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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은행 설립의 제1공로자, 알렉산더 해밀튼


죠지 워싱턴은 젊은 알렉산더 해밀턴에게 자신의 부관이 돼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해밀턴의 임무중 하나는 군대를 위한 자금과 무기를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해밀턴은 당시 별 힘이 없었던 의회에도 이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으로부터도 지원을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해밀턴은 미국 정부가 너무 허약하고 조직이 안돼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국민에 의해 움직이는 민주주의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귀족제도, 부유한 상류층이 통치하는 나라를 원했습니다.

해밀턴은 긍지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때 죠지 워싱턴까지 비판했습니다. 어느날 해밀턴은 워싱턴과의 회의에 늦게 참석했습니다. 워싱턴이 이를 꾸짖자, 그는 사표를 냈습니다. 워싱턴은 아쉬웠습니다. 그는 해밀턴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때문에 워싱턴은 해밀턴을 다시 재무장관에 기용했습니다.

재무장관의 일은 어려웠습니다. 새로운 국가는 재정을 조달해야 했고, 부채를 갚아야 했습니다. 새 헌법은, 전쟁으로 지게된 빚을 갚는 것은 중앙 정부의 책임이라고 규정돼 있었습니다. 재정을 조달하는 한가지 방법은 융자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빚을 상환할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 않는한 아무도 정부에 돈을 꾸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국회는 해밀턴에게 정부의 신용을 쌓을 보고서를 작성 제출하도록 요청했습니다.

해밀턴의 보고서는 정부가 현재 지고있는 빚을 모두 갚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같은 주장은 논쟁을 촉발했습니다. 대부분의 정부 부채는 채권으로 돼있었습니다. 이 채권은 식량, 의복, 무기등을 혁명군에게 제공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지불한다고 약속돼 있었습니다. 어떤 채권은 군에 지원한 사람들에게 돈을 지불하겠다고 명시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그같은 채권은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채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언젠가 돈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잃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액면의 몇분의 1밖에 안되는 금액이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이를 팔아넘겼습니다. 해밀턴의 계획은 누구든 마지막에 채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액면 그대로를 지불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정부가 채권을 발행했을때 맨 처음 이를 구입한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싼값에 그것을 매입한 사람은 산가격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고 그것을 팔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버지니아의 제임스 매디슨 의원은 이를 반대했습니다. 그는 채권을 나중에 싸게 구입한 사람들에게 돈을 지불해야 하지만 전액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부의 돈은 혁명군에게 보급품을 제공했거나 군 복무를 한 댓가로 채권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매디슨은 의회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배가 고파 거의 아무 돈도 받지못하고 헐값에 채권을 팔아넘긴 전직 군인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설명했습니다. 매디슨은 미국이 그같은 부당함을 없애기 위해 세워진 나라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해밀튼은 자신의 계획이 단순히 부채를 지불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계획이 국가의 신용을 구축하고 장차 자금을 더 용이하게 차용할수 있도록 하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해밀튼은 채권을 산 사람들은 그것으로 돈을 벌 권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가치없는 채권이 언젠가 돈이 될 것이라는 모험을 건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그런 사람들의 이익을 거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국회의원들은 가난한 군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많은 동정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도 매디디슨의 제안에는 반대하고 해밀튼의 안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해밀턴의 계획은 오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농업 중심의 남부인들은 그가 공업 중심의 북부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려 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해밀튼은 그같은 주장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목적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공업과 상업이 발달하면 결국은 모든 지역에 혜택이 돌아간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여러 의원들과 거래를 해야 했습니다. 의원들은 해밀튼의 계획을 지지했습니다. 그대신 해밀턴은 국가의 수도를 옮기는데 영향력을 행사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때의 수도는 북쪽인 뉴욕시였습니다. 두명의 버지니아 출신 의원들은 고향에서 가까운 포토맥 강 주변으로 수도를 옮기기를 원했습니다. 여려명의 펜실바니아 의원들도 거기에 동조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먼저 자기들의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필라델피아로 수도를 옮겨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10년은 수도를 그곳에 유지해야 된다고 요구했습니다.

의회는 근소한 표차로 이 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죠지 워싱턴도 그 안에 서명했습니다. 죠지 워싱턴도 자신의 농장인 마운트 버논 가까이 수도가 위치하는 것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어떤 의원에게든지 아니면 다른 어떤 사람에게라도 수도 이전을 위해 힘써달라고 요청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국가의 부채를 상환하기 위한 알렉산더 해밀턴의 계획은 더 많은 반대에 부딛쳤습니다. 그러나 그가 계획했던 재정 정책중 그보다 더 큰 반대는 중앙 은행 설립 문제에서 나왔습니다. 해밀턴은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델란드등에 모두 중앙 은행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들 나라의 중앙 은행들이 국가의 상업, 공업, 농업 발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해밀턴은 미국의 중앙 은행이 전국에 걸쳐 자금의 유통을 원활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앙은행은 또 차관 문제를 협상하고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일도 쉽게 할것이라고 해밀턴은 강조했습니다.

비판자들은 중앙 은행이 북부에 있는 소수의 부자들을 더욱 부유하게 해줄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중앙은행은 남부의 농민과 소기업들이 의지하고 있는 주 은행을 장악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제임스 매디슨은 해밀턴의 계획을 의회에서 반대하는데 앞장섰습니다.

매디슨은 미국이 국가의 부를 어느 한곳에 집중시켜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여러 작은 은행들을 전국에 분산시켜 설립하는 제도를 제안했습니다. 매디슨은 중앙은행은 헌법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제임스 매디슨보다 헌법을 더 잘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누구든지 헌법 조항에 대한 그의 설명을 경청했습니다. 매디슨은 헌법이 명문화된대로 의회에게 여러가지 권한을 주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그 외의 권한은 주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예를들면 의회는 돈을 빌릴 권한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돈은 부채를 청산하기 위한 것, 국가를 방어하기 위한것, 그리고 일반 국민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것 외에는 빌릴수 없도록 돼있다고 그는 지적했습니다.

매디슨은 중앙 은행 설립을 국민의 복리증진과 연계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같은 구상은 헌법을 왜곡 해석하는 일이며 극도로 위험한 일이라고 매디슨은 비판했습니다.

매디슨의 주장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밀턴은 중앙은행 설립안 통과에 충분한 표를 얻음으로써 다시 한번 의회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정식 법이 되기 위해서는 워싱턴 대통령이 서명을 해야 했습니다. 워싱턴은 이 법안이 헌법에 위배될수 있다는 점을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해밀턴은 법무장관 에드먼드 랜돌프, 국무장관 토마스 제퍼슨, 재무장관 해밀턴의 자문을 구했습니다.

랜돌프는 뚜렷한 대답이 없었습니다. 제퍼슨은 매디슨에 동조했습니다. 중앙은행 설립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해밀턴은 물론 그에 반대했습니다. 해밀턴은 헌법이 행정부에게 특정 권한을 주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권한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부가 일을 원할하게 운영해나가기 위한 권한을 행사할수 있도록 헌법이 허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헌법의 목적이라고 해밀턴은 말했습니다.

그같은 논쟁이 워싱턴의 질문에 확실한 답을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워싱턴은 그 법안에 서명을 하고 중앙 은행을 설립하도록 했습니다. 해밀턴과 매디슨은 거의 모든 문제에서 의견을 달리했습니다. 새 정부에서 벌인 이들의 권력 충돌은 결국 미국의 정당 제도가 출현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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