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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탈북민들 "북한 최장 국경 봉쇄로 간부들도 경제난…주민들 삶 간섭만 안 해도 감사할 것"


지난달 19일 평양 역전백화점 주변 출근길 행인들.
지난달 19일 평양 역전백화점 주변 출근길 행인들.

북한 역사상 최장의 국경 봉쇄로 취약계층뿐 아니라 간부 등 상류층도 경제난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북한 내 가족·동료와 소통하는 미국 내 탈북민들이 말했습니다. 이들은 북한 지도부가 주민들의 삶을 너무 간섭하고 통제하려는 게 문제라며, 국민을 통제하지 않고도 국력을 유지하는 미국에서 교훈을 얻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북한 내 가족에게 중개인을 통해 정기적으로 생활비를 송금하는 미국 서부의 김두현 씨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걱정이 많이 늘었습니다.

북한 지도부의 국경 봉쇄 장기화로 중개비는 계속 오르고, ‘고난의 행군’ 시기와 비슷한 조짐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는 겁니다.

[녹취: 김두현 씨] “예전에 30%를 뗐었는데 요즘에는 여러 상황이 다 안 좋으니까 얼마 전에도 저희가 보냈는데 40%를 떼고 나머지를 가져다드렸다고 하더라고요. 상당히 부담되죠. 거의 반을 떼이는 건데. 저희 가족은 그나마 저희가 브로커를 통해 돈을 보내니까 괜찮을 수 있겠지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제가 북한에 있었을 때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어 봤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다시 올까 봐 굉장히 두려운데, 그런 상황이 다시 올 조짐이 보이고 있어요.”

과거 ‘고난의 행군’ 시기처럼 군인들이 식량을 지키기 위해 협동농장 주변에 보초를 서고 있다는 소식, 중국 단둥에서 신의주와 우호적으로 사업을 하는 지인들은 내륙에 굶주리는 사람들이 급증해 쌀을 몰래 들여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겁니다.

역시 북한 내 가족에게 송금하며 최근까지 소통한 미국 동부의 그레이스 씨는 가족이 요즘 “너무 무섭고 힘들다”고 말했다며, 외부와 단절된 다른 주민들의 삶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그레이스 씨] “너무 무섭대요. 밀수하다 잡히면 그냥 죽인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리고 사람들이 다 힘들다고 해요. 정말 저희가 돈을 보내는데도 불구하고 힘들면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그러면 그 곳에 있는 노인들, 꽃제비 아이들, 정말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하루 한 끼라도 먹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까 북한 정부, 특히 김정은의 행태가 너무 이해가 안 되고 지도자로서 너무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탈북민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코로나 확산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북한 역사상 전례 없이 국경을 장기간 봉쇄하는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다고 지적합니다.

장마당 활성화 이후 상당히 약화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과 사상교양, 중앙정부 보다 돈과 자신들의 사업, 외래문화에 의존하는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코로나를 구실로 국경을 봉쇄해 주민들을 사지로 몰고 있다는 겁니다. 다시 그레이스 씨입니다.

[녹취: 그레이스 씨] “예전에는 사람들이 밀수를 할 수 있게 열어줬는데 그로 인해 사람들이 더 돈에 눈이 뜨고 중앙정부의 권력도 많이 약화됐잖아요. 이제는 돈이면 뭐든지 되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에 이렇게 하면 정권에 위태롭겠다고 느껴 자신의 정권을 다시 강화하기 위해 코로나를 빗대서 돈 많은 세력들, 돈으로 세력을 사려는 싹들을 아예 잘라버리지 않나. 지방에도 돈주가 많잖아요. 그런데 정부가 (국경을) 딱 차단해 이 사람들이 비즈니스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아 정부가 그래도 무섭구나!”

김정은 위원장이 장기간 고립으로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시야가 좁아져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며 북한 내부와 정기적으로 소통하는 갈렙 씨는 2년에 가까운 국경 봉쇄로 “상류층마저 돈이 떨어져 힘든 상황”이라고 들었다며, 이는 지도자의 매우 무책임한 행태라고 비판했습니다.

[녹취: 갈렙 씨] “국민의 생활과 복지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이해타산을 앞세운 결정이 아닌가. 그리고 일단 김정은이 현실감각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국경을 그렇게 계속 닫아 놓을 필요가 없는데, 다른 나라들도 국민의 삶을 걱정해서 많이 문을 열고 경제를 살리려고 하는데, 공개적으로는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고 하면서 그렇게 닫아 놓는 것은 지도자로서 굉장히 무책임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 북한 파견업체 지배인으로 활동한 허강일 씨는 “중국 내 대북 소식통들로부터 올 겨울이 큰 위기이자 아주 혹독할 것이란 소식을 계속 듣는다”고 말했습니다.

식량난에 전력난, 땔감마저 부족해 추위와 굶주림이 훨씬 더 악화될 것이란 지적인데, 허 씨는 김정은 위원장이 좁아진 시야를 넓혀 국민을 통제하지 않으면서도 국력을 잘 유지하는 미국과 한국으로부터 지혜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허강일 씨] “좋은 지도자가 되려면 우선 국민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국민이 원하는 것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현명한 대통령이란 것을 김정은이 배웠으면 좋겠어요. 이곳 미국도 한국도 보면 국민을 정부가 컨트롤하기 힘들어요. 그러나 정부에 반감을 들었다고 해서 때리고 잡아가는 게 없잖아요. 그래도 나라가 잘 굴러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점을 김정은이 연구해서 독재를 꼭 해야만 나라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진짜 국민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만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김정은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탈북민들은 국민을 배려하지 않으면 투표나 탄핵을 통해 권력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는 미국과 한국 등 자유세계 지도자와 달리 북한의 독재정권은 그런 염려가 없어 주민들의 눈치를 보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갈렙 씨는 북한 주민들은 정부의 배려나 배급조차 기대하지 않는다며, 그저 삶을 간섭하지만 말아도 감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갈렙 씨] “돈도 필요 없고 월급도 필요 없고 쌀 등 배급도 필요 없으니까 그냥 나만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풀어달라! 이거거든요.”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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