 밑에서 풍족하게 자랐으며 대개 북한의 최고위층 자녀들만 입학이 가능하다는 평양 음악 무용 대학이 그의 모교입니다. 김씨는 또한 졸업후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 국립 음악원을 졸업하고 북한을 탈출하기 전까지 평양 국립 교향악단에서 피아노 연주를 담당했었습니다. 김철웅씨는 북한의 음악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북한에서의 모든 음악의 연결체, 매체의 가장 기본적 방침은 민족주의적 바탕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은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낼것을 강요하고 있고, 그런 방법과 체계의 음악 작품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사회주의 선전 음악과 독재 문화 교육에 익숙해있던 김철웅씨에게 러시아 유학은 자신이 살아왔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깨닫는 인생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 러시아 유학도중 학교 앞의 있는 작은 커피쇽에 갔었습니다. 커피숖에서 나오는 음악이 너무 좋아서 주인 아저씨에게 물어보니까 아저씨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겁니다. 아저씨 왈 <아니 이 곡이 나온지가 언제인데 또 당신은 음악대학 학생같은데 왜 이 곡을 아직 모르느냐?> 고 반문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얼굴이 빨개져서 도대체 무슨 곳이냐고 물으니까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피아노 연주곡이라고 그러더군요.”

Music “피아노 연주곡- 리챠드 클레이더만”

리처드 클레이더만은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팝 피아니스트로 한국에서도 1980-90년대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등 주옥같은 곡으로 큰 인기를 끌던 음악인입니다. 김철웅씨는 클레이더만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때 몸에 전율을 느낄정도로 매우 아름다웠다고 말합니다.

“이 음악이 도대체 어떤 쟝르냐고 물어보니까 째즈라는 겁니다. 째즈란 북한에서는 자본주의 퇴폐 문화가 생산 해낸 가장 퇴폐적인 문화의 산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한번 경악을 했습니다. 내가 알고 있던 이론적인 추상적인 째즈와는 너무도 다른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몸에 전율을 느낄정도로 깜짝 놀랐고, 그 이후로 저의 가지고 있던 가치관들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Music

“역시 음악의 힘은 그 어떤 힘보다도 강하구나! 그리고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력이나 그로 인한 기쁨, 감성적인 면은 역시 음악의 힘은 위대하고 피부나 언어의 벽을 뛰어넘는구나 하는 생각을 (베르겐의 연주를 통해) 다시 하게 됐습니다.”

달걀속에서 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한 젊은 음악 학도에게 달걀 껍데기를 깨고 나와서 본 세상은 너무나도 다른 별천지였고 황홀한 째즈와의 첫 경험은 그의 음악 세계를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김철웅씨는 그러한 체험들을 통해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의 사회 체제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이 것을 못듣게 했던 그 정부에 대해 의심을 품었고 시스템에 대해 환멸을 느꼈고 또 그럴수 밖에, 그런 체제속에 있어야 하는 제 자신이 부끄럽고 불쌍해 보였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온 뒤에도 김철웅씨의 번민은 계속됐습니다.

“ 평양으로 돌아온 뒤부터는 매사매사 모든 순간 순간이 다 구속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든 것이 성에 차지 않고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년 동안을 북한에서 견디다 못해서, 입을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 부르고 싶고, 귀를 가지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싶고, 손을 갖고 피아노와 함께 내가 치고 싶은 곡을 치고 싶어서, 단순히 그러한 이유때문에…그 어떤 국적과 나라를 떠나 그런 자유만 있으면 OK!”

김철웅씨는 결국 2001년 오로지 하고 싶은 음악을 쫗아 모든 것을 버리고 북한을 탈출합니다. 그리고 중국에서의 탈북자 생활과 강제 북송, 재탈출 등 우여곡절끝에 한 기독교 선교 단체의 도움으로 남한땅에 도착해 그가 꿈에 그리던 째즈뿐 아니라 모든 쟝르의 음악을 맘껏 연주하며 현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가사의 내용은 조금 반미적이긴 하지만 (웃음) 멜로디는 상당히 기백이 있고 씩씩합니다. 가사를 상상하지 마시고 멜로디만 충실히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 ‘조선은 하나다’ 를 째즈풍으로 편곡한 곡을 연주….”

건반위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는 그의 긴 손가락들! 멜로디에 따라 몸을 유연하게 앞뒤로 혹은 좌우로 흔들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의 열정적인 자세! 그리고 관객들앞에서 미소를 잃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그의 모습속에서 자유를 찾은 한 음악인의 희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최근 세계 22개국 5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열린 북한 인권 난민 문제 국제회의는 북한 인권 문제가 인권 운동뿐 아니라 음악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통해 개선될 수 있음을 보여준 새로운 회의였고 그 중심에는 김철웅씨의 음악이 있었습니다.

탈북자 김철웅씨는 정치를 모른다고 누누히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음악이 북한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들의 닫힌 문을 열어 자유 세계를 체험하게 하고 나아가 남북한이 평화통일을 이루는데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Music ‘우리의 소원은 통일…..

“ 지금까지는 저 하나만을 위해 살아왔고 저 하나만의 욕구 불만으로 인해 충동적으로 (북한을 ) 나왔는데, 나와놓고 보니까 저 하나만이 가질 행복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좀더 많은 동료들을 구하는데 제 음악을 바치고 싶구요. 좀더 그런 일을 많이해서 앞으로 통일도 앞당기고 하는 데에 적은 힘이나마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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