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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업가’ 출신 여성들 “장마당은 인민의 자산…시장 통제 안 돼”


북한에서 다양한 사업을 했던 탈북 여성들이 19일 미 디펜스포럼 주최로 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열린 증언행사에 참석했다. 왼쪽부터 김행운, 김지영, 배유진 씨.
북한에서 다양한 사업을 했던 탈북 여성들이 19일 미 디펜스포럼 주최로 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열린 증언행사에 참석했다. 왼쪽부터 김행운, 김지영, 배유진 씨.

북한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였던 탈북 여성들이 워싱턴에서 장마당을 통해 경험한 시장경제 활동을 증언했습니다. 열악한 시장환경 속에서 북한 여성들이 자본주의의 씨앗을 뿌리고 있지만 삶을 옥죄는 통제에 좌절하게 된다고 털어놨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북한에서 식당과 맥줏집을 운영하거나 한국 TV 드라마를 담은 CD를 판매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했던 탈북 여성 3명이 워싱턴을 방문해 “장마당은 인민의 귀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들은 19일 미국의 민간 단체인 디펜스포럼이 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개최한 행사에 참석해 역경을 딛고 사업가로 번창한 과정과 이후 어떤 박해를 받았는지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탈북민 김행운 씨가 19일 미 디펜스포럼 주최로 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열린 행사에서 증언했다.
탈북민 김행운 씨가 19일 미 디펜스포럼 주최로 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열린 행사에서 증언했다.

양강도 직물공장 노동자였던 김행운 씨는 고난의 행군 이후 생존을 위해 중국 접경지역에서 밀수와 제과 장사를 하다가 조선족 사업가를 만나 시장경제에 눈을 뜨게 됐다고 증언했습니다.

[녹취: 김행운 씨] “나는 정말 세상을 얻은 기분이 이런 것이란 것을 느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시장의 논리를 알려준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돈이 돌지 않는 북한 시장에 외상으로 물건을 내어놓는 법과 회수하는 방식, 한 지역에만 머물지 말고 지역특산물의 회전을 위해 타지역 상인들과 연계하고 이윤을 창출하는 등 평소에 생각조차 못 하던 일들이 그 중국인에 의해 현실화되는 걸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행운 씨는 “북한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상상도 할 수 없던 이윤을 창출하기 시작했다”면서 “북한의 시장판에선 거래처와 신용만 있으면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다는 말이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유통망을 통해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중요한 장사의 비결”임을 사업을 통해 터득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행운 씨] “저를 포함한 북한의 여성들은 자신이 직접 두 발로 뛰어다니는 대신 열차원이나 열차 방송원, 보안원 등 열차 종사자들에게 수수료를 주고 물건을 보내기 시작했고 지역 상인들이 역전에 나와 물건을 받아 가는 시스템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행운 씨는 그러나 이런 북한 여성들의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김정은 정권 출범 전후로 당국이 돈을 많이 번 사업가, 외국산 상품을 다루는 상인들, 한국산 드라마를 공급하던 상인들을 체포하고 평범한 아낙네들에게 적게는 1년, 많게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내려 공포가 커졌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김행운 씨] “그렇게 처벌받고, 추방당하고, 죄 아닌 죄인이 되어 장마당을 떠나는 동료들을 바라보면서 저는 탈북을 결심했고 2013년 9월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습니다.”

탈북민 배유진 씨(왼쪽)가 19일 미 디펜스포럼 주최로 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열린 행사에서 증언했다.
탈북민 배유진 씨(왼쪽)가 19일 미 디펜스포럼 주최로 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열린 행사에서 증언했다.

혜산예술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배유진 씨는 장마당에서 몰래 구입해 접한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 뒤 큰 매력에 빠져 아예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직전인 2019년 탈북한 배 씨는 “매일 새로운 드라마를 과일 박스 속에 숨겨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들여왔다”며 그러나 주민들의 수요가 날로 커지자 북한 내에서 이를 대량 생산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배유진 씨] “개인들은 중국에서 CD 복사기를 몰래 구매하여 집에서 복사본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하였고 저는 그들이 요구하는 빈 CD를 중국에서 들여와 판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장사의 폭은 하나둘 넓어져 갔고 돈이 쌓이는 재미를 보게 되었습니다.”

유진 씨는 그러나 북한 당국의 단속이 강화돼 한국 드라마 유포자가 공개처형까지 당하자, 위험을 느껴 사업을 접어야 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녹취: 배유진 씨]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남조선 드라마나 음악에 대한 대중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그것이 돈이 되는 세상에서 CD를 굽고 USB를 복사한 것이 ‘자본주의 사상을 유포시킨 범죄’가 되는 세상을 원망하고 또 원망하며…”

북한 당국은 장마당 등을 통해 한국 드라마 등 외부 정보가 급속도로 확산하자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단속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2020년 12월에는 유포자에 대한 사형 등 처벌을 크게 강화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제55차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올해 정기 보고서에서 북한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비상방역법 등 새로운 법률을 가혹한 처벌과 공개재판을 통해 시행해 표현의 자유와 기타 기본권에 대한 제한이 강화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진 씨는 한국 드라마 관련 사업을 접은 뒤 중국산 중고 옷 판매, 목재·약초 수출 등으로 다시 큰돈을 벌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뇌물을 차곡차곡 받던 당국자들이 돌변해 자신을 ‘비사회주의자’로 낙인찍어 재산을 몰수하고 가족을 깊은 시골로 추방하면서 북한 체제에 반감을 갖게 됐다고 증언했습니다.

[녹취: 배유진 씨] “그렇게 장마당에서 장사한 죄밖에 없는 자신을 증명하느라 8년을 보냈고 찾은 결론은 이 땅에 정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더하여 국가가 허락한 장마당이지만 그곳에 진정한 시장의 자유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택한 것이 탈북이었습니다.”

탈북민 김지영 씨(왼쪽)가 19일 미 디펜스포럼 주최로 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열린 행사에서 증언했다.
탈북민 김지영 씨(왼쪽)가 19일 미 디펜스포럼 주최로 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열린 행사에서 증언했다.

평양에서 식당과 맥줏집을 직접 경영했던 김지영 씨는 북한에서 뇌물 없이는 장사나 사업을 전혀 할 수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녹취: 김지영 씨] “북한만의 특수성에 따른 뇌물은 이 모든 성공의 밑거름이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중앙의 간부며 구역의 사법 관계자들…당시 외화식당과 외화상점 책임자들은 북한에서 외화벌이 사업장의 안전과 발전은 뇌물의 질과 양에 비례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지영 씨는 “어떤 뇌물을 얼마나 바치고 간부들에게 달러를 얼마나 주는가에 따라 없는 죄도 생기고 있는 죄도 없어지는 게 북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앞서 해마다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 보고서’에서 북한을 세계 최악 중 하나로 계속 지목하며 뇌물 등 부패 문제를 주요 이유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유엔의 ‘반부패협약’에 따르면 뇌물은 권력을 남용해 사적 이득을 취하는 부정부패의 전형으로 관리들의 비리를 조장하고 공정한 경쟁을 막는 등 사회 발전을 막는 병폐 요소입니다.

지영 씨는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북한 여성들은 꿋꿋하게 버티며 가족의 삶을 지켰다며 북한의 종합시장은 “인민의 자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김지영 씨] “종합시장이야말로 김정일, 김정은의 배려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북한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피땀으로 일군 인민의 자산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역사에서 실패가 증명된 사회주의의 원칙과 기준으로 자본주의의 꽃인 시장을 장악, 통제하겠다는 어리석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 국무부는 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VOA에 “우리는 북한 여성들을 보고 있으며 계속해서 여러분의 권리를 옹호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자유를 찾아 의사, 사업가, 종교 지도자, 정치인, 학자로서 지역사회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있는 용감한 북한 여성들에게도 북한 여성의 힘과 기업가 정신의 살아있는 본보기가 돼주어서 감사하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탈북 여성들은 행사 후 VOA에 장마당이 북한 주민들의 생존에 거의 100%를 기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면서 북한 주민이 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활성화하는 것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탈북 여성들은 특히 시장은 물건뿐 아니라 정보가 역동적인 곳이라며 북한 당국이 코로나 팬데믹을 구실로 장마당과 외부 정보 통제를 강화하는 것은 주민의 삶보다 정권이 우선이란 속내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김지영 씨] “정보가 들어 갈수록 사람들의 의식이 발전하면서 정권이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에 봉쇄와 통제를 더 강화하는 것이죠.”
[녹취: 김행운 씨] “일단 (외부 정보로) 머리가 깨긴 했지만 그래도 더 자세한 정보를 넣으면 훨씬 도움이 되겠죠. 코로나 규제도 빨리 풀려야 하고요”

수전 숄티 디펜스포럼 의장이 19일 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개최한 탈북민 증언 행사에서 발언했다.
수전 숄티 디펜스포럼 의장이 19일 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개최한 탈북민 증언 행사에서 발언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디펜스포럼의 수전 숄티 회장은 VOA에 “굶주리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전적으로 자기 결정에 따라 시장 시스템을 만들어낸 여성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숄티 의장] “One is the role that women played and created the market system that it was totally out of their self-determination to try to feed their starving family members. The incredible role that women played in creating the market system. We have three powerful testimonies of how they did it. “

숄티 회장은 또 북한의 미래 번영이 이들 여성들의 잠재력으로 증명됐기 때문에 향후 북한 정권의 붕괴로 인한 혼란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숄티 회장은 세 탈북 여성이 전날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제68차 유엔여성지위위원회(CSW)의 부대행사에도 참석했다며, 앞으로 북한 여성들에게 힘을 불어 넣는 일과 외부 정보 유입의 중요성을 계속 국제사회에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에서 다양한 사업을 했던 탈북 여성들이 19일 미 디펜스포럼 주최로 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열린 행사에서 증언했다.
북한에서 다양한 사업을 했던 탈북 여성들이 19일 미 디펜스포럼 주최로 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열린 행사에서 증언했다.

한국 외교부는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주유엔 한국 대표부의 김상진 차석대사가 이 행사 개회사를 통해 “팬데믹을 이유로 한 장기간의 국경봉쇄와 북한 내 통제 강화로 인해 북한 여성의 삶이 얼마나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받았는지를 지적하고, 장마당 등에서의 활동을 통해 변화의 주체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 북한 여성들의 저력을 강조했다”고 밝혔습니다.

김 차관은 이어 “북한 인권문제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안보리 내 북한인권 논의를 강화하는 데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외교부는 전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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